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랭크 카프리오 전 로드아일랜드주 지방법원 판사
"이제부터는 네가 판사야. 공정하고 정직해야 해. 너희 엄마는 주차위반으로 적발됐어. 벌금으로 얼마를 내라고 해야 할까? 다음 넷 중 하나를 골라줘. 300달러, 100달러, 50달러, 0달러."
미국 로드아일랜드주의 한 법정. 주차위반으로 기소된 여성에 대한 재판을 진행하던 판사가 돌연 피고인의 어린 딸을 불러 엄마에게 벌금으로 얼마를 부과할지를 묻습니다.
잠깐 고민하던 딸은 50달러를 선택했지만, 판사는 다시 "엄마한테 벌금 50달러를 내는 대신 너한테 아침을 사주도록 하면 어떨까?"라고 물었고, 딸도 아침 식사를 선택합니다.
사려 깊게 어린이의 발언에 귀를 기울이는 판사의 모습이 담긴 2017년 1월의 이 법정 영상은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서 1천만 회 이상 조회되는 등 화제가 됐습니다.
이 영상의 주인공인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지방법원 판사 프랭크 카프리오가 8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고 AP통신이 21일(현지시간) 보도했습니다.
카프리오의 공식 SNS는 그가 "오랫동안 췌장암과 싸우다가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습니다.
판사로 재직할 당시 그는 '프로비던스(로드아일랜드주의 주도)에서 잡히다'(Caught in Providence)라는 SNS 계정을 직접 운영하며 법정의 여러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그의 영상은 모두 합해 10억 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습니다.
그가 '사람과 사건이 친절과 연민으로 만나는 곳'이라고 부른 법정의 피고인석에는 주로 작은 범죄를 저지른 서민들이 섰습니다.
운전할 때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았거나, 너무 시끄러운 파티를 열어 딱지를 뗀 사건 등입니다.
그의 판결도 그러한 피고인들의 딱한 처지에 공감하는 쪽이었습니다.
아들이 살해된 여성의 말을 공감하며 들어준 뒤 벌금 400달러(약 56만 원)를 면제해주거나, 시급 3.84달러를 받는 바텐더의 신호위반을 눈감아주는 판결 영상이 화제가 됐습니다.
그는 한 영상에서 "(미국 '충성 맹세'에 나오는) '모두에게 자유와 정의를'이라는 구호는 누구나 정의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담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며 "저소득층 미국인의 거의 90%가 의료, 부당한 퇴거, 재향군인 수당, 교통법규 위반 등과 같은 문제와 홀로 싸워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최근 페이스북에 올린 한 영상에서 병이 재발해 병원에 재입원했음을 밝히면서 사람들에게 기도 속에서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유족들은 그가 "헌신적인 남편,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이자 친구"였다며 "카프리오 판사는 연민과 겸손, 사람들의 선함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법정 안팎에서 수많은 사람의 삶에 영감을 줬다"고 말했습니다.
댄 매키 로드아일랜드주지사도 성명에서 "카프리오 판사는 공공을 위해 봉사한 것은 물론이고 의미 있는 방식으로 사람들과 소통했다"며 "그는 단순한 법률가가 아니라 공감의 상징이었고 정의가 인간애와 조화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준 사람"이라고 추모했습니다.
(사진=A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