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우와 산사태로 피해를 입은 경남 산청군 산청읍 부리 내부마을 20일 오후 모습
시간당 최대 100㎜에 육박하는 극한호우가 쏟아진 지난 19일 아침, 경남 산청군 산청읍 부리마을에 거주하는 20대 여성 A 씨는 쏟아지는 빗소리에 일찍 잠이 깼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평소보다 비가 좀 더 많이 오는구나. 저러다 말겠지'라고 가볍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방에 있던 오전 10시쯤 갑자기 지축이 뒤흔들리는 듯한 굉음과 함께 무언가 집에 쾅하고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예전에 지진이 났을 때도 진동을 느끼지 못했는데, 이번엔 천장이 움직이는 게 보일 정도로 충격이 컸습니다.
놀라 창문 밖을 바라보니 산에서 쏟아져 나온 토사가 물밀듯 마을로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마을 곳곳은 침수되고 각종 자재는 물론 소까지 떠내려오는 처참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A 씨 집 사방이 토사에 파묻히고 침수돼 자력으로 탈출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주변 주택들이 토사와 부딪힌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1∼2분 만에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며 A 씨는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혹시나 자기 집도 주변 주택들처럼 붕괴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집 안에 고립된 채 발만 동동 굴리고 있었으나, 다행히 아침 일찍 출근한 아버지가 119에 대신 신고한 덕분에 구조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구조대원들은 침수로 인해 정문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토사가 쌓인 경로를 타고 집 뒤로 돌아와 정오를 넘은 시점에 A 씨를 무사히 구조했습니다.
이후 A 씨는 산청군에서 마련한 대피소 대신 친척 집을 찾아가 몸을 의탁했습니다.
A 씨는 "소리 지를 시간도 없이 우리 집만 남고 주변 나머지 집들이 모두 무너졌다"며 "집안에 갇힌 상황에서 밖을 바라보니 산봉우리 하나가 없어진 상태였다"고 당시의 참혹했던 상황을 떠올렸습니다.
이어 "너무 놀랐고 아직 이런 일이 나에게 벌어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며 "마을 주민들이 다수 실종됐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너무 안타깝고 무사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