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쓰면 되는데 굳이…" 대통령실에서 네이버·LG 인재 영입한 이유는 '소버린 AI'? [스프]
안혜민 기자
입력 : 2025.07.11 09:03|수정 : 2025.07.11 09:03
[오그랲]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국정을 운영할 인사들이 발표되고, 곧 있으면 인사청문회 정국이 시작됩니다. 이미 발표된 인선을 보면 매우 파격적인 인물들도 눈에 띕니다. 그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던 건 대한민국 과학과 기술, 특히 AI를 이끌어 나갈 사람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오그랲에서는 대한민국 AI를 이끌어나갈 리더들과 이들이 주목하고 있는 소버린 AI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도대체 소버린 AI가 무엇이길래 이번 정부에서 이렇게 파격 인사를 하면서까지 공을 들이는 것인지 5가지 그래프를 통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소버린 AI' 말하던 전문가... 공직으로 전격 발탁
이번 인선 중에서 가장 핫했던 인물은 아마도 초대 AI미래기획수석비서관으로 발탁된 하정우 수석일 겁니다. 하정우 수석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이후 삼성SDS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근무하다가 2015년 네이버에 입사해 주욱 네이버의 AI를 이끌어온 AI 전문가입니다. 직전까지 네이버 퓨처 AI센터를 이끌면서 네이버의 AI 모델인 하이퍼클로바X를 총괄해 왔죠.
젊은 기업인을 차관급인 청와대 수석으로 발탁하는, 말 그대로 파격적인 인선이 이뤄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하정우라는 인물을 검색했는데요, 1,000만 배우 하정우보다 먼저 검색될 정도로 뜨거웠습니다.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도 주목할만합니다. 배경훈 장관 후보자는 광운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삼성탈레스, SK텔레콤 등을 거쳤습니다. 하정우 수석이 네이버에서 AI를 책임지고 있었다면 배경훈 장관 후보자는 LG에서 AI를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2016년에 LG에 합류한 배경훈 후보자는 2020년부터 LG AI연구원을 이끌면서 LG의 AI 모델인 EXAONE 개발을 관장했어요.
대한민국에서 AI 모델을 주체적으로 만들던 기업은 네이버와 LG 이렇게 두 곳이 대표적인데, 이 기업들의 실무 책임자를 전격적으로 공직자로 발탁한 겁니다. 두 사람이 기업 출신의 AI 전문가라는 공통점도 있지만 또 다른 공통점도 있습니다. 바로 '소버린 AI'죠.
이들이 강조하는 소버린 AI. '자주적인', '주권이 있는'이라는 뜻을 가진 소버린에 AI가 붙은 것으로, 단어 뜻 그대로 각 국가가 주체성을 갖고 만든 AI를 의미합니다. 다른 문화권에서 만들어진 AI 모델은 우리 문화와는 맞지 않은 정보를 제공해 줄 가능성이 있거든요.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 국가별로 자신들의 제도와 문화, 역사를 정확히 이해하는 주체적인 AI를 만들고 운영하겠다는 게 바로 소버린 AI입니다. 단순히 데이터와 AI 학습에서 주체성을 갖는 것을 넘어서서 데이터센터와 같은 인프라, 또 전력망과 에너지까지 AI 전체의 가치 사슬에 기술 주권이 필요하다는 개념으로도 확장됩니다.
소버린 AI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나면서, 기술 혁신의 흐름을 한눈에 보여주는 가트너의 하이프 사이클에서도 그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그랲 첫 번째 그래프입니다.
미국의 리서치 기업 가트너에서는 매년 특정 기술의 성숙도를 표현하는 그래프를 발표하는데요, 작년에 발표한 이 사이클에서 소버린 AI는 기술에 대한 기대가 최정점에 오르는 거품기 영역 초입에 있습니다. 이 위치에 있다는 건 이미 일부 기업들은 소버린 AI 개발에 착수하고 있는 반면 일부 기업들은 거품이라 생각하며 아직 관망하고 있다는 건데요. 즉 어쩌면 지금이 소버린 AI에 뛰어드는 조직과 그렇지 않은 조직 사이의 격차가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할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소버린 AI를 두고 관망하는 국가, 기업들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굳이 글로벌 시대에 국내 기술로만 AI 모델을 만드는 것이 경쟁력 있냐는 거죠. 또 현실성이 있냐는 문제도 있고요. AI 기술을 선도하고 있는 미국의 모델과 우리나라가 개발한 AI 모델 사이엔 현실적으로 성능 차이가 있는데, 굳이 성능 떨어지는 자국 모델을 쓰고 개발할 바에는 해외에 잘 나가는 AI 모델을 사 오거나, 혹은 협업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겁니다.
게다가 돈을 내지 않고도 대중들에게 공개하고 있는 오픈소스 AI 모델들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만큼 이런 모델들을 활용해서 개발하는 게 훨씬 이득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어요.
이 그래프는 무료로 공개된 오픈소스 모델과 돈 내고 써야 하는 폐쇄형 모델의 성능을 비교한 그래프인데요, 오픈소스 AI 모델의 성능이 나쁘지 않습니다. 가장 성능이 좋은 폐쇄형 모델과 비교해 보면 시차는 존재하지만 점점 줄어들고 있고, 서비스를 만들고 적용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는 수준이죠.
그런데 말이죠. 최근에 발생한 이 사건 때문에 소버린 AI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갖던 여론이 변하고 있습니다.
유럽이 네타냐후 때리자 이메일 끊어버린 트럼프
지난해 11월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국제형사재판소, ICC에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팔레스타인 하마스 군사 지도자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했습니다. 이들이 가자지구에서 벌인 전쟁으로 반인륜범죄를 저질렀다는 혐의였는데요, ICC에서 서방 동맹국의 현직 지도자가 전쟁 범죄와 반인륜범죄 혐의로 기소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이스라엘과 미국은 강력히 반발했어요. 지난 2월에 네타냐후가 미국을 방문했는데, 이 시기에 맞춰서 트럼프 대통령이 ICC를 제재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기도 했죠.
이 행정명령 이후, 제재 리스트에 오른 검사팀의 마이크로소프트 아웃룩 계정이 정지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검사들이 사용하던 이메일과 클라우드 서비스가 아예 중단되어 버린 거죠.
이 사건이 유럽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트럼프가 막 나가는 건 뭐 한두 번 일이 아니니까 그럴 수 있다고 치더라도,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렇게 발 빠르게 이행한다?
트럼프가 미국의 기술 패권을 무기 삼아 동맹국에게도 공격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자 유럽은 당장 행동에 나섰습니다. 당장 국제형사재판소에서는 업무 시스템 일부를 미국 서비스가 아닌 유럽산으로 교체했죠.
2024년을 기준으로 미국 기업들은 유럽 클라우드 시장의 60% 이상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애저가 21%로 가장 높고, 여기에 2위 아마존의 AWS까지 합치면 38%가 넘죠. 거기에 구글 클라우드, IBM, 오라클 같은 다른 미국 기업까지 더하면 그 비율은 60~65%까지 늘어납니다.
미국 기술 기업에 기대고 있었던 유럽은 이 사건이 터진 후 유럽이 주체적으로 개발한 클라우드 서비스 이른바 소버린 클라우드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나아가 앞으로 개발할 AI에서도 타국에 휘둘리지 않을 소버린 AI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죠.
국제형사재판소가 위치해 있는 네덜란드에서 가장 적극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당장 네덜란드 중앙은행 총재는 네덜란드 결제 시스템인 iDeal이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에 의존하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네덜란드의 유럽 의회의 의원인 바르트 그루트하위스는 아예 유럽이 자체적으로 사용할 클라우드를 만들자고 촉구했고요, 네덜란드 내의 국회의원들은 정부를 향해 2029년까지 네덜란드나 유럽산 클라우드를 최소 30%는 사용해야 한다고 청원하기도 했습니다.
'기술 주권' 뼈저리게 느낀 유럽... 소버린 AI 투자 확대
이 사건 이후 유럽에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버린 AI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하고 있습니다. 오그랲 네 번째 그래프는 유럽의 소버린 AI 투자 현황입니다.
일단 영국은 아예 소버린 AI 전담 부서를 설립했고요. 영국의 AI 모델 컴퓨팅 역량 개선에 10억 파운드를 지원할 것이라 발표했어요.
프랑스는 자국의 간판 AI 스타트업인 미스트랄에 공력을 더 들일 계획입니다. 미스트랄의 데이터센터 인프라에 85억 유로를 투자할 예정입니다.
덴마크는 작년부터 자체 소버린 AI인 게피온에 7억 덴마크 크로네를 투자한다고 이야기했고요,
독일의 도이치 텔레콤은 유럽 최초로 산업용 AI 클라우드 플랫폼을 구축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유럽연합 차원에서는 200억 달러를 투자해서 유럽 내에 4개의 AI 기가팩토리를 구축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유럽 국가들의 발표를 유심히 살펴보면 국가 정상들과 함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젠슨 황이죠. 엔비디아는 유럽 국가들이 소버린 AI의 필요성을 느끼자 그 니즈에 발 빠르게 반응하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젠슨 황은 국제형사재판소와 마이크로소프트 사이의 사건이 터진 직후인 지난달부터 유럽 순방에 나서고 있습니다.
사실 소버린 AI라는 개념 자체가 젠슨 황이 지난 2023년부터 세일즈 하던 개념입니다. 국가별로 언어와 지식, 역사, 문화가 다른 만큼 자국만의 AI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그런 소버린 AI 만들 때 필요한 인프라, GPU는 엔비디아 것 사라고 판촉 행사도 함께 하는 거죠.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국가별로 개발한 초거대 AI 모델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압도적인 1, 2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128개의 모델, 중국이 95개 모델을 개발했어요. 그 뒤를 우리나라와 프랑스, 일본, 독일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순위가 낮은 유럽 주요 국가들도 늘어나는 투자와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앞으로 규모가 더 커질 겁니다. 우리나라도 이에 뒤처지지 않게 지원하려고 하고 있고요.
통계로 보면 우리나라의 소버린 AI 경쟁력이 나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이 개발한 초거대 AI 모델이 총 14개로 전 세계 3위거든요. 이 14개 모델 중 네이버 모델이 3개, LG가 개발한 모델이 5개입니다. 한국의 소버린 AI를 만든 두 기업의 전문가가 지금 공직에 들어와 있는 것이죠.
점점 더 문 닫는 AI 기술... 소버린 AI가 대안 될까?
이 문서는 작년 10월에 바이든 대통령이 발표한 AI에 대한 국가안보각서, NSM입니다. NSM은 안보 관련 지침을 미국 정부 내 각 부처에 전달하는 공식 문건인데요, 과거에 핵전략 사용과 확산 방지 관련해서 진행되던 문건입니다. 이 문서에서 미국 정부는 앞으로 AI 기술을 핵무기와 같은 국가 전략 자산으로 간주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본격적으로 미국이 자국의 AI 기술을 정부가 나서서 지원하고, 통제하겠다는 것이죠. 마치 핵무기처럼 말이죠.
AI에 있어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는 미국이 앞으로 더 자국의 기술을 보호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나 트럼프 정부에선 이미 유럽이라는 동맹국을 향해 클라우드 차단이라는 실제 행동까지 보였으니 배타적인 모습이 줄어들 거라고 기대하긴 힘들지 모르죠.
게다가 오픈소스 모델의 선두 주자였던 메타가 오픈소스 모델 개발을 그만둔다는 얘기도 솔솔 들려옵니다. 지난달 말에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메타가 그간 오픈소스로 개발하던 모델 Llama를 폐쇄형으로 돌리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하더라고요. 우리나라가 앞으로 닥쳐올 AI 시대에서 외풍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기술 안보 측면에서라도 소버린 AI가 대안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뿐만 아니라 데이터 주권이나 프라이버시 측면에서도 생각해 볼 지점이 있습니다. 가령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료 기록과 금융 데이터 같은 민감한 개인 정보가 해외 기업이 소유해도 될까요? 중국 딥시크 쇼크가 터졌을 때, 바로 나왔던 이슈가 내 개인정보가 중국으로 빠져나간다는 데 괜찮을까였거든요. 중국에 내 정보가 나가는 것은 안 되고, 미국은 괜찮다? 점점 더 배타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이런 판단도 쉽게 하기 어렵습니다.
특히나 국방, 군사 분야에서의 AI 활용이 점차 늘어나는 상황에서 외국 AI 모델에 자국 국방 관련 데이터를 제공하는 건 위험할 수 있죠. 소버린 AI는 이러한 민감한 데이터를 자국 내에서 처리, 보호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해 준다는 측면에서 이점이 있습니다.
또한 자국의 데이터를 가지고 학습한 만큼 자국의 문화와 가치관을 이해하는 AI라는 강점도 있습니다. 빅테크에서 만든 모델이 아시아 문화를 이해하는 정도와 아시아에서 만든 모델이 아시아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미국과 중국의 모델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각각의 AI 모델을 지향한다는 측면에서 소버린 AI를 포용적 AI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미 이런 모델을 운영하는 국가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싱가포르가 있는데, 싱가포르는 특히 의료 분야에 집중했습니다. 기존 의료 데이터는 서구인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싱가포르에서는 슈퍼컴퓨터 ASPIRE를 활용해서 싱가포르인과 동남아시아인에 특화된 유전적 특징을 분석해서 의료 분야에 활용하고 있어요.
의료, 바이오 데이터뿐 아니라 법률, 문화 등에 소버린 AI가 성공적으로 적용된다면 서로 다른 다양한 문화가 기술에 녹아들 수 있고, 나아가 국가의 공공 서비스와 핵심 산업에서는 AI를 통한 혁신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겁니다.
이번 정부의 소버린 AI에 대한 의지는 확실해 보입니다. 네이버와 LG에서 AI를 이끌던 핵심 인재들을 공직으로 발탁한 것만 봐도 단순한 구호가 아닌 실질적인 변화를 추진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지죠. 게다가 세계정세의 흐름을 보더라도 소버린 AI의 필요성은 명확해 보입니다. 트럼프의 제재가 유럽이 아닌 대한민국을 향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으니까요
일단 해외 빅테크들과 손 잡았던 우리나라 기업들도 정부의 방향에 발맞춰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KT와 SKT에서는 자체 AI 모델 개발에 다시 힘을 쏟고 있고, 다른 기업들도 해외 의존도를 줄이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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