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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년, 한강의 기적에 가려진 그늘…재도약을 위한 과제들

유영규 기자

입력 : 2025.08.13 08:16|수정 : 2025.08.13 08:16


▲ 서울 마포대교에 설치된 '한 번만 더' 동상

광복 이후 80년간 대한민국이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초고속 성장을 해왔지만, 앞으로의 80년을 낙관하기엔 곳곳에 드리운 그늘도 적지 않습니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생률과 최고 수준의 고령화 속도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어렵게 하는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진보와 보수,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남과 여 등의 갈등은 통합을 가로막고, 빈부 격차와 노동시장 이중구조 등도 사회 갈등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선진국 최고 수준의 자살률과 끊이지 않는 일터에서의 산재 사망사고는 쉽사리 해법을 찾지 못하는 한국의 고질병이 됐습니다.

1945년 광복 당시 우리나라 인구는 2천500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남한 인구만은 1천900만 가량이었습니다.

전쟁 이후 베이비붐을 겪으며 인구는 빠르게 늘었고, 이는 우리나라의 빠른 성장의 원동력이 됐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4명을 웃돌았던 합계출산율(여성이 가임기간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2018년 이후 줄곧 1명을 밑돌고 있고 2023년 0.72명으로 역대 최저, 세계 최저 수준을 경신했습니다.

2024년 0.75명으로 반등하고, 올해 0.8명까지 추가 반등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여전히 바닥 수준입니다.

반면 고령화 속도는 유례없이 빨라 우리나라는 2017년 말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14%를 넘는 고령사회에 진입한 지 7년 만인 지난해 말 노인 인구 비율이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습니다.

15∼64세 생산연령인구는 2018년부터 감소세입니다.

통계청은 향후 출산율이 1.0명 선으로 반등하더라도 50년 후엔 인구가 3천600만 명대로 줄고, 생산연령인구 비율은 현재 70% 수준에서 50년 후엔 50% 미만으로 줄어들 것이라 예측합니다.

일할 사람이 줄어들면서 0%대 저성장 전망이 커지는 가운데 부양해야 할 노인 인구는 계속 늘면서 개인과 사회의 돌봄 부담은 커지고 있습니다.

보수·진보 단체 대규모 장외집회
통합을 가로막는 여러 사회 갈등도 대한민국이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이번 광복절에도 서울 도심에선 진보단체와 보수단체의 대규모 시위가 예정돼 있습니다.

이념, 세대, 성별, 계층 등에 따른 갈등은 최근 들어 심화하는 양상입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4년 사회통합 실태조사에선 국민이 생각한 우리 사회 갈등도가 4점 만점에 3.04점으로, 2018년 조사 시작 이래 가장 높게 나타났습니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들이 가장 심각하게 여긴 갈등은 진보 대 보수 간 갈등이었고, 수도권과 지방,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사, 빈부 갈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통계청의 '2024 한국의 사회지표'에선 '남녀' 간 갈등을 심각하게 느낀다는 응답률이 전년도 42.2%에서 51.7%로 크게 증가하기도 했습니다.

소득의 불평등은 완만하게나마 개선되고 있으나, 자산의 불평등은 심화해 순자산을 기준으로 한 한국의 지니계수는 최근 5년 연속 상승했습니다.

빠른 성장 속에 생겨난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는 높은 자살률입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자살자 수는 1만 4천439명으로, 2011년 이후 13년 만에 가장 많았습니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 사망률은 2003년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과도한 학업 부담, 불황에 따른 실직이나 사업 실패, 높은 노인 빈곤율 등 자살을 부추긴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경쟁이 치열하고,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자살 사망률뿐만 아니라 일터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는 근로자들의 비율도 우리나라가 주요국 중 상위권에 자리해 있습니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의 산재 사고 사망자는 1만 명당 0.386명입니다.

과거보다 줄어들고는 있지만 작년 한 해 동안에도 827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산재 사망자가 끊이지 않는 데엔 고착화된 노동시장 이중구조, '위험의 외주화'를 낳는 하청·재하청, 안전보다는 속도나 성과를 중시하는 문화, 솜방망이 처벌 등이 복합적인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전문가들은 저출생과 사회 갈등, 높은 자살률과 산재발생률 등의 병폐들이 지난 80년간 우리 사회가 이룬 빠른 성장의 '대가'라고 말합니다.

이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선 약자에 대한 보호, 다름에 대한 포용, 불평등 완화 등 그간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던 가치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습니다.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쟁과 교육은 한국전쟁 이후 우리가 최빈국에서 경제 선진국으로 고도 성장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었지만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며 "돌봄·주거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과도한 경쟁과 불합리한 격차가 저출생의 원인이라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홍 교수는 "소수의 대기업 일자리를 획득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다 보니 누구를 만나 결혼하고 출산하는 것보다는 생존이 더 중요한 시기가 됐다. 과도한 사교육, 수도권 집중 등 문제도 결국은 일자리 경쟁과 격차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며 "급격한 산업화의 부작용을 바로잡기 위해 나서야 할 때"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놀라운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이뤘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더 불안하고 무기력해졌다"며 "차별이 심하다고 느끼고 불신이 넘치는 사회가 됐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려울 때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망, 나이·젠더·출신 배경 등에 따라 차별받지 않는 평등, 투명하고 공정한 규칙 등이 보장되는 품격 있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의 경제 성장도, 민주화도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도 "우리나라는 경제 선진국이 됐지만 노동 현실은 아직 후진국"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일하다 목숨을 잃고 있고, 성과와 실적 경쟁을 우선시하는 분위기 속에 심리적 압박에 자살하는 이들도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교수는 "많은 사회 문제를 잉태 내지 동반하는 가운데 경제 기적을 이뤘다고 봐야 한다"며 "이제 경제와 사회의 불균형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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