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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2인자'였는데…TV 화면에서 삭제당한 김여정 [스프]

안정식 북한전문기자

입력 : 2025.08.08 09:00|수정 : 2025.08.08 09:00

[안정식의 N코리아 정식] '김여정 부각' 꺼려하는 분위기 여전히 존재?


김여정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의 딸 김주애가 등장하는 과정에서 관찰된 김여정의 위상 변화는 북한 권력의 향배를 읽는 주요 요소 가운데 하나입니다. 김정은의 여동생으로 한때 2인자 소리를 듣던 김여정이 김주애의 등장과 함께 권력의 핵심에서 밀려나는 듯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김정은이 다음의 후계 권력은 여동생 김여정이 아닌 딸 김주애에게로 간다는 것을 명확히 하고 있는 지금 두 사람의 위상 정리는 끝난 것으로 보이지만, 최근 조선중앙TV에서 김여정을 여전히 견제하는 듯한 모습이 포착돼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김주애 등장 이후 지금까지 북한 TV화면을 통해 관찰된 김여정의 위상 변화를 시간 순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주애 등장하며 김여정 밀려나
2022년 11월 ICBM 발사현장에 김주애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김정은이 어떤 맥락에서 딸을 공개했는지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하지만 김주애가 성인 여성처럼 단장하고 본격적인 공개행보에 나서면서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는데, 김주애의 등장과 함께 두드러진 것은 김여정이 밀려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습니다.

2023년 2월 8일 인민군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김주애는 주석단에 자리를 잡았고, 북한군 기병대 행진에서는 김정은의 백마에 이어 김주애의 백마까지 등장했습니다. 북한 군인들은 열병식장에서 '김정은 결사옹위'에 이어 '백두혈통 결사보위'를 외쳤습니다.
2023년 2월 열병식장에서 주석단에까지 오른 김주애

그런데, 김주애가 이렇게 열병식의 주인공으로 대접받던 시점에 김여정은 외곽으로 밀려나 있었습니다. 김여정은 열병식 전날 연회에서는 외곽에 자리 잡은 모습이 포착됐고, 열병식 당일에는 김정은 부부와 김주애가 열병식장에 입장할 때 밀집해 있는 군인들 뒤편으로 대열과 떨어져 홀로 서 있는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2023년 2월 열병식 당시 김정은 부부와 김주애가 입장할 때 멀리 떨어져 있는 김여정 (빨간 원)
 
뒤편 구석으로 밀린 김여정
이로부터 9일 뒤인 2월 17일 이번에는 김여정이 공개행사에서 뒤편 구석에 앉아있는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이날 북한에서는 김정일 생일(2.16)을 기념해 내각과 국방성 직원들 간의 체육경기가 있었는데, 김정은과 김주애는 귀빈석 중앙에 앉은 반면 김여정은 뒤편 구석에 홀로 앉은 모습이 포착된 것입니다. 더구나 김여정 옆 자리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습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이날 행사를 동영상으로 보도하면서 김여정의 얼굴이 정면으로 촬영된 화면은 한 번도 내보내지 않았고 그나마 김여정 얼굴이 방송된 것도 앞사람에 가려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수준이었습니다. 편집 과정에서 김여정을 완전히 무시한 것입니다.
귀빈석 뒤편 구석에 홀로 앉아있는 김여정, 2023년 2월 17일

이렇게 TV 화면에서도 무시당하는 수준이 돼 버린 김여정의 모습은 두 달 뒤부터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은 같은 해 4월 이번에는 김일성 생일(4.15)을 맞아 내각과 국방성 직원들 간의 체육경기를 다시 한번 열었는데, 이번에는 김여정의 착석 위치가 뒤편 중앙으로 바뀐 것입니다. 김여정 자리가 중앙으로 이동하다 보니, 조선중앙TV의 보도에서도 김여정의 얼굴은 김정은 부녀와 함께 여러 번 부각됐습니다.
귀빈석 중앙자리로 진출한 김여정, 2023년 4월


착석 위치 '중앙'으로 이동한 김여정, 입지 회복 신호
2023년 2월과 4월의 김여정의 착석 위치 변화는 김여정의 입지가 회복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습니다. 김정은이 다음 권력은 여동생이 아니라 자녀에게 간다는 것을 확실히 해 김여정의 기를 꺾어놓은 다음, 김여정의 입지를 어느 정도 회복시켜 주는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이는 상황이었습니다. 김여정이 다음 권력을 넘보지만 않는다면 김정은은 주요 간부로서의 김여정의 역할과 위상을 인정해 줄 용의가 충분히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김주애와 김여정의 위상이 이렇게 김주애 우위로 정리되면서 김여정은 대남, 대미관계 업무를 맡아보는 주요 실무 간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됐습니다. 2024년 8월 신형전술탄도미사일무기체계 인계인수기념식에서 김여정이 조카 김주애를 깍듯이 예우하는 모습이 포착된 것은 김여정도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김주애를 후계자로 떠받드는 모습으로 이해됐습니다.
김여정이 허리를 살짝 숙인 채 김주애를 안내하고 있다. (2024년 8월)

북한은 2024년 12월 31일 밤에 열린 신년경축공연과 올해 4월 개최된 신형 5천 톤급 구축함 진수식에서 김여정의 자녀를 공개했습니다. 독재체제에서 로열패밀리의 일원을 공개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인데, 김여정의 자녀를 TV를 통해 공개한 것은 한편으로는 김여정의 자녀가 후계권력과는 관계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만약 김여정의 자녀가 북한의 차기 권력을 다투는 사람들이었다면 북한이 이들을 공개했을 리는 없기 때문입니다.
올해 4월 신형 구축함 진수식 방송에서 공개된 김여정 자녀
조선중앙TV, 김여정 모습 의도적으로 삭제
그런데, 최근 북한 조선중앙TV에서 김여정의 모습이 의도적으로 삭제된 장면이 포착됐습니다.

김정은은 지난달 26일 북한의 이른바 '전승절'(정전협정 체결일, 북한에서는 미국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의미로 전승절로 부름)을 맞아 조국해방전쟁 열사묘를 찾았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95살의 최영림 전 총리도 참석했는데, 최 전 총리가 오랜만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자 박태성 총리 등 북한의 고위간부들이 휠체어를 타고 있는 최 전 총리에게 인사하기 위해 줄을 섰습니다.

김여정도 인사하기 위해 줄을 섰는데, 북한 조선중앙TV는 김여정 앞사람이 인사하는 장면까지 보여준 뒤 곧바로 김여정 뒷사람 모습을 내보냈습니다. 김여정이 악수하며 인사하는 장면만 의도적으로 빼버린 것입니다.
조선중앙TV는 김여정이 악수하며 인사하는 장면만 삭제했다. (2025년 7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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