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뉴스

뉴스 > 정치

"해방이 왔으면 형무소 열어야"…'사법 피해자' 프레임 해제(解題) [스프]

최선호 논설위원

입력 : 2025.08.11 18:02|수정 : 2025.08.11 18:02

[이브닝 브리핑]



이브닝브리핑
'조국 사면' 확정...윤미향, 최강욱, 홍문종, 정찬민 전 의원 포함
오늘 오후 2시 30분 임시 국무회의 '사면 복권 대상자' 확정
오늘(11일) 오후 열린 임시 국무회의에서 조국 전 대표 사면이 확정됐습니다. 그동안 보도됐던 많은 인사들의 이름이 모두 포함됐습니다. 정경심 전 교수와 최강욱, 윤미향 전 의원이 형선고실효 및 복권 대상에 이름을 올렸고,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의 본회의장 텔레그램에 등장했던 야당 인사들 홍문종, 정찬민, 심학봉 전 의원도 사면 복권됐습니다.

조국, 윤미향 두 사람 논란에 밀려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유죄 확정), 이용구 법무차관(택시기사 폭행 사건으로 유죄 확정), 은수미 전 성남시장 등도 사면 또는 복권됐습니다. 여야 정치인 외에도 서민생계형 형사범을 포함해 사면 복권 대상자는 2,188명에 이르고, 소상공인이나 운전 관련 생계형 행정제재 대상자 834,499명에 대해서는 특별 감면조치도 함께 시행됐습니다.

국무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됐기 때문에 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이나 설명을 직접 들을 수는 없었는데, 법무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국민 통합이라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고, 우리 사회의 극심한 분열과 갈등을 넘어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도약하기 위하여 장기간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 헌신한 주요 공직자들을 비롯한 여야 정치인 등을 대폭 사면"했다고 밝혔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과 정치권 및 유권자들의 평가와 반응은 오늘 저녁 8시뉴스에서 확인하실 수 있을 텐데, 이 글에서는 사면 결정을 둘러싼 정치적 셈법과 '사법 피해자' 프레임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찬바람 불 때쯤' 예상 많았는데..."결심했으니 진행된 거지"
사실 조국 전 대표는 찬바람이 불 때쯤 나올 거란 예상이 많았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봤습니다. 이재명 정부 첫 사면인 광복절 특사보다는 3특검이 성과를 낸 뒤인 연말쯤 성탄절 특사가 적절하다는 게 이른바 여권의 정무적 판단으로 보였습니다. 가끔 출연하는 TV 시사프로그램에서도 그렇게 분석했고 같이 출연했던 민주당 측 패널들도 대체로 동의하던 터였습니다.

그러다 지난 달 말부터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7월 9일 조국 전 대표를 특별면회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고, 종교계와 법학 교수들의 사면 건의 서한이 잇따랐습니다. 조국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도 공개적으로 사면을 건의했습니다. 국민의힘의 비판 성명이 나왔지만, 곧바로 송언석 원내대표의 본회의장 텔레그램 메시지가 카메라에 잡히면서 반발의 진정성은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8월 4일 본회의장에서 촬영된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 텔레그램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가 열렸던 지난 7일 즈음, 궁금한 마음에 여권 한 핵심 인사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대통령의 결심이 나온 상황인지, 아니면 최종 결심이 남은 단계인 건지?"라고 물었더니 "결심했으니 진행된 거지 ㅎ"라는 답이 왔습니다. 휘발성 강한,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숙제 같은 사안이지만, 일이 이쯤 진행된 이상 마무리짓는 게 낫다는 분위기가 역력했습니다.


'사법 피해자'...우리끼리만 통하는 만능키라면 곤란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검찰개혁특위 위원장
"해방이 왔는데도 서대문 형무소가 열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해방이 아닐 것"
추미애 국회 법사위원장 내정자
"위안부 피해자 명예회복 활동에 평생을 바쳐온 사법 피해자 윤미향"

이번 사면에 대한 여권의 생각은 '사법 피해자의 시민권 회복'이라는 표현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방이 왔는데도 서대문 형무소가 열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해방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검찰개혁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는 민형배 의원이 SNS에 올린 글의 일부입니다. 민 의원은 조국, 정경심, 최강욱, 윤미향 등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면서 "검찰의 과잉 권력 행사로 피해를 본 범민주 진영 인사들의 사면 복권이 꼭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이번 사면을 '정치 검찰에 희생된 사법 피해자들의 시민권 회복'으로 해석하는 여권의 시각을 정확히 보여주는 발언입니다.

'사법 피해자' 표현은 윤미향 전 의원을 옹호하면서 또 등장합니다. 국회 법사위원장으로 내정된 추미애 의원은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명예회복 활동에 평생을 바쳐온 사법 피해자 윤미향의 명예를 회복하는 데 광복절 특별사면권 (행사의)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윤 전 의원에 대한 검찰의 7개 공소사실(업무상 횡령, 사기 및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사기 및 지방재정법 위반,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위반, 준사기, 업무상 배임, 공중위생관리법 위반 혐의)은 1심과 2,3심에서 다르게 판단됐습니다. 1심은 대부분 무죄로 보고 벌금형을 선고했지만, 2심과 대법원은 일부 유죄로 판단해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습니다. 추미애 의원은 '정치적으로 오염된' 2,3심 재판부 때문에 그 차이가 비롯된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윤미향 전 의원은 '사법 피해자'라고 보는 겁니다.

돌아가신 김복동 할머니 시민사회장례위원회 활동을 기부금품법 위반으로 판단한 대목 등 2,3심 판결에서 석연찮은 부분이 많다는 비판과 지적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조국 전 대표의 잘못에 비해 법적 처벌이 과했다는 비판처럼, 윤미향 전 의원이 억울할 수 있겠다는 동정론 또한 존재합니다. 하지만 사법적 판단을 비판하는 것과 법적 결론을 존중하는 것은 다른 문제겠지요. 이 차이를 구분하고 자세를 가다듬는 것에서 정치가 시작됩니다. 그런 점에서 사면 관련 비판에 "나 욕하는 것들 참 불쌍하다"고 거칠고 감정적으로 대응한 윤미향 전 의원의 태도는 정치적으로 명백한 자해행위입니다.


국정지지도 주춤...잇따른 악재의 배경을 성찰할 때
2019년 이른바 조국 사태와 이듬해 윤미향 논란이 국민에게 남긴 상처와 의구심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진보의 위선, 도덕적 이중성의 상징으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입시문제에 민감한 2030세대가 그렇습니다. 진보 진영 혹은 범 민주당 진영은, 그런 평가가 보수 정치권과 일부 언론의 마녀사냥 식 공격의 결과라고 반박하지만, 윤미향 전 의원의 발언에서 보듯 진보 진영의 반박은 상대를 설득하려는 정교한 소통이라기보다 '우리끼리만 통하는' 규범을 강요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오늘 나온 대통령 국정지지도 정기 조사의 결과를 보면, 최근 여권이 '우리끼리만 통하는 만능키'의 효능감에 빠져있는 게 아닌지 성찰해야 할 때란 생각이 강해집니다.

오늘(11일) 발표된 '국정지지도' 리얼미터 조사
매주 월요일에 발표되는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통령 국정지지도는 56.5%로 나타났습니다. 지난주 63.3%에서 6.8%포인트가 빠졌습니다. 여전히 높은 수치이지만 추이가 좋지 않습니다. ARS 조사라는 점에서 구체적인 숫자보다 추세가 중요한데, 6월 정권 출범 이후 가장 낮은 수치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더 깊고 인사이트 넘치는 이야기는 스브스프리미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SBS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