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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데헌'과 '오겜3'의 글로벌 흥행…국뽕 빼고 데이터로 본 K콘텐츠 위상 [스프]

안혜민 기자

입력 : 2025.07.18 09:01|수정 : 2025.07.18 09:01

[오그랲]


오그랲
요즘 넷플릭스에 들어가면 깜짝깜짝 놀랍니다. 드라마 시리즈 글로벌 TOP 10에 들어가면 오징어게임 3가 떡하니 버티고 있고, 영화 글로벌 TOP 10을 보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만든 드라마가 전 세계 1위를 차지하고 미국에서 만든 케이팝 아이돌 애니메이션 영화가 이 정도로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한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죠.

김구 선생님이 말한 문화의 힘을 이제야 깨닫는 듯 한데요, 오늘 오그랲에서는 이 문화의 힘을 데이터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대한민국의 문화콘텐츠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또 내실은 탄탄한지 5가지 그래프를 통해 분석해 봤습니다.


마치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듯한 한국 콘텐츠
먼저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이야기를 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겠죠. 이 영화는 한국의 케이팝 아이돌이 악귀들을 때려잡는 영홥니다. 영화를 본 분들은 알겠지만 애니메이션 곳곳에 한국적인 요소가 넘쳐흐르고 있어요.

밥 먹기 전, 식탁에 휴지를 까는 건 기본이고, 어디선가 본 듯한 골목들과 장소가 나오고 민화 '작호도'에서 볼 법한 호랑이와 까치가 등장하기도 하죠. 너무나도 한국적인, 또 한국인들도 때때로 놓칠 전통 요소들을 곳곳에 배치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애니메이션 영화가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먹히겠어? 싶었는데, 웬걸요, 공개 4일 차에 넷플릭스 서비스 국가 41개국에서 1위를 달성할 정도로 대흥행을 했습니다.

케이팝 아이돌이 주인공이니만큼 영화에 등장한 노래들도 인기몰이 중입니다. 3인조 걸그룹 헌트릭스의 How It's Done과 Golden, 그리고 5인조 보이그룹 사자 보이즈의 Soda Pop과 Your Idol은 모두 3,00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 중이죠. 미국 스포티파이 차트에서는 이 노래들이 순위 경쟁까지 하고 있습니다. 오그랲 첫 번째 그래프는 사자 보이즈와 헌트릭스의 차트 순위 경쟁입니다.

6월 25일 사자보이즈의 '유어 아이돌'이 TOP10에 8위로 차트인한 이후 꾸준히 헌트릭스의 주요 곡들보다 순위가 앞서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7월 8일에 헌트릭스가 사자보이즈를 밀어내고 정상을 차지했어요. 미국 데일리차트 1위는 케이팝 걸그룹 최초의 기록입니다. 이전 최고 기록은 블랙핑크의 '사워 캔디'가 기록한 3위였고요.

물론 그보다 앞서 사자보이즈의 '유어 아이돌'은 7월 3일과 7월 7일에 차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는데, 이 기록 역시 케이팝 보이그룹 최초 기록입니다. BTS의 '다이너마이트'가 기록한 3위를 넘어서는 신기록을 세운 겁니다.

이번엔 오징어게임3의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국내에선 평가가 엇갈리고 있지만, 전 세계적인 흥행성적은 매우 좋습니다. 넷플릭스 최초로 공개 첫날에 93개국에서 1위를 기록했어요. 그리고 이 기록은 7일 연속으로 쭉 이어졌죠.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오징어게임 시리즈가 얼마나 고마울까요? 데이터를 살펴보면 오징어게임 역대 시즌의 수치가 압도적입니다. 오그랲 두 번째 그래프는 오징어게임 시즌별 주간 시청자수입니다.

시즌 1이 공개된 3주 차에 주간 시청자수가 무려 6,870만 명을 기록했는데, 이 숫자는 역대 넷플릭스 최고치입니다. 2위는 시즌 2의 공개 첫 주에 찍은 6,800만 명이고요, 3위는 시즌 3는 첫 주 시청자수인 6,010만 명입니다.

넷플릭스의 글로벌 시청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대한민국 콘텐츠의 시청시간 점유율은 8~9%로 압도적인 미국 콘텐츠에 이어 우리나라 콘텐츠가 전 세계에서 2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영국과 일본보다 더 높은 수치입니다.

사실 넷플릭스에서 확인할 수 있는 드라마, 영화뿐 아니라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한국의 힘이 느껴지고 있어요. 두 콘텐츠의 흥행에 한 달 앞서서 또 하나의 낭보가 들려왔죠? 한국 창작 뮤지컬인 '어쩌면 해피엔딩'이 미국 연극, 뮤지컬계의 가장 권위 있는 상, 토니상을 수상했습니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사랑을 다룬 한국의 SF 뮤지컬이 작품상을 비롯해 10개 부문에 후보에 올라, 이 중 6개 부문을 석권했습니다.

미국 대중문화계에 가장 권위 있는 상 4개가 있는데요, TV 방송계엔 에미상, 음악계에는 그래미상, 영화는 오스카가 있고, 연극과 뮤지컬에는 토니상이 있습니다. 이 네가지 상의 첫 글자를 따와서 EGOT이라고 부르는데, EGOT을 달성하면 미국 대중문화에 한 획을 그었다고 인정받죠. 전설적인 팝스타 엘튼 존도 EGOT을 달성하는 데 37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이번 '어쩌면 해피엔딩'의 수상으로 대한민국이 국가단위로 EGOT을 달성하게 된 겁니다. 1993년에 소프라노 조수미, 2011년에 첼리스트 김기현, 2012년에 황병준 엔지니어가 그래미상을 수상하면서 G를 제일 먼저 달성했고요, 그다음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2020년에 외국어 영화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오스카 트로피도 거머쥐었죠. 그리고 2022년에 오징어게임이 에미상을 수상하면서 EGO를 만들었고 가장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연극과 뮤지컬 분야에서 이번에 토니상을 받으면서 EGOT을 완성시킨 겁니다.

이제 해외에 나가서 한국 문화를 접하는 게 더 이상 어깨가 으쓱해지는 특별한 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해외 길거리에서 케이팝이 흘러나오고, 해외 서점에서 한강 작가의 작품을 만나는 게 놀랍지 않을 정도로 한국 문화의 영향력은 커졌습니다.


생활양식까지 바꾸는 '소프트파워' 문화의 힘
이처럼 좋은 한국의 문화가 전 세계로 퍼지면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겠죠? 넷플릭스가 지난 6월에 발표한 보고서에 이를 뒷받침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미국, 한국, 브라질, 프랑스, 일본, 태국 등 8개국의 1만 1,51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서 K콘텐츠가 한국의 세계적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본 거죠.

한국의 콘텐츠를 많이 소비하는 사람일수록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과 참여도 역시 더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콘텐츠 소비에 그치는 게 아니라 한국 음식도 맛보고, 한국의 패션과 뷰티 트렌드에도 관심을 갖고 한국어를 학습하고 더 나아가 한국을 직접 방문하는 것으로도 이어집니다.

특히 주목할만한 건 한국의 뷰티 산업입니다. 한국의 문화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한국의 스킨케어와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났거든요. 구글에서 최근 5년간 'skincare'를 검색한 글로벌 이용자들의 연관 검색어를 살펴보면 한국과 관련된 단어들이 많이 보입니다. 아예 'Korean Skincare'라는 단어도 있고요, 미국에서 대박 난 한국 화장품 브랜드, 조선미녀(Beauty of Joseon)와 글로우레시피(Glow Recipe)도 확인할 수 있어요.

이런 관심은 실제 시장의 성장으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 코스메틱 사업의 성장세를 오그랲 세 번째 그래프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전 세계 코스메틱 시장을 주름잡던 곳은 프랑스와 미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성장세가 심상치 않죠. 코로나19 판데믹에 이커머스 거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그 효과를 톡톡히 보면서 꾸준히 수출점유율을 높여가고 있어요. 2020년 미국을 제치고 화장품 수출 점유율 세계 2위에 올랐고, 그 상승세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화장품뿐만 아니라 음식에 대한 관심도 크게 늘어났어요. 불닭볶음면 같이 한국의 매운 음식에 도전하는 챌린지 콘텐츠는 이미 일찍부터 유튜브, 틱톡을 가리지 않고 유행이었죠? 참고로 불닭볶음면에 힘입어 삼양식품은 2020년 국내 매출보다 해외 매출이 더 많아지기도 했습니다. 2024년엔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의 3배를 넘어섰습니다.

라면뿐 아니라 만두도 미국을 비롯한 해외 시장에서 영향력을 펼치고 있습니다. 최근 포르투갈 여행을 갔는데 현지 식료품점에서 비비고 만두를 쉽게 구매할 수 있을 정도였어요.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대한민국 전체 식품류 수출 규모는 2013년 4조 3,100억 원 규모에서 2023년 8조 6,200억 원으로 2배 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이 한국 문화의 고점이면 어쩌지?
문화 전반에 걸쳐, 나아가 생활양식에까지 한국의 영향력이 커지다 보니 문화의 힘이 이렇게 대단하구나 새삼 놀라게 됩니다.

전 세계 문화콘텐츠 시장은 연평균 5%가 넘게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는데요, 지금과 같은 흐름이 계속된다면 당연히 우리나라의 영향력도 커질 겁니다. 그런데 한국 문화의 이런 강력한 바람이 얼마나 지속될까요? 한편에서는, 지금이 한국 문화의 정점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우리나라의 콘텐츠 시장 규모는 2024년 기준으로 전 세계 8위입니다. 문제는 향후 성장 전망치가 그리 밝지 않다는 점입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24년 해외 32개국의 콘텐츠 시장을 분석했는데요, 한국의 콘텐츠시장은 향후 5년간 연평균 3.46%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었습니다. 조사 대상국 중 뒤에서 7등으로 상당히 낮아요.

콘텐츠산업의 수출액 흐름에서도 성장에 브레이크가 걸린 모습입니다. 오그랲 네 번째 그래프입니다.

2013년엔 대한민국 콘텐츠 산업 수출액이 채 50억 달러가 되지 않았었는데, 2019년엔 100억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연간 성장률이 크게 꺾였어요. 2023년 수출액 성장률은 0.7%로 최근 10년 중 가장 낮았고, 2024년 역시 1.8% 성장에 그쳤습니다.

우리 문화의 힘이 정체된 것 아니냐는 목소리는 특히 영화계에서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뉴욕타임스에서 전 세계의 영향력 있는 영화인 5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서 21세기 최고의 영화 10편을 뽑아달라고 요청했는데요, 1위가 바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었습니다.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 독자가 선정한 순위에서도 '기생충'은 1위를 차지했어요.

'기생충' 외에 100위 안에 들었던 한국 영화는 '살인의 추억'과 '올드보이'가 있었습니다. 독자들 순위에선 '아가씨'도 포함되었고요.

문제는 이겁니다. 봉준호, 박찬욱 그다음에 올 넥스트 인물이 없다는 거죠. 봉준호, 박찬욱, 거기에 홍상수, 이창동까지 이른바 '봉박홍이' 이후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감독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두고 영화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요.

올해 칸영화제에 한국 영화 초청작이 한 편도 없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러한 위기론에 불을 지폈습니다. 물론 1차 초청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았을 뿐 최종 초청작에는 대한민국 영화 2편이 포함되었습니다. 오그랲 마지막 그래프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1984년 우리나라 영화가 처음으로 칸영화제에 초청된 이래로 현재까지 총 137개 작품이 초청되었습니다. 올해 초청작은 딱 두 편 있었고요. 그래프를 보면 적지 않은 한국영화가 경쟁 부문과 주목할 만한 시선 등이 포진된 칸영화제 공식 부문에 초청되어 왔어요.

그 정점은 2009년이었습니다. 당시 박찬욱 감독의 박쥐, 봉준호 감독의 마더,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포함해 장편, 단편, 고전 복원 작품까지 포함해 총 9편이 초청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세가 지금은 꺾였어요. 2010년대 초반 상승세를 보였던 한국영화는 더 이상 칸영화제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케이팝의 위기론도 비슷합니다. BTS와 블랙핑크 다음이 보이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어요. 실제로 두 그룹이 지난해 그룹 활동을 쉬면서 케이팝 성장세가 주춤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실물 음반 판매량은 2023년 피크를 찍고 2024년엔 20% 가까이 줄기도 했고요.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선봉장이었던 한국영화와 케이팝에서 최근 성장세가 꺾이는 등 경고등이 켜지고 있는 상황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정말 한국 문화는 이제 정점을 찍고 내려올 일만 남은 걸까요? 어쩌면 아직 너무 이른 판단일지도 모릅니다. K 콘텐츠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은 여전히 뜨겁고, 미국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같은 작품이 또 나오지 않으리란 법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오늘 확인한 데이터를 보면 화려한 외형과는 다르게 우리 내부의 동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언젠가 본 듯한 속편과 리메이크 작품들이 극장가를 채우면서 새로운 이야기는 점점 찾아보기 힘들어졌고, 한국 영화의 칸영화제 초청 실적은 하향세에 접어들었죠.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더 깊고 인사이트 넘치는 이야기는 스브스프리미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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