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어떻게 정확히 볼 것인가? '기대'와 '관점'이 아니라 객관적 '현실'에 기반해 차분하게 짚어드립니다.
지난달 29일 평양에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류비모바 러시아 문화장관이 함께 관람한 공연이 있었습니다. 북한과 러시아가 체결한 신동맹조약인 '포괄적전략적동반자관계에 관한 조약' 1주년을 맞아 방북한 러시아 문화장관이 김정은과 회담을 마치고 공연을 관람한 것입니다.
공연을 관람하며 대화를 나누는 김정은과 러시아 문화장관
이날의 공연은 러시아 예술인들의 평양방문 공연과 북한 예술인들의 답례공연으로 이뤄졌는데, 몇 가지 주목해 볼 부분이 있었습니다.
파병 북한군 전투 장면, 김정은 유해 맞이 장면 공개
먼저, 이날 공연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 군인들의 전투 장면이 공개되었다는 것입니다. 북한 예술인들이 노래를 부르는 도중 무대 뒷배경에 북한군의 전투 장면들이 사진으로 공개됐는데, 북한군 전투 장면이 북한 주민들에게 공개된 것은 처음입니다. 북한군 전투 장면은 객석에 있는 관객들에게 1차적으로 공개됐지만, 공연 내용이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TV를 통해 각지의 북한 주민들에게 보도된 만큼 북한 전역의 주민들에게 전투와 관련된 사진을 공개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공연 도중 무대 뒷배경에 공개된 북한군 전투장면
특히 북한이 공개한 사진들 중에는 김정은이 평양에 도착한 북한군 전사자 유해를 맞이하는 장면이 담겼습니다. 인공기로 덮인 유해를 김정은이 침울한 표정으로 살펴보는 모습입니다. 해외에서 목숨을 잃은 전사자들이 고국으로 돌아올 때 최고지도자가 직접 나가 예우하며 맞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데, 영문도 모른 채 다른 나라 전쟁에 끌려나가 죽음을 당한 전사자 가족들의 슬픔과 분노를 다독이기 위한 선전 작업으로 보입니다. 이런 사진들은 모두 북한 예술단의 답례공연 때 공개됐습니다.
김정은이 평양에 도착한 북한군 전사자 유해를 맞이하는 모습
이날 공연에서 특이한 것은 러시아 예술단의 공연 장소와 북한 예술단의 답례공연 장소가 달랐다는 점입니다. 상대 공연에 대해 답례공연이 이뤄지더라도 보통 같은 장소에서 이어서 함으로써 관객들이 이동할 필요가 없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일 텐데, 러시아 예술단의 공연은 '동평양 대극장'에서 북한 예술단의 답례공연은 '4‧25 문화회관'에서 진행됐습니다. 김정은과 러시아 문화장관을 비롯해 러시아 예술단의 공연을 본 사람들이 '동평양 대극장'에서 퇴장한 뒤 다시 '4‧25 문화회관'으로 이동해야 했던 것입니다.
북한은 왜 이렇게 다소 번거롭게도 답례공연 장소를 다른 곳으로 준비했을까요?
북한 측 답례공연에서 주력한 것으로 보이는 북한군 전투 장면과 김정은의 유해 맞이 장면 공개 등을 보면 북한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북한으로서는 이번 답례공연을 통해 마음먹고 보여줘야 할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철저한 리허설이 가능한 별도의 장소에서 공연을 준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 북한 예술단들은 이 날 북한군 전사자들을 추모하는 노래들도 선보였습니다. 북한이 이번 공연을 위해 추모곡까지 새로 만드는 등 상당한 공력을 들였다는 얘기입니다. 북한은 이번 공연을 통해 민심을 다독이고 김정은의 이미지를 고양시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 측 공연에서만 북한군 희생 기려
이날 공연에서 또 한 가지 짚어볼 부분이 있습니다. 북한군의 전투 장면과 북한군의 희생이 부각된 내용이 북한 예술단의 답례공연에서만 나왔다는 점입니다.
노동신문 보도와 조선중앙TV 영상을 보면, 러시아 예술단의 공연은 러시아의 전통문화와 풍습, 민속무용 등으로 구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평양 공연임을 감안해 '아리랑'을 부르는 성의를 보였지만,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기리는 내용은 찾기 어려웠습니다.
'동평양 대극장'에서 진행된 러시아 예술단 공연
반면, 북한 예술단의 답례공연은 상당 부분 북한군 파병의 성과와 희생을 기리는 데 집중됐습니다. 공연 내용이야 준비하는 쪽에서 정하는 것인 만큼 러시아 측이 북한군 파병 내용을 다루지 않은 것을 이상하다고 볼 것까지야 없지만, 북러 신동맹조약 체결 1주년을 기념해 방북한 러시아 사절단이 관객으로 초청된 상황에서 북한 예술단이 북한군의 희생을 강조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북한은 러시아에게 "우리 젊은이들이 러시아를 위해 이렇게 많이 죽었어, 우리는 혈맹이야, 잊으면 안 돼"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 청년들이 흘린 피의 대가를 러시아가 충분히 보상해야 하며, 북한이 앞으로 어려울 때 러시아가 잊지 말고 도와줘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도 해석됩니다.
관람석 한가운데 앉은 김주애
마지막으로 이번 공연에서 눈길을 끈 것은 김정은의 딸 김주애였습니다. 김주애는 최근에도 김정은의 현지 지도에 따라다니며 후계 수업을 받고 있는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번에도 김정은을 따라다니며 러시아 문화장관과 대화를 나누고 공연 관람석의 한가운데에 앉았습니다. 국내 행사뿐 아니라 대외적인 외교, 문화 행사에서도 김정은의 다음 권력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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