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재생에너지 확대에 관심이 쏠립니다. 기후와 에너지 정책을 한 바구니에 넣어 시너지를 높이려는 기후 거버넌스 재편 작업도 한창입니다. 이와 관련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재생에너지 도입 국가이죠. 지난 10여 년간 영국에서 펼쳐진 에너지 전환의 현장을 참관한 내용을 2차례 나눠 전하고자 합니다.
1.영국에서 본 해상풍력…'비싼 만큼 더 설치해야 한다'는 역설
2.'재생 vs 원전' 정치적 진영주의에 갇힌 에너지 논쟁, 영국은 어떻게 달랐나
바람 많은 영국 북동부 티사이드(Teeside) 지역, 이곳엔 해상풍력 산업의 새로운 거점으로 자리 잡은 티스웍스(Teesworks) 산업 단지가 있습니다. 해상풍력 발전을 위한 하부 구조는 물론 그린수소와 CCS에 이르기까지 영국 청정에너지 산업의 중심지의 하나로 거듭나는 곳입니다.
이곳은 불과 10년 전만 해도 극심한 경기 침체에 시달렸습니다. 170여 년간 이어져 온 영국 철강산업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었지만, 중국 인도 등과의 국제경쟁력에 밀리면서 내리막길을 걸었고, 마지막으로 남았던 레드카 지역의 SSI라는 철강 기업이 2015년 문을 닫으면서 심각한 실업률을 겪어야 했습니다. 티사이드는 영국 북해 원유와 가스 시추량이 파이프를 통해 내륙으로 들어오는 거점이기도 했습니다. 1990년대 말 일 생산량 440만 배럴로 시추량 피크를 찍으며 전성기를 누렸지만 현재는 100만 배럴로 줄었습니다. 원유전 고갈과 에너지 전환의 영향이었습니다. 오는 2029년에는 66만까지 감소될 것으로 북해 전환 당국 NSTA는 예상합니다. 이 같은 북해 유전의 침체도 티사이드의 쇠락을 더욱 깊게 만들었습니다.
쇠락한 철강산업 상징, 에너지전환 거점으로
지난달 25일 티사이드 윌턴 센터에서 만난 티스 밸리 지자체 관료들로부터 에너지 전환 및 산업 전환을 이루게 된 배경에 대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티스 밸리는 티사이드를 비롯해 레드카 앤 클리브랜드 등 인근 지자체 5곳이 뭉쳐진 광역급 지자체입니다. 이중 레드카 앤 클리브랜드 카운슬의 알렉 브라운 리더 오브 카운슬(우리로 치면 군수)은 무엇보다 우수한 노동인력의 강점을 성공 비결로 꼽았습니다.
"우리 가족도 대대로 철강산업의 종사자들이었습니다. 철강업이 무너지면서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잃은 것 같은 상실감이 있었죠. 하지만 넷제로 산업이 들어오면서 선순환이 일어났습니다. 철강산업 당시 다져진 숙련된 노동자들이 있었고 광산도 있어서 기술 기반 인력이 많았습니다. 산업 변화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산업혁명기 이래 영국 최대 무역항의 하나였던 항구 도시인 리버풀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리버풀의 상징 머지 강 연안에선 17세기 후반부터 조선업이 발달하기 시작해 노예무역, 면화, 담배 등 교역을 거치면서 선박 수요가 급성장했습니다. 하지만 2차대전 이후 선박 수요 감소에 이어 저비용 체제를 구축한 일본, 한국 등 아시아권 조선업체들의 등장으로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리버풀은 축구와 비틀스 등을 배경으로 한 문화예술 도시로의 재건이 추진돼 왔고 이와 더불어서 재생에너지를 통한 신산업 전환도 주요한 목표가 됐습니다. 현재 리버풀 만 앞바다에는 348MW 규모의 버보 뱅크 풍력단지가 가동되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아웰모어 1GW, 모건 800MW, 모나 800MW 등 엄청난 규모의 풍력단지들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해상풍력뿐만이 아닙니다. 바다와 만나는 머지 강이 가진 천혜의 입지를 이용해 세계에서 가장 큰 조력발전소도 추진되고 있습니다. 우리 수자원공사도 리버풀 지방정부와 기술협력 협약을 맺고 참여하고 있습니다. 수공은 이미 인천 시화호에서 세계 최대 규모인 254메가와트급 조력발전소를 건설 운영해오고 있죠. 리버풀에 세워질 조력발전소는 시화호의 두 배 규모로 추진됩니다.
티사이드 내 티스웍스 단지에도 우리 기업 세아제강이 세운 현지법인 세아오션윈드가 입주해 있습니다. 4억 5천만 파운드, 우리 돈 약 8천3백억 원을 투자해 티스웍스 산업단지 내 36만 ㎡ 부지에 유럽 내 최초의 해상풍력 하부구조인 모노파일 전용 공장이 지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공장 건설 공정은 90% 이상 진척됐습니다. 750명의 직접 고용 창출 간접 고용까지 1,500명 규모의 고용 효과가 예상되는 등 티사이드 지역 재생 전략의 핵심이라는 게 지자체 측의 설명입니다.
영국 해상풍력 어디까지 왔나?
이렇게 지역 곳곳에 해상풍력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영국 전국적으로도 재생에너지 보급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이미 전기 생산의 절반 가까이가(48%) 재생에너지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해상풍력만 떼어보면 18%에 이릅니다. 현재까지 전 세계에 깔린 누적 해상풍력 용량 83GW 가운데 15.9GW가 영국 몫입니다. 이 같은 자신감으로 영국은 지난해 10월 마지막 석탄화력발전소 '랫클리프 온 소어'의 영구 중단에 나서기도 했죠.
에너지전환을 통해 탄소중립 목표에 다가갈 뿐 만 아니라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게 됐다는 점이 국가적 차원에서 가장 효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던 2022년의 경우 영국뿐 아니라 유럽 여러 나라에서 겨울철 난방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에너지난에 시달렸는데요. 당시 해상풍력 발전 덕분에 수입 에너지 대체 효과가 4.5조 원대에 달했던 걸로 분석됐습니다. 화석연료와 달리 연료비가 없는 데다 연소시설 관리가 필요 없어 장기적 운영비용이 낮다는 장점 덕분입니다.
늘어난 재생 발전, 전기요금엔 어떤 영향?
특히 소비자 입장에선 대폭 늘어난 재생에너지가 전기 요금 상승을 완화하는 효자 역할도 했습니다. CFD(Contracts for Difference)라는 재생에너지 지원제도 덕분입니다. 정부가 사들이는 재생에너지 '기준가격'이란 게 있는데 시중 전기 도매가격이 이보다 낮을 땐 그 차액만큼을 정부가 보전해주기도 하고 반대로 높을 땐 재생에너지 발전사가 정부에 환급하는 구조입니다. 전쟁 당시 도매가격이 치솟자 재생 발전사들이 큰 수익을 거두게 되자 환급이 실제로 이뤄졌습니다. CFD 운영 재원은 소비자들의 전기요금 청구서에 CFD 부담금으로 포함돼 있는데, 재생 발전사들이 환급한 돈 덕분에 소비자들의 CFD 부담금을 깎아주는 구조입니다.
그런가 하면 영국 해상풍력의 또 다른 특징 중의 하나는 관련 기자재의 제조 공급망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핵심 장비인 터빈과 블레이드, 타워, 하부구조까지 어디를 봐도 자체 기술보유나 영국 자국 내 기업의 참여가 눈에 띄지 않습니다. 과거 BP 등 석유개발 기업들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해상풍력 디벨로퍼로서 영역도 개척하고 있지만, 정작 영국 내 해상풍력 개발의 대부분은 덴마크 등 인근 국가 기업들이 도맡을 정도였습니다.
국내에서도 해상풍력 관련 국산화율 관련 논란이 되풀이 돼왔습니다. 바다를 외국 기업에 내준 채 국부를 유출시킨다거나 공급망을 손에 쥔 중국 등 일부 국가의 배를 불린다는 식의 논란인데요. 영국에서도 최근 이 같은 논란이 고개를 들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풍력 개발의 흐름을 꺾진 못하는 모습입니다. 사실 국내 국부유출 등 논란은 그 자체로서의 문제라기보다 진보, 보수에 따라 에너지 이슈가 정치적 진영 논리로 귀결되면서 생긴 부작용이 아닐까 싶습니다.
해상풍력 기자재 공급망 한국은?
왜냐하면 오히려 한국은 해상풍력과 관련해 나름대로 뛰어난 공급망을 갖춘 전 세계적으로 얼마 되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장 핵심 설비인 터빈의 대형화 경쟁에서는 뒤처진 게 사실이지만 타워, 하부구조, 케이블 등 상당수 분야에서 가장 앞서가는 기술과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제주대 김범석 교수가 분석한 국내 준공을 마친 5개 해상풍력 단지 사례를 보면(아래 표) 외국 기업 의존 주장이 무색할 만큼 우리 기업들의 참여가 활발하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작 영국 해상풍력을 통해 우리가 참고해야 할 시사점은 다른 데 있습니다. 재생에너지를 통한 선순환을 일으켜 탄소중립을 앞당기고 미래 산업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핵심은 R&D 등 지속적 투자와 제도 개선을 통해 해상풍력의 발전단가(LCOE)를 끌어내리는 데 있습니다. CFD와 같은 지원책을 제공함으로써 초기 시장을 만들어 과감히 설치를 이끌어 내고 이런 과정에서 기자재의 대형화 및 효율화 그리고 인허가 제도의 구축, 인적 자원의 성숙화가 이뤄지면서 급속히 단가가 떨어지는 경로를 밟는 겁니다. 영국뿐 아니라 주요국의 해상풍력 도입과정은 하나같이 이 같은 특징을 보여줍니다.
보급 확대가 가져온 발전단가 감소 효과
2014년부터 2024년까지 영국의 해상풍력 LCOE 하락 흐름을 살펴보면 2014년 294달러에서 2016년 170달러로 42% 낮아집니다. 세계풍력에너지협회(GWEC)의 자료입니다. GWEC에 따르면 영국에서 최초 해상풍력 설치 이후 2016년까지 기간을 '1차 LCOE 하락 기간'이라고 표현하는데, 이 기간 동안 5GW의 물량이 깔립니다. 이후 2020년까지 '2차 하락 기간'을 거치면서 68달러로 또다시 60%가 줄어듭니다. 불과 5년의 기간 동안 추가 5GW의 물량이 더 깔린 겁니다.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과 공급망 인플레이션 등을 거치면서 영국 내 해상풍력 LCOE가 112달러로 상승해긴 했지만 그럼에도 추가 설치 물량이 6GW에 달해 현재 15.9GW의 설비가 들어섰습니다.
이 같은 발전단가 하락 과정은 영국뿐 아니라 독일 네덜란드 등에서 동일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2014년에서 2024년 10년간 변화치를 살펴보면, 독일이 291달러에서 124달러로, 네덜란드가 271달러에서 132달러로 떨어졌습니다. 정확히 10년 사이 벌어진 일입니다. '비싸기 때문에 설치하면 안 된다'가 아니라 오히려 '비싸기 때문에 더 많이 설치해야 한다'는 역설을 우리가 곱씹어봐야 할 땝니다.
우리나라 해상풍력 LCOE는 유럽 선진국들의 2~3배 수준으로 알려집니다. 한국 해상풍력 LCOE를 명시한 IRENA 2024년 자료에 따르면 영국이 59달러, 한국은 195달러로 집계됐습니다. 이 자료에선 독일 63달러, 네덜란드 61달러로 파악됩니다. 중국 역시 유럽국가들에 맞먹는 수준으로 하락해 70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영국이 10GW 설치할 때 우리는 0.3GW
우리는 어땠을까요, 준공시점을 기준으로 지난 2017년 국내 첫 해상풍력인 제주 탐라해상 30MW 준공에 이어 현재까지 설치된 총량이 0.33GW입니다. 영국이 2016년부터 5년간 5GW를 깔았던 속도에 비하면 한참 뒤처져 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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