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저편엔 또 무슨 일이 벌어졌나, 우리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깊이 있고 생생한 글로벌 지식뉴스를 전해드립니다.
첨단 기술 분야에서 메이드인 차이나가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기술을 통제할수록 자립을 벼르며 혁신을 거듭해 미국 중심의 기술 패권 구도를 흔들고 있습니다. 이른바 중국 기술 굴기의 최전선에 있는 화웨이의 기술 혁신 현장을 권란 베이징 특파원이 다녀왔습니다.
동화 속 궁전? 화웨이 '심장' 가보니 Q. 화웨이 본사를 다녀오셨는데 구글 본사처럼 캠퍼스라고 부르는 모양이죠?
제가 다녀온 곳은 선전의 반톈 캠퍼스, 둥관의 송산호 캠퍼스입니다. 캠퍼스라고 불리는 이유가 참 특이했는데요. 회사 부지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도시처럼 설계된 특이한 공간 구조와 운영 방식 덕분인데요.
화웨이 캠퍼스 중 가장 유명한 곳은 둥관의 송산호 캠퍼스입니다. 유럽의 도시 그리고 테마파크를 본 따서 만든 걸로 아주 유명한데요. 이곳을 이렇게 유럽 도시처럼 만든 이유는, 화웨이 직원의 20만 명 가운데 약 절반 이상인 11만 명이 외국 국적 직원이라고 합니다. 이런 외국 국적 직원이 화웨이 본사 그리고 화웨이 회사에 와서 일을 할 때 이질감이 들지 않고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하라, 이런 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의 뜻에 따라서 이렇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Q. 일하면서 놀고 놀면서 일하는 모습이 상상이 되는데요. 분위기가 어떻습니까?
직접 둥관 송산호 캠퍼스를 들어가 보니까 유럽 도시나 테마파크를 본딴 모습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특히 부지가 굉장히 넓다 보니 내부에 경전철 3개 노선이 운행 중이었는데 이 경전철도 스위스의 융프라우 트램을 본 따서 만들었습니다. 7.8km의 노선을, 3개 노선을 운행을 하면서 12개의 각각 다른 구역들을 이동을 할 수 있게 만들었는데요. 진짜 놀이기구를 타는 것 같은 그런 즐거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고요.
하이델베르크 광장을 본떠 만든 곳을 가보면 소리를 그 앞에서 내면 에코 방식으로 들리는 광장 분위기가 돼 있어요. 이곳에서는 그런 특이한 점 때문에 행사나 공연 들이 이뤄지고 있다고 하고요. 그러니까 방문객이나 직원들한테 복지 혜택을 주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이렇게 캠퍼스 안이 단순히 미학적, 외관적으로 예쁜 것만이 아니라 의미도 담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는데요. 캠퍼스 내에 있는 호수에 흑조, 블랙스완이 살고 있습니다. 이 흑조가 경영, 경제계에서는 예기치 못한 변수, 위기이자 기회 등을 의미하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방문객이나 직원들한테 화웨이의 기업 정신, 위기 관리 정신을 각성시키는 효과를 주고 있습니다.
Q.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첨단 기업들은 내부 시설도 잘 꾸며져 있잖아요. 거기도 그런가요?
일단 외관상 '여기서 일하고 싶다' 이런 분위기를 만든 건 비슷합니다. 특히 구글 같은 업체들이 유명한 게 식당이잖아요. 화웨이도 각 구역마다 12개의 서로 다른 빌리지마다 직원이나 방문객들이 이용할 수 있는 카페테리아가 있습니다. 제가 직접 들어가 보니까 노트북을 갖고 나와서 음료를 마시면서 동료들과 일을 하거나 토론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모습들을 볼 수가 있었는데요. 단순히 사무실이나 연구실에 앉아만 있지 않고 나와서 자유롭게 일하는 모습을 보면 약간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또 아무래도 첨단 기업이다 보니까 야근이 좀 많은 편에 속한다는데요. 그래서 직원 복지 중에는 야식을 주는 혜택도 있다고 합니다.
"살 길은 R&D 투자" 지난해 35조 원 투입 Q. 그 안에서 기술 혁신을 위한 작업들이 아주 치열하게 진행될 것 같은데요. 연구시설 내부에도 들어가 보셨나요?
아쉽게도 내부에는 들어가 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외관만 봐도 규모도 상당하고 시설도 굉장히 발전을 한 걸 보면 R&D 투자가 얼마나 잘 이루어지고 있나 짐작할 수 할 수 있게 했는데요. 최근에는 상하이에도 둥관 캠퍼스 규모의 약 2배나 되는 R&D 센터를 짓고 있다고 합니다.
Q. 화웨이는 연구개발 투자에 돈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잖아요. 연구개발 투자 규모가 얼마나 됩니까?
지난 2021년부터 총 매출의 20%를 R&D에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특히 지난해에는 1797억 위안, 우리 돈으로 약 35조 원을 투자해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인력 구성 비율도 전체 직원 20만 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11만 명이 연구 인력이라고 하니까 그만큼 화웨이가 얼마나 R&D에 공을 들이고 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탈 구글, 탈 미국' 독자 생태계 구축 Q. 화웨이가 구글의 안드로이드나 애플의 iOS에 맞설 독자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는데,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면서요?
지난해부터 화웨이가 자체 OS(운영체제)를 개발해서 자체 OS 훙멍(鴻蒙·하모니)을 탑재한 제품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스마트폰뿐 아니라 최근에는 자체 OS 훙멍을 탑재한 폴더블 노트북을 공개했습니다. 단순히 폴더블 전화기처럼 접히는 것뿐 아니라 성능도 상당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1기가 PPT 파일, 100페이지가 넘는 파일을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열었습니다.
12개 이상의 프로그램을 동시에 구동을 해도 전혀 버벅임이 없었고요. 노트북 전체가 하나의 모니터로 있잖아요. 그거를 접어서 한쪽 면을 키보드로 활용을 할 수 있는 뛰어난 성능을 보였습니다.
화웨이가 정확하게 재원을 공개하지는 않았어요. 근데 업계에서 하는 얘기를 보면 노트북에 자체 OS 훙멍뿐 아니라 사용된 칩셋을 보면 5나노의 화웨이 자체 개발 '치린'이 쓰였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자체 개발 OS뿐 아니라 자체 개발 칩셋까지 사용하면서 화웨이의 독자 생태계가 구축된 걸로 볼 수 있습니다.
Q. 화웨이가 중국의 반도체 굴기, 기술 굴기를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제품들을 계속 내놓으면서 중국 내에서는 화웨이와 화웨이 제품들에 대해서 첨단 기술 독립의 상징이라는 찬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사실 화웨이는 지난 2019년부터 미국의 고강도 제재를 받기 시작했는데요. 고강도 제재 이후에 화웨이는 조용히 R&D 투자에 매진하면서 전 영역에서의 자체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5G나 6G 같은 통신 장비에서는 이미 전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고, 반도체 칩셋 분야에서는 치린 시리즈에 있어서 5나노 분야에 벌써 수준에 다다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AI 고성능 칩 분야에서도 어센드 시리즈가 있는데, 엔비디아에 견줄 만한 수준의 칩을 양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반도체 부문에서 보면 중국에는 하이실리콘이라는 업체가 있는데요. 팹리스(설계 전문 반도체 기업) 업체인데 전 세계 분야에서 거의 탑 급에 속한다고 합니다. 이 하이실리콘이라는 업체가 바로 화웨이의 자회사입니다.
얼마 전에 파이낸셜 타임즈에서 위성 사진을 보여주면서 '선전 일대에 화웨이가 반도체 자립을 위한 대규모 생산 시설을 건설하고 있다' 이런 보도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제가 선전에 출장갔을 때 선전 외곽을 돌면서 어디에 있나 살펴봤거든요. 실제로 한창 건설 중인 대규모 부지가 있었어요. 중국의 지도 앱에서 이 지역을 찾아보니까 스웨이슈어(메모리칩 제조업체) 공장이라고 나와 있었거든요. 스웨이슈어라고 하면 화웨이랑 동떨어져 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화웨이가 상당히 관여를 했고 투자를 했고 기술과 인력을 지원하고 있는 업체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만큼 화웨이가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반도체 분야에서도 자립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미국이 때릴수록 강해졌다...제재의 역설? Q. 제재의 역설이라고 할까요? 미국이 세게 때릴수록 화웨이가 더 강해지고 있는데 이제는 내성이 생겼다고 볼 수 있을까요?
실제로 중국과 업계에서 '미국의 제재가 기회가 됐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제가 선전에 출장을 갔을 때 화웨이 임원 1명을 만났어요. '이미 화웨이는 미국의 제재를 예감하고 대비를 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했거든요.
지난 2010년 모토로라가 화웨이를 인수하려고 시도했을 때 이미 '미국이 기술 분야에서 좀 제재를 하겠구나' 이런 예감을 했다고 해요. 당시 화웨이에서는 '모토로라에 화웨이를 얼른 매각을 하자' 이런 의견과 '보호를 하자' 이런 의견이 서로 맞섰는데, 보호를 하자는 의견이 조금 더 우세해서 지금의 화웨이까지 왔다고 합니다.
이 화웨이 임원은, 2018년 화웨이 부회장 멍완저우가 체포됐고 그 이후 미국의 제재가 굉장히 거세지면서 '올 게 왔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화웨이에서는 미국의 제재 그리고 공격을 예상을 하고 있었지만 그 강도나 속도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었는데요.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속도나 강도를 보면서 트럼프 2기에 다가올 충격까지도 대비할 수 있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Q. 화웨이 기술 독립의 저력, 대규모 투자의 결과인데 특히 기술 인재 양성 전략이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
가장 부러우면서도 무서웠던 부분입니다. 제가 선전에 출장갔을 때 봤던 게 화웨이 ICT 경진대회라는 행사였습니다. 2015년부터 10년째 이어오고 있는 행사인데요. 전 세계 48개국 170여 개 팀이 결승전에 참여해서 AI 기술 기반의 능력을 겨루는 대회였습니다.
참가자들은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대학생들이 대부분이었는데요. 이 나라들은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국가들입니다. 대부분 개도국들이고요. 지금 전 세계 AI 인재난이 굉장하다고 하는데, 우방국 개도국의 인재들을 선점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서 화웨이는 화웨이에 입사할 수 있는 기회, 그 나라에서 스타트업을 창업할 수 있는 기회까지 제공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국가들에서는 이 화웨이의 프로그램이 실제로 대학에도 적용돼서 진행되고 있다고 하고요. 우리나라에서도 화웨이 ICT 경진대회가 진행되고 있어 지난해 이 경진대회에서 1위 수상한 학생은 화웨이에 실제로 입사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개도국의 인재를 선점하고 동시에 미국과 기술 패권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우군 확보에 나선 전략, 아주 똑똑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화웨이가 인재에 투자하고 있는 이런 역량 덕분에 지금까지의 발전을 이룰 수 있지 않았나 봅니다.
Q. 전방위적인 투자가 기업의 힘만으로 가능하지는 않았겠죠.
반도체 업계에서는 중국의 큰 내수 시장, 그리고 정부의 전방위적인 지원을 아주 큰 힘으로 꼽고 있습니다. 칩 하나를 만들려면 보통 우리 돈으로 2억 원에서 3억 원 정도가 든다고 하는데요. 1개 업체가 1년에 10개 정도 칩을 개발한다면 20억이나 30억이 듭니다. 소규모 업체한테는 굉장히 큰 부담이죠. 그런데 중국 정부가 공공연하게 이런 지원을 대부분 해주고 있다고 합니다.
장강열 | 파운드리 업체 대표
15년 전에 중국 파운더리 하는 친구들을 찾아가면 회사에 세 사람이었어요. 엔지니어 사장, 엔지니어 연구소장, 설계하는 사람 이렇게 세 사람만 갖고 있었는데 한 1년 있다 가면은 30명 돼요. 또 1년 있다 가면 200명 돼요. 5년 있다 가면 만나기 힘들어지죠. 그게 정부의 힘이지 않겠어요.
탕슌바이 | 중국 팹리스 업체 대표
매년 막대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어요. 중국에 반도체 펀드가 있습니다. 반도체 장비와 기술 등에 특화된 정부 자금인데 기술 자립이 시급한 핵심 산업에 집중 투자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제재 같은 충격이 있을 경우 중국 정부가 전방위적으로 보호해주는 모습도 볼 수 있는데요. 최근 미국 정부가 화웨이 칩 통제를 밝히자 중국 중앙 정부가 일제히 나서서 '권익 수호 조치를 취하겠다', '제재 조치에 동참하는 나라나 기업에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면서 강경 대응을 예고했습니다.
국가의 미래 전략도 굉장히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중국은 제조업 분야의 강국을 꿈꾸면서 지난 2015년부터 10년 계획으로 '중국 제조 2025'라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를 통해서 중국이 전기차와 조선의 최강국, 세계 최강으로 나설 수 있었는데 내년부터 다가올 또 다른 10개년 계획으로는 반도체 분야를 위시해서 첨단 기술에 투자하는 미래 전략을 세울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앞으로는 제조업 분야를 넘어서 첨단 기술 분야에서 세계 최고 강국을 꿈꾸겠다면서 국가 주도로 미래 전략을 추진하는 것도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잘 나가는 중국 반도체, 한국 넘보나? Q. 듣고 보니 우리 반도체 산업에는 영향이 없나, 걱정이 드는데요.
특파원으로 부임한 지난 2년을 되돌아보니까 놀라움의 연속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도체 분야에서 TSMC나 삼성 같이 전 세계 1, 2위 기업들에 비해서 중국이 미세 공정 분야에서는 따라잡기 힘들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D램이나 메모리 분야에서는 저가 공세로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지 않나, 업계에서는 보고 있는데요. 이렇게 국가의 전방위적인 지원, 기업의 공격적인 투자가 이루어질 경우 따라잡는 거는 정말 시간 문제라는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장강열 | 파운드리 업체 대표
메모리, 플래시라든지 D램이라든지 이거는 전 세계적으로도 삼성과 SK가 독보적인 위치를 유지하고 있는데 중국이 또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투자를 했어요. 그런데 투자한 만큼 실적이 안 나오는 거죠. 그런데 궁극적으로 중국 기업들이 어느 정도 갈 수 있는 수준은 개인적으로 본다면 3~5년 안에 간다(고 보고 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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