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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가고 싶었다"…그럼에도 완벽했던, 박보영의 '미지의 서울' [스프]

입력 : 2025.07.03 09:01|수정 : 2025.07.03 09:01

[주즐레]


박보영
 

'주말에 뭐 볼까?' 주말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을 스프가 알려드립니다.
 

(SBS 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매 작품을 할 때마다, 첫 촬영 전날은 도망가고 싶어요. '미지의 서울' 때는 더더욱 그랬어요. '내가 무슨 용기로, 무슨 자신감으로 이걸 할 수 있다고 했을까'란 생각이 들면서, 너무 무서운 거예요."

배우 박보영은 주연을 맡은 tvN 드라마 '미지의 서울'의 첫 촬영을 앞두고 도망가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자신의 역량으로는 소화할 수 없는 힘든 배역을 덜컥 하겠다고 나선 것은 아닌가' 하는 부담감과 두려움이 유독 컸다고 한다.

'미지의 서울'은 얼굴 빼고 모든 게 다른 쌍둥이 자매 유미래와 유미지가 인생을 맞바꿔 살아보며 진짜 사랑과 인생을 찾아가는 로맨틱 성장 드라마다. '오월의 청춘'의 이강 작가가 대본을 쓰고, '질투의 화신', '사이코지만 괜찮아' 등의 박신우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이 작품은 미래/미지 쌍둥이 자매가 서로의 삶을 대신 살아가며 겪는 좌충우돌 적응기를 중심으로, 많은 이야기를 내포한다. 어딘가 하나씩 결핍이 있는 약자들이 좌절을 딛고 앞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성장 과정, 그런 누군가를 진심으로 아끼는 자들이 전하는 소중한 응원,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인 내 편들의 든든한 지지, 잠시 멈추거나 도망가도 '괜찮다' 말해주는 위로까지, 많은 부분에서 따뜻함을 전하는 작품이다. 이런 '미지의 서울'의 대본을 본 박보영은 자연스럽게 하고 싶다는 욕심을 내게 됐다.

"이 드라마는, 너무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땐 방송사도 감독님도, 하나도 정해진 게 없었어요. 근데 이 대본을 다른 사람이 보면 안 될 거 같더라고요. 제가 하고 싶다고 얼른 줄 서야 할 거 같았어요. 그래서 '세팅이 완료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어요.

원래 대본은 다 각자의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번에 처음으로 '남의 것이라도 내가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시는 없을 기회라 여겼죠. 1인 2역도 그렇고, 이 나이대의 사회초년생 역할은 시간이 지나면 또 못할 테니까요. 제가 많은 걸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이라 생각해 배우로서 욕심이 났어요.

또 드라마 속 모든 인물들이 결핍이나 핸디캡이 있는데, 그게 거부감 없이 따뜻하게 잘 그려졌더라고요. 그리고 사람들한테 '괜찮아', '너만 그런 게 아냐', '열심히 살고 있는 거 알아' 하는 메시지를 주는 게 좋았어요. 귀한 대본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미지의서울

박보영은 미지와 미래, 미래인 척하는 미지, 미지인 척하는 미래까지, 따지고 보면 1인 4역을 연기했다.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두려웠다지만, 박보영의 쌍둥이 자매 연기는 훌륭했다. 미지와 미래의 차이를 섬세하게 그려내 시청자가 헷갈리지 않고 극에 몰입할 수 있게 했다. 박보영이 '미지의 서울'을 통해 보여준 연기는, 지난 20년 연기 경력의 집약이라 말할 수 있을 만큼 내공이 느껴졌고, '배우 박보영'의 다채로운 매력이 모두 녹아 있었다.

시청자들은 '미지의 서울'이 주는 메시지에 위로를 받았다는 반응과 함께, 중심에서 극을 이끈 박보영에 대해 "박보영의 인생 연기를 봤다", "박보영 원래 쌍둥이 아니냐", "연기대상 감이다"라는 극찬을 쏟아냈다. 입소문을 타고 드라마 시청률은 첫 회 3.6%로 시작해 마지막 회 8.4%까지, 두 배 이상 상승했다.

"너무 감사하죠. 제일 걱정했던 부분이 1인 2역을 '박보영1', '박보영2'로 생각하면 어쩌나였거든요. 나중엔 미지와 미래를 잘 구분해서 봐주시는 거 같아 좋았어요."

성공적으로 끝낸 도전. 물론, 시작은 쉽지 않았다. 10년 전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에서 1인 2역을 연기한 경험이 있지만, 이번엔 그때와 달랐다. 그때는 귀신에 빙의한 1인 2역이라, 빙의의 본체였던 김슬기의 연기를 보고 말투나 행동을 따라 하면 됐는데, 이번엔 미지와 미래가 얼굴만 같은 두 명의 다른 인격체라, 각각의 캐릭터를 따로 디자인해 연기해야 했다. 박보영은 미래와 미지가 차이가 없어 보이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에, '내 안에 버튼이 있어서 누르면 미지와 미래가 각각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때 박신우 감독은 박보영에게 "너무 차이를 두려 하지 말고, 미래와 미지가 한 사람이라 생각해도 된다. 다만 거기에 조금씩 디테일만 다르게 잡으면 좋겠다"는 조언을 했다. 박보영의 미지와 미래는, 거기서부터 출발했다.

"목소리 톤을, 미지는 밝은 에너지의 친구라서 제가 원래 잘 쓰는 톤으로 잡았어요. 반면 제가 가족들 앞에서는 조금 가라앉은 모습이 있는데, 그걸 미래한테 썼어요. 그래서 가족들은 미래한테서 저의 모습을 많이 봤다고 해요. 친구들이나, 저랑 일하는 분들은 미지한테서 절 많이 겹치게 봤고요. 제가 언니랑 대화할 때의 톤, 사회생활 할 때의 톤을 구분해 미래와 미지한테 적용했어요.

제일 고민은 미래와 미지가 서로가 서로인 척할 때였어요. 미래가 조금 더 메이크업을 잘할 거라 생각해 눈의 점막을 채우는 아이메이크업을 해서 눈을 더 또렷하게 보이게 한다거나, 미래는 귀 뒤에 머리카락이 없고 미지는 머리가 항상 남아 있다거나. 그런 작은 디테일로, 두 캐릭터를 좀 열심히 나눠보고자 했어요."


시청자의 입장에선 배우의 연기와 완벽히 구현된 CG 기술로 쌍둥이의 등장에서 어색함을 느끼지 못하지만, 실제 촬영 당시에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박보영은 미래와 미지가 함께 등장하는 장면에선 두 개의 캐릭터를 오가며 여러 번 촬영을 반복했고, 상대 없이 아무도 없는 허공을 보며 감정 연기를 펼치기도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려웠어요. 초반엔 단순히 미지와 미래를 구분해서 두 개를 연기한다고만 생각했어요. 두 명이 존재하는 장면을 찍으려면 대역이 필요했는데, 저와 체형이 비슷한 친구를 찾느라 애를 많이 먹었다고 해요. 그렇게 대역이 있어도, 저와 연기할 때 시선이 안 맞는 경우도 있고, CG 처리할 때 대역이 없는 게 더 유리할 때가 있어서, 나중에는 대역 없이 스탠드에 제 눈높이를 표시해 두고 혼자 연기했어요. 연기하며 생기는 움직임도 다 계산해야 하는데 허공을 바라보고 연기해야 하니, 그 부분이 생각보다 어려웠어요."
 
박보영

극중 미래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지만 공부를 잘해 좋은 대학교, 좋은 직장에 취직한 큰딸이다. 자신의 병원비 때문에 집이 빚을 졌다는 부채감이 있어, 직장 내 괴롭힘을 오랫동안 당하면서도 집안의 가장으로 돈을 벌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지 못한다. 그렇게 곯을 대로 곯은 상처가 결국 터진 미래는, 쌍둥이 동생 미지와 삶을 바꿔 살아보기로 한다.

말수 없고 예민한 성격의 미래와 달리, 미지는 밝고 에너지 가득한 모습으로 마을에서 '유캔디'라 불린다. 타고난 건강 체질인 미지는 마을의 온갖 잡일을 하며 간간이 돈을 버는데, 남들은 '백수'라고 손가락질하지만 10년 동안 요양원에 있는 할머니의 간호를 도맡아 온 착한 손녀다. 하지만 이런 미지도 크나큰 상처가 있다. 어릴 적 '육상 영재'라 불리며 밝은 미래를 꿈꿨지만, 부상으로 한순간에 꿈이 좌절된 후 3년간 자신의 방에서 나가지 않고 스스로를 사회와 가정에서 격리시켰다.

미지와 미래가 6대 4 비율로 실제 자신과 비슷한 거 같다는 박보영은, 더 마음이 쓰인 캐릭터도 미지라고 밝혔다.

"두 캐릭터 다 마음이 쓰이는데, 제가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범위가 넓었던 건 미지였어요. 미지가 에너지가 큰 친구이긴 하지만, 전에 아픔을 겪은 시기가 있었고, 그게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음에도 괜찮은 척하죠.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장해 나가는 것들이, 저랑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전 표현이 많은 편인데, 미래를 연기할 땐 표현을 절제해야 해서 힘들었고, 미지를 할 때가 좀 더 수월했던 거 같아요. 근데 또 미래가 예민할 땐, 제가 예민할 때를 보는 거 같기도 하고. 둘 다 비슷한 면들이 있었죠."

밝고 에너지 가득한 모습으로 '유캔디'라 불리지만, 과거 자기의 방 안에만 틀어박혀 모두에게 마음의 문을 닫았던 아픔이 있는 미지. 늘 괜찮은 척 하지만 사실은 괜찮지 않은 상태인 미지에게 박보영은 공감했다.

"저도 개인적으론 어떤 일이 있어도, 현장에선 그렇지 않은 척해야 할 때가 많아요. 그런 부분에서 미지한테 공감을 많이 했어요. 특히 방 안에만 있던 미지가 할머니랑 대화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이 공감이 크게 됐고 제게도 위로가 됐어요. 저도 실패했을 때, 다 포기하고 싶을 때, 스스로 '난 아무것도 안 될 거야' 생각했던 적이 있는데, 미지 할머니가 미지에게 해주는 그런 말을 기다렸던 거 같아요. 대본을 보고 너무 울었어요."
미지의서울

극 중 미지 할머니(차미경 분)는 방에만 틀어박혀 세상과 단절한 채 "난 아무것도 안 될 거야", "아무것도 못 하겠어", "나 너무 쓰레기 같아"라며 자존감이 바닥을 친 손녀 미지에게 이런 말을 해준다.

"우리 번데기, 얼마나 큰 나비가 되려고 이러나."
"뭐가 그렇게 후회고 걱정이야. 어제는 끝났고, 내일은 아직 멀었는데."
"사슴이 사자 피해 도망치면, 쓰레기야? 소라게가 잡아 먹힐까 봐 숨으면, 겁쟁이야? 다 살려고 싸우는 거잖아. 미지도, 살려고 숨은 거야. 암만 모양 빠지고 추저분해 보여도, 살자고 하는 짓은 다 용감한 거야."


이 장면을 대본으로 읽을 때부터 잘 표현하고 싶었다는 박보영은, 다른 날 재촬영까지 진행하며 장면을 완성했다. 그 결과 '미지의 서울'에서 손꼽히는 명장면이 탄생했다. 박보영은 이 장면을 통해 "제가 공감하고 위로를 받은 만큼, 한 번쯤 실패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누군가에게 그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미지와 미래한테 각각의 러브라인이 있는 만큼, 박보영은 배우 박진영(이호수 역), 류경수(한세진 역), 두 배우와 두 개의 로맨스를 연기했다. 이 역시 1인 2역이라 할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두 개의 러브라인은 각자 다른 힐링 로맨스로, 작품의 재미를 배가시켰다.

"드라마에는 메인 러브라인과 서브 라인이 있잖아요. 어느 쪽이든 한쪽은 서운할 수밖에 없는데, 이번 작품은 양쪽에 다 마음을 줘도 서운할 사람이 없어 행복했어요.(웃음) 진영이랑 경수랑 다른 느낌의 연애를 해서, 두 배의 감정을 느낀 거 같아요. 다른 두 가지의 사랑을 느껴봐서 좋았어요. 고마웠던 게, 미지와 미래를 서로 바꾼 상태에서 상대를 만났을 때, 그 친구들이 '느낌이 다르다'고 말해주는 게 좋았어요. 예를 들어, 호수가 미지인 줄 알고 얘기하는데 사실 미래였을 때, '너무 차갑고 기분이 이상하다. 미지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해주는데, 상대방이 그렇게 말해주니 제가 방향을 잘 잡고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뻤죠."
미지의서울

최근 박보영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조명가게' 등 유의미한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작품을 연이어 선택하고 있다. '미지의 서울'도 마찬가지다. 박보영은 좀 다른 결의 차기작을 예고했다.

"제가 또 뭐라고 그렇게 메시지를 드리려 하나, 그런 생각도 들어요.(웃음) 이젠 밝은 걸 하고 싶기도 하고요. '미지의 서울'을 끝내고 지금 '골드랜드'란 작품을 촬영하고 있는데, 그건 장르도 캐릭터도 어두워요. 제가 몇 년간 차분하고 가라앉은 것만 한 거 같은데, 이다음에 선택할 땐 밝은 걸 하고 싶어요. 재미를 드릴 수 있는, 가벼운 걸 해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어요."

팬들과의 소통 앱 '버블'을 통해 팬들과 소통 잘하기로 유명한 박보영. 그녀는 요즘 하루를 시작하는 팬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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