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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여 명이 성착취물 공유 '중국판 N번방'에 중국 당국 침묵·검열

유영규 기자

입력 : 2025.08.25 12:59|수정 : 2025.08.25 12:59


▲ 텔레그램서 불법촬영물·성착취물 공유한 '마스크 비밀포럼'

중국에서 남성 수십만 명이 텔레그램 대화방을 통해 여성을 불법촬영한 영상과 성착취물 등을 공유한 디지털성범죄가 발생해 분노를 사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 당국은 침묵을 지킨 채 피해 사실을 알리거나 행동을 촉구하는 게시물들을 삭제하는 등 검열하고 있습니다.

25일 미국 CNN방송과 호주 공영 ABC방송 등에 따르면 20대 여성 D 씨는 최근 '당신의 영상이 유출된 것을 알고 있나요'라는 익명의 메시지를 받고 자신의 개인적인 사진과 동영상 20여 개를 전 남자친구가 대규모 비공개 텔레그램 대화방에 유출한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D 씨는 지난달 18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웨이보에 텔레그램 대화방 캡처 화면을 올리고 자신이 당한 일이 "중국의 N번방"이라며 피해 사실을 알렸습니다.

이 게시물은 4만 명 이상이 '좋아요'를 누르고 2만 차례 이상 공유됐으나 다음 날 D 씨의 채널은 폐쇄됐습니다.

D 씨가 폭로한 텔레그램 대화방은 '마스크파크 비밀포럼'(MaskPark樹洞論壇)이라는 이름의 중국어 채널로 남성 사용자 10만 명 이상이 모여 불법촬영물과 성착취물을 공유하는 곳이었습니다.

지난달 중국 남방도시보와 로이터통신 등의 보도로 알려진 이 대화방서는 지하철, 공중화장실, 쇼핑몰, 병원 초음파실 등에서 여성을 불법촬영한 영상과 사진은 물론 여자친구나 여성 가족 등을 촬영한 영상 등이 공유됐습니다.

일부 사용자는 피해 여성의 개인정보를 올리거나 불법촬영 장비를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한 여성 피해자는 "전 남자친구가 성관계 중에 몰래 찍은 내 사진을 허락 없이 이 채팅방에 올리고 내 SNS 계정까지 공개했다"고 말했습니다.

중국 네티즌들은 한국의 'N번방' 사건과 연관 지어 이번 사건을 '중국판 N번방'으로 부르며 분노를 쏟아냈으나 당국은 침묵 속에 오히려 관련 게시물 검열을 강화했습니다.

중국 당국은 현재까지 이 사건과 관련해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공안부 등 당국이 수사에 착수했다는 징후도 아직 없다고 CNN과 ABC는 전했습니다.

지난달 '마스크파크' 보도가 나온 이후 피해 사실을 추가로 폭로하거나 가해자 엄벌 등 해결책 마련을 촉구하는 게시글이 잇따랐으나 상당수가 삭제되거나 비공개 처리됐습니다.

네티즌 C 씨는 마스크파크 사건과 관련해 지난달 24일 불법촬영에 쓰이는 소형 카메라를 주의하라는 내용의 글을 샤오훙수에 올렸습니다.

이 게시물에는 수만 개의 댓글이 달렸지만, 다음날 대부분의 댓글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고 원글은 비공개 처리됐다고 C 씨는 ABC방송에 말했습니다.

일부 네티즌은 지난해 한국에서 열린 딥페이크 성착취물 엄벌촉구 시위를 언급하며 비슷한 시위를 제안하는 글을 올렸다가 역시 검열당했습니다.

CNN은 체제 안정에 집착하는 집권 중국공산당이 사회운동이나 불만·반대 의견을 표하는 조직적 행동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으며, 그 연장선에서 여성 권리를 옹호하는 캠페인도 강하게 단속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일부 여권 활동가들은 이번 사건이 한국의 N번방과 유사하지만, 결과는 다를 것이라며 비관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N번방 사건 주범들이 붙잡혀 징역형을 받았고 성범죄 처벌을 강화하는 법적 개혁이 이뤄졌지만, 중국에서는 유사 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중국에서는 음란물 제작·판매·유포 시 최대 무기징역에 처할 수 있지만 영리 목적이 아닌 경우 최대형량이 징역 2년이라고 CNN는 지적했습니다.

텔레그램이 중국에서 차단돼 가상사설망(VPN)으로 우회 접속해야 하는 플랫폼이어서 증거 확보가 어려운 점, 당국이 수사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됩니다.

2022년부터 불법촬영물을 추적해 온 29세 남성 저우닝허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경찰에 십수 차례 전화를 걸었고 불법음란물 단속 당국에도 최소 30건의 보고서를 제출했지만 "그중 어느 것도 처리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2년 전 윈난성의 거리에서 자신의 치마 아래를 불법촬영한 남성을 경찰에 신고한 28세 여성도 "남성 경찰이 가해자에게 구두 경고만 했다"고 돌아봤습니다.

'프래니'라는 가명을 요청한 33세 여성 변호사는 중국에서는 불법촬영이 심각한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그 밖의 심각한 결과를 불러오지 않는 한 형사고발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사진=바이두 캡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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