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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면' 추진…지명 관행 깬다

유영규 기자

입력 : 2025.06.25 08:25|수정 : 2025.06.25 08:25


▲ 다산 정약용 선생 상

경기도 남양주시가 조안면의 이름을 '정약용면'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사람 실명이 들어간 첫 법정 지명이 나올지 주목됩니다.

주광덕 남양주시장은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다산 정약용 선생이 태어난 곳인 조안면의 행정구역 명칭을 '정약용면'으로 바꾸는 작업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남양주시는 이와 관련해 주민과 시의회 의견을 수렴해가며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따라 온라인커뮤니티 등에서는 사람 이름이 들어간 최초의 행정구역명이 나오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가 나오고 있습니다.

세종시의 '세종'과 같이 왕의 시호나 본명이 아닌 호 등이 행정구역 명칭으로 활용된 사례가 있지만 이름 자체가 들어간 사례는 '정약용면'이 처음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동안 사람 이름이 들어간 행정구역 명칭은 정말 없었나?

현재 실명이 포함된 법정 행정구역명은 단 한 건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이름이 아닌 '별명'이 들어간 사례가 하나 있는데 바로 강원도 영월군의 '김삿갓면'입니다.

김삿갓은 조선 후기 시인 김병연의 별명으로, 삿갓을 쓰고 전국을 유랑하며 시를 지었다고 해서 그렇게 불렸습니다.

김삿갓의 묘소가 김삿갓면에 있습니다.

영월군이 원래 '하동면'인 이곳의 지명을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해 2009년 10월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했습니다.

이후 '김삿갓' 브랜드를 활용한 다양한 정책이 추진됐고, 실제로 지역 경제와 관광이 활성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법정리가 아닌 행정리 중에선 사람 이름이 들어간 사례가 있습니다.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의 '박수근마을리'입니다.

양구군 의회가 지난 2022년 6월 양구읍 정림리의 일부 행정리 명칭을 '박수근마을리'로 변경하는 조례 개정안을 가결하면서 탄생하게 됐습니다.

정림리의 법정리는 여전히 '정림리'이지만 정림1리만 행정상 '박수근마을리'로 불린다는 의미입니다.

현재로선 행정동, 행정읍·면·리 차원에서 사람 실명이 들어간 사실상 유일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림1리는 박수근 화백이 태어나 유년기를 보낸 곳입니다.

2002년 10월 박수근미술관이 문을 연 이후 관광 명소로 부상했습니다.

실명은 아니지만 이름과 관련된 지명의 사례는 '김삿갓면'을 포함해 모두 16건 있었습니다.

대표적 사례로 '세종대왕'의 시호가 들어간 지역명들입니다.

서울시 종로구의 '세종로', 특별자치시 이름인 '세종시', 경기도 여주시의 '세종대왕면'이 모두 세종대왕의 시호에서 유래했습니다.

종로구의 세종로는 종로구 법정동 이름이면서 광화문에서 광화문사거리에 이르는 길 이름이기도 합니다.

세종시는 충남 연기·공주지역에 들어선 행정중심복합도시로, 2006년 12월 지금의 명칭으로 결정됐습니다.

당시 행정도시건설추진위원회는 조선시대 명군인 세종대왕을 기리면서 '세상'(世)의 '으뜸'(宗)이 되자는 뜻을 담았다고 지명 선정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당시 후보 명칭으로는 '한울'과 '금강'도 있었습니다.

여주시의 '세종대왕면'은 최근에 개명된 사례입니다.

여주시청 홈페이지에 따르면 2021년 12월 31일 기존 능서면에서 세종대왕면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세종대왕을 모신 영릉의 서쪽에 있다고 해서 이전에 '능서면'이라고 불렸습니다.

개명 당시 세종대왕을 최소 행정기관 단위인 '면'의 이름으로 활용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세종대왕 다음으로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이순신 장군의 시호인 '충무공' 역시 법정동 명칭으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서울시 중구 '충무로1∼5가'의 명칭이 충무공에서 유래됐습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실제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곳은 충무로가 아닌 중구 인현동입니다.

부산시 서구에도 충무공에서 유래한 동명인 '충무동1∼3가'가 있습니다.

부산시청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곳은 일제강점기엔 일본 천황의 연호를 따 '소화정'(昭和町)이라고 불렸습니다.

해방 후인 1947년 7월 일제식 동명을 대대적으로 변경할 때 이곳에 이순신 장군의 부산포해전의 승리를 기념하는 비석을 세우고 동명을 현재의 이름으로 고쳤습니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도 '충무동'이 있습니다.

전남 여수에도 '충무동'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무공을 기념하는 '여수 통제이공 수군대첩비'가 원래 이곳에 있었던 관계로 충무동이라 명명됐습니다.

경남 진주시에도 '충무공동'이 있는데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충무공동은 다른 '충무공'으로부터 유래했기 때문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전투에서 활약한 김시민 장군의 시호 '충무공'에서 따왔습니다.

충무공동은 경상남도 진주시 일대에 조성된 혁신도시로, 그 이름은 2013년 8월 결정됐습니다.

참고로 '충무'는 목숨을 걸고 왕실을 지키면서(忠) 전란을 평정한(武) 무인에게 내려진 시호입니다.

조선시대 '충무'란 시호를 받은 인물로는 이순신·김시민 장군 이외에도 조영무, 남이, 이준, 이수일, 정충신, 김응하, 구인후 등 7명이 더 있습니다.

서울시 마포구의 '토정동'은 토정 이지함의 호에서 유래했습니다.

이지함은 길흉화복을 점치는 책인 '토정비결'의 저자로 알려졌습니다.

조선시대 문인인 이지함은 마포 강변에서 흙을 쌓아 집을 짓고 살아서 '토정'(土亭)이라고 불리게 됐다고 합니다.

그의 집터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토정동 한강삼성아파트 102동 앞에 설치돼 있습니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의 명칭은 조선시대 화가 단원 김홍도의 호에서 따왔습니다.

'씨름', '서당', '무동' 등 풍속화로 널리 알려진 김홍도는 안산에서 태어나 그림을 배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안산시는 단원을 적극적으로 브랜드화해 매년 10월 단원미술제와 김홍도 축제를 열고 있습니다.

다만 단원구는 '행정구' 개념입니다.

단원구는 안산시가 2002년 상록구와 함께 신설한 구입니다.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는 율곡 이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명이 이이의 호에서 유래했다기보다는 호가 지명에서 유래한 사례입니다.

이이는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난 후 파주 율곡촌에서 자라며 이곳에서 학문에 힘썼습니다.

전국적으로 '율곡'(栗谷)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지명이 많은데, 이는 밤나무가 많다는 특성이 반영된 것입니다.

율곡은 '밤나무 골짜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남양주시가 계획대로 '정약용면'으로 개명에 성공하면 인물의 이름이 온전히 들어간 최초의 법정 행정구역명이 됩니다.

다만 행정구역명을 법정 개념이 아닌 행정 개념으로 넓히면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박수근마을리 다음으로 2번째 사례가 되는 셈입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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