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은 그제(22일) 미군의 이란 핵시설 폭격 작전 중 백악관 상황실(situation room)의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문구가 적힌 빨간색 모자를 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댄 케인 합참의장, 제이드 밴스 부통령,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존 랫클리프 CIA 국장,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 등이 모니터로 추정되는 무언가를 보거나 숙고하는 모습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입을 벌린 장면이 포착됐지만 말을 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보좌관으로 보이는 뒤쪽 사람들과 대화할 뿐 헤드테이블 앞에선 조용했습니다. 사진 중에 헤드테이블에서 입을 열어 말을 하는 것이 분명하게 식별되는 유일한 인물은 댄 케인 합참의장입니다.

2011년 5월 1일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 제거 작전 중 백악관 상황실 사진도 유명합니다. 넓은 등받이의 상석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아니라, 특전사령부의 부사령관 마셜 웹 장군가 차지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다소 초라하게 웹 장군 옆에 끼어 앉았습니다.
백악관 상황실 사진 몇 장이 12·3 비상계엄을 겪은 우리 군에 던지는 함의는 큽니다. 통수권자와 국방장관을 주변인으로 앉힌 채 지휘권을 행사하는 장군. 미국의 문민과 군이 양보 없는 토론을 거쳐 작전의 결행을 결심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해당 작전을 할지 말지, 또 어떠한 작전의 방법을 동원할지 민군 간의 치열한 토론이 벌어진 뒤 최종 결정은 문민이 합니다. 군은 결정된 작전을 수행합니다. 새로 출범하는 안규백 문민 국방 체제가 복원해야 하는 민주주의 문민통제가 이와 같습니다.
붕괴된 한국의 문민통제
한국의 대통령실이나 합참의 상황실에서 주요 군사작전을 지휘할 때 주도권을 잡는 인물은 누구일까요? 전역한 지 몇 년 지난 예비역 장군인 국방장관이 십중팔구 실권을 행사해왔습니다. "나 때는"이라며 시작하는, 현재의 상황과 잘 맞지도 않는 올드한 경험 기반의 지시에 사관학교 후배인 합참의장 등 장군들은 맹목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잘못된 관행은 김용현 전 국방장관이 이른바 '쌍 핸드폰' 지시에 별넷 별셋 장군들이 벌벌 떨었던 12·3 비상계엄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작전 또는 정책의 결정 과정에서도 한국의 장군들은 힘을 못 씁니다. 정치권력의 지시에 장군들은 군말 없이 따릅니다. 지난해 3월 말~4월 초 김용현 당시 경호처장 공관에서 최악의 해프닝이 벌어졌습니다. 술판이 벌어진 가운데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운운하자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무릎 꿇고 반대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통수권자의 오판에 장군이 개인 안위를 생각지 않고 직언하는 것 같았지만 아니었습니다. 지난달 8일 군사법원 공판에서 여 전 사령관은 무릎 꿇은 행위에 대해 "약주를 과하게 한 상태에서 돌발적으로 한 행동"이라고 말했습니다. 만취한 초로의 남자가 부린 주사였습니다.
정상적인 문민통제였다면 장군들은 적극적으로 계엄 반대 의견을 개진했어야 했습니다.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실행 의사를 직접 들었거나, 건너 들었다 해도 또렷한 정신에서 반대 의견을 냈어야 했지만 그런 장군은 없었습니다. 합법적인 계엄이었다면 계엄의 지휘봉은 현역 장군이 잡았어야 했습니다. 계엄은 불법이었고, 장군이 아니라 양복 입은 민간인이 계엄을 지휘하는 웃지 못 할 희극을 벌였습니다. 백악관 상황실의 입 다문 국방장관과 지휘하는 장군의 몇 컷 사진과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한국 문민통제 복원의 희망
2019년 7월 서해 NLL 주변의 무인도 함박도에 북한군 요새가 구축되는 정황이 포착됐습니다. 정부는 "위협이 되지 않는다"며 의미를 축소하는 가운데 이승도 해병대 사령관은 국감에서 "유사시 함박도를 초토화할 수 있도록 해병 2사단 화력 계획을 세웠다", "안보를 위협하는 적은 북한"이라고 거침없이 발언했습니다. 정부는 함박도의 북한군을 과소평가했지만 이승도 사령관 입장에서는 유사시 부하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보고 바른 소리를 한 것입니다.
2020년 10월 당정청이 일제히 해병대 공격헬기로 한국항공우주산업의 마린온 개량형을 강요할 때 이승도 사령관은 국감에서 "마린온 개량형이 아닌, 기동성과 생존성이 우수한 진짜 공격헬기를 원한다"는 소신을 밝혔습니다. 인사권을 쥔 정치권력이 마린온 개량형을 미는데도 해병대와 부하의 안전을 위해 직위를 걸고 자기 목소리를 냈습니다.
2021년 11월 정부와 국회는 2022년 예산안에서 경항모 설계 예산을 삭감할 계획이었습니다. 경항모 본 사업 착수가 무산될 위기에서 부석종 해군 참모총장은 해군 SNS에 "국민적 공감대를 이뤄 반드시 추진하도록 노력하겠다"며 경항모 건조의 의지를 표명했고, 경항모의 꺼진 불씨를 살리는 반전의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국회는 본회의에서 경항모 예산 72억 원을 되살렸습니다.
정치권력을 향해 군의 전문적 의견을 당당히 밝힌 한국 문민통제의 명장면들입니다. 정부와 군의 활발한 상호작용의 결과로 안보정책이 결정되는 민주주의 문민통제의 건강한 과정을 부석종 참모총장과 이승도 사령관은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아쉬운 점은 이런 명장면이 손으로 꼽아야 할 정도로 참 드물다는 것입니다.
군의 조언·발언권 강화를 위하여
민주주의 문민통제에서 민군 간의 상호작용은 뜨거워야 합니다. 장군들의 의무는 적극적으로 군사적 조언을 하는 것입니다. 국방부와 대통령실 등 정부의 의무는 장군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입니다. 양측은 치고받는 토론을 해야 합니다. 장군들은 안보를 위해서라면 서슴없이 반대의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정부는 정책 또는 작전을 확정합니다. 결정된 정책과 작전 앞의 군의 자세는 절대 복종과 임무 완수입니다. 복종하지 못하겠다면 군복 벗으면 그만입니다. 간단해 보여도 지금까지 우리가 잘 하지 못한 민주주의 문민통제의 작동 방식입니다.
5·16 이후 처음으로 문민 국방 체제가 출범할 전망입니다. 안규백 국방장관 후보자는 아무래도 문민이다 보니 군을 속속들이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국방장관의 군령권을 일부 군에 양보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문민 장관이 아니더라도 국방장관의 군령권을 축소해야 합니다. 과거 한국의 국방장관들은 과도한 군령권을 행사했습니다. 자연스럽게 군 본연의 군령은 위축됐습니다. 과거보다 국방장관의 군령권 크기를 줄이는 것이 민주주의 문민통제 원칙에 맞습니다.
장관 군령권의 축소는 군의 조언, 발언권의 강화와 같은 말입니다. 정책과 작전 결정 과정에서 군의 목소리는 커야 합니다. 군사 전문가인 장군들이 조언을 많이 할수록, 또 정부는 장군들의 조언을 깊이 수용할수록 정부의 안보 정책은 건강해집니다. 지난 18일 열린 합참 정책자문회의에서 한 민간 위원은 "NSC에 합참의장이 당연직으로 참여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현행 법상 합참의장은 NSC 당연직 위원이 아니고, 필요할 때만 회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합참의장이 NSC 법정 자문위원(statutory advisor)인 미국의 제도를 참고할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