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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실패는 없다"…첩보 작전 방불케 한 '관월당 되찾기'

유영규 기자

입력 : 2025.06.24 08:12|수정 : 2025.06.24 08:56


▲ 해체된 관월당 모습

"여러 번 친구를 안내해 간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반가워하다가도 돌아설 때쯤에는 몇 번이나 뒤돌아보며 마음 아파하곤 했다."

근대 건축 전문가인 김정동 목원대 명예교수는 1997년 펴낸 책 '일본을 걷는다'에서 일본에 있는 한국 건축물, 관월당(觀月堂)울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그에게 관월당은 '잊힌 역사' 그 자체였습니다.

맞배지붕으로 된 정면 3칸의 건물은 한눈에 봐도 한국 건물임이 분명했지만, 11m 높이의 대형 불상에 가려 존재도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언제, 어떤 이유로 낯선 땅에 오게 되었는지도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었습니다.

그는 여러 차례 관월당을 오가며 건물의 유래, 성격 등을 조사했고 주변 지인이나 제자들에게 "가마쿠라(鎌倉)에 가면 꼭 보고 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관월당은 일본에 남아있는 우리 문화유산을 말할 때 꾸준히 거론돼 왔습니다.

그 존재가 알려진 뒤 많은 학자와 문화유산 애호가들이 건물이 있는 가마쿠라 고토쿠인(高德院·고덕원)을 찾았고, '아픈 역사'에 가슴 아파했습니다.

그러나 100여 년 만에 고국 품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관월당을 귀환하려는 논의는 불교계를 중심으로 먼저 이뤄졌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은 2010년 5월 당시 총무원장이던 자승스님이 일한불교교류협회장을 대신해 방한한 니오카 료코(西郊良光·일본 천태종 전 종무원장) 스님과 관월당을 한국으로 돌려주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습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조계종 측은 "한국과 일본 불교계가 1977년부터 30여 년간 교류하면서 처음으로 건물을 돌려받는 성과를 거두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한·일 양국 불교계가 뜻을 같이했으나, 그 바람은 현실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당시 상황을 아는 한 학계 관계자는 "충분한 논의나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언론 보도를 통해 먼저 발표가 나오면서 반발 의견이 상당했다"고 귀띔했습니다.

특히 일본 내 보수 우익 단체를 중심으로 한 반발이 컸고, 비판 의견 또한 적잖았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습니다.

다시 논의의 물꼬를 튼 것은 일본 측이었습니다.

고토쿠인 주지이자 게이오대에서 민족학고고학을 가르쳐 온 사토 다카오(佐藤孝雄) 교수는 2019년 국가유산청(당시 문화재청)에 먼저 연락을 해왔습니다.

2022년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 펴낸 연구 성과 자료집에 실린 관월당 현장 조사
이 과정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문화유산을 제자리에 돌려주고자 하는 학자로서 양심과 건물의 유래와 가치를 제대로 알기 위해 양국이 함께 연구하자는 뜻에 공감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유례가 없는 감염병 사태가 이들의 발목을 또 한 번 잡았습니다.

당초 국가유산청과 고토쿠인 측은 2019년 학술 조사를 거쳐 공동 심포지엄을 열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일정이 뒤로 밀렸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2022년 사토 다카오 주지가 직접 한국을 찾아 협의를 재개했고, 이후 한국과 일본에서 양국 연구자들이 참여하는 학술 행사가 총 3차례 열렸습니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사토 주지는 사찰 경내에 소재한 한국 문화유산에 큰 관심을 가져왔으며, 관월당이 유래한 한국에서 보존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전했습니다.

고토쿠인 측은 지난해 관월당 건물을 해체했으며 국가유산청,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과 협의하며 기와와 석재 부재를 한국으로 옮겼습니다.

나무 부재의 경우 훈증 절차를 거쳐 최근 국내 반입을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혹여 정보가 새어 나갈까 봐 작업은 국가유산청과 재단 내 일부 담당자만 공유했고 '입단속'을 철저히 했다고 합니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이사장 시절부터 관련 논의를 모두 봐왔던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직접 '관월당 프로젝트'를 이끌며 부재 반입 등을 챙긴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일본 고토쿠인이 지난해 10월 누리집에 공지한 내용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한 차례 논의가 무산됐던 만큼 두 번의 실패는 없어야 한다는 게 모두의 뜻이었다"며 "충분한 협의와 보안에 거듭 신경 썼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경복궁의 평면 배치도인 '북궐도형'(北闕圖形)을 샅샅이 뒤져가며 관월당의 흔적을 쫓고 또 조사했다"며 "이번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돌아온 관월당은 추후 연구를 거쳐 제 모습을 찾을 전망입니다.

최응천 청장은 "관월당의 귀환은 오랜 기간에 걸친 협의와 한일 양국의 협력을 통해 이뤄낸 뜻깊은 성과"라며 향후 보존·활용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고토쿠인 누리집 캡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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