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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AI 칩도 돈 내면 중국 수출 허용하나…우려·논란 일파만파

김경희 기자

입력 : 2025.08.12 16:01|수정 : 2025.08.12 16:01


▲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젠슨 황 엔비디아 CEO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엔비디아의 중국 전용 저사양 인공지능(AI) 칩 수출을 허용한 데 이어 성능을 낮춘 최신 칩 수출까지 허용할 의향을 시사하면서 미국에서 이를 둘러싼 합법성 논란과 국가안보 침해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지시간 11일 엔비디아가 사양을 낮춘 최첨단 AI 칩을 중국에 팔도록 허용하는 데 열려 있음을 시사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보도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부정적인 쪽으로 약간 개선된 블랙웰(칩)에 대해 거래가 가능하다"며 "다시 말해 30∼50%를 블랙웰의 성능에서 빼라"고 말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같은 조치를, 미국이 최첨단 전투기의 저성능 버전을 외국에 판매하는 것에 비유했습니다.

그러면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곧 이 문제를 두고 협의할 수 있음을 내비쳤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황 CEO가 이 문제를 놓고 다시 나를 보러 올 거라 생각한다"며 "하지만 큰 칩(고성능 칩)의 성능을 떨어뜨린 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블랙웰은 생성형 AI 모델의 추론과 학습에 최적화된 엔비디아의 최신 칩입니다.

이전 세대 제품은 H100 칩이었는데 전임 바이든 행정부는 이 반도체가 중국의 군사·기술 분야 AI 역량을 키워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고 보고 수출을 금지했습니다.

그러자 엔비디아는 미국의 수출 통제 요건에 맞춘 저성능 AI 칩 H20을 개발해 중국에 수출해 왔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4월 이 저성능 칩조차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며 사실상 수출을 금지했다가 지난달 다시 수출을 허용했습니다.

미중 무역협상 과정에서 중국이 희토류 수출 제한을 해제하기로 한 데 따른 조치로 풀이됐습니다.

엔비디아의 경쟁사인 미국 AMD의 AI 칩 MI308도 똑같이 수출이 통제됐다가 재개가 허용되는 번복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러나 수출 허가의 대가로 트럼프 대통령이 엔비디아와 AMD에 대 중국 수출 매출액의 15%를 미 정부에 납부하도록 합의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미국 정치권과 법조계, 산업계에선 큰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 매출액의 일부를 정부에 지불하도록 한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합의는 오랜 기업 관행을 뒤흔든 것으로, 워싱턴과 베이징에 충격파를 촉발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당장 정치권에선 여야를 떠나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하원 미중위원회 공화당 위원장인 존 물러나 의원은 "수출 통제는 국가안보를 지키는 최전방의 방어선이며, 정부가 중국에 AI 역량을 강화할 기술을 판매할 면허를 내주도록 장려할 선례를 만들어선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위원회의 민주당 간사인 라자 크리슈나무어시 의원은 "안보 우려에 가격표를 붙임으로써 우리는 중국과 동맹국들에 미국의 국가안보 원칙은 적절한 값을 치르면 협상 가능하다는 신호를 보낸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수출 통제는 미국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수입을 창출하기 위한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또 소식통을 인용해 일부 안보 담당 관리들이 사퇴를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한 관계자는 "국가안보를 판매용 상품으로 내놓으려고 수출 통제 공무원들이 매일 일어나 출근하는 게 아니다"라며 "이 합의는 우리 수출 통제 체계에 지속적인 피해를 가한다"고 비판했습니다.

트럼프 1기 때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일한 중국 전문가 라이자 토빈은 "우리는 훗날 이 일을 미국이 자발적으로 자국의 전략적 쇠퇴에 보조금을 주기로 선택한 순간으로 회고할지 모른다"며 "우리 시대의 가장 큰 후과를 낳을 기술 경쟁에서 우리에게 우위를 제공했던 바로 그 AI 칩을 중국에 넘기는 셈"이라고 말했습니다.

블룸버그는 수익 분배 합의와 블랙웰 수출 허용 가능성 등이 "무역 양보를 대가로 미국을 위해 재정적 이익을 확보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일관된 노력을 반영한다"면서도 "이런 전례 없는 합의는 모든 미국 기업에 선례를 만들고 수출 통제에 대한 정부의 국가안보 논리를 위협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매출액의 일부를 정부에 납부하기로 한 조치는 합법성 논란도 낳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수출통제개혁법에 따라 수출 통제를 시행할 권한을 갖지만 허가 신청과 관련해 수수료를 부과하는 것은 금지돼 있습니다.

또 미 헌법상 연방정부가 수출품에 대해 세금이나 관세를 부과하는 것도 금지됩니다.

이 때문에 이번 합의를 수출세, 또는 불법 리베이트를 받는 걸로 볼 수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합의의 세부 사항을 알 수 없어 합법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사진=홍콩 SCMP 캡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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