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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통에 식량 무기화…수단부터 가자까지 '굶어죽는 공포' 부활

윤창현 기자

입력 : 2025.08.25 16:34|수정 : 2025.08.25 16:34


▲ 가자지구

최근 들어 수단, 아프가니스탄, 예멘에 이어 이달 유엔 기구가 기아를 공식 선언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까지 기근이 번지면서 세계 기아 사망자가 증가세로 돌아섰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가 현지시간 24일 보도했습니다.

기아를 연구하는 알렉스 드 왈 미 터프츠대 세계평화재단 사무총장은 "약 10년 전부터 기근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고, 최근 몇 년 사이에는 굶주림에 따른 사망자가 무서울 정도로 급증하고 있다"고 파이낸션타임스에 전했습니다.

터프츠대 집계에 따르면 세계 기아 사망은 1960년에 정점을 찍은 후 20세기 후반까지 반복되다가 21세기 들어서는 거의 소멸 수준까지 감소했습니다.

그러다가 2020년 이후 내전을 겪은 예멘과 에티오피아를 중심으로 매년 20만에서 30만 명이 굶어 죽었습니다.

2년 가까이 전쟁이 이어지는 가자지구에서는 인도주의 단체들이 210만 명이 사는 봉쇄 지역에 충분한 식량을 공급하지 못하도록 이스라엘이 막아 왔습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구호품을 탈취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지난 3월 가자지구 전면 봉쇄를 단행해 10주간 모든 인도주의 지원을 차단했습니다.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에 지난 5월 일부 봉쇄를 완화해 미국과 함께 만든 가자인도주의재단을 통해 제한적 배급을 허용했으나 식량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결국 지난 22일 유엔 기구와 비영리단체 등으로 구성된 기아 감시 시스템 통합식량안보단계는 가자지구에 사상 처음으로 식량 위기 최고 단계인 '기근'이 발생했다고 진단했습니다.

통합식량안보단계는 오는 9월 말까지 가자지구 전체 인구의 약 3분의 1 수준인 64만 1천 명이 기근을 겪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수단에서는 정부군과 준군사조직 신속지원군 간 무력 충돌로 2년 이상 내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은 이 전쟁으로 수단 전체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2천500만 명이 극심한 식량 불안에 처했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이 중 63만 8천 명은 재앙 수준의 기아 상태에 놓였습니다.

수백만 명이 농사를 포기하고 피란하면서 식량 부족은 악화하고, 식량 가격은 폭등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기근이 돌아온 이유 중 하나로 민주주의적 견제를 덜 받는 권위주의 지도자의 부상을 꼽고 있습니다.

이들이 식량을 무기로 삼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수십 년간 구호 경험을 쌓아온 유엔 배급 시스템을 배제하고 미국이 지원하는 가자인도주의재단을 출범시켰지만, 이후 배급소에서 구호품을 받으려던 팔레스타인인 수백 명이 이스라엘군 총격에 사망했습니다.

유엔 전문가들은 이 재단의 즉각적인 해체를 요구해 왔습니다.

반면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가자지구에 기아는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하며 유엔이 거짓을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수단에서도 내전 세력의 기근 증거를 일축하고, 상대 세력이 통제하는 지역 주민들을 대상을 하는 식량 공급을 적극적으로 차단해 왔다고 구호 관계자들은 전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또 기아가 재발한 원인으로 부실한 인도주의적 대응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다자주의가 약화하고 원조 예산이 줄어든 탓에 대응이 제약받은 영향입니다.

올해 1월에는 수십 년간 세계 기근 데이터 수집을 주도해 온 미국 기근 조기경보 시스템이 미국의 대규모 원조 삭감 조치의 하나로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프란체스코 케키 런던 위생 열대의학 대학원 교수는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근이 일단 시작되면 이를 되돌리는 일은 마치 초대형 유조선 조종과 같아서 방향을 바꾸거나 속도를 늦추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최근 기근이 급증하는 상황을 우려했습니다.

이어 "아동 영양실조가 급격히 증가하는 시점에 식량 안보를 개선하지 못하면, 아동 사망률이 이전보다 50배에서 100배까지 높아질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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