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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이란 공격…'46년 앙숙' 이란 본토에 '충격적' 첫 공습

김민준 기자

입력 : 2025.06.22 17:12|수정 : 2025.06.22 17:12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습은 이란 이슬람공화국이 수립된 1979년 이후 이란 본토에 대한 미국의 첫 직접 공격입니다.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이후 46년간 반미 진영의 구심점이었던 이란과 미국은 곧 전쟁이라도 벌일 것처럼 강한 적대 관계였지만 상대의 영토를 군사적으로 공격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만큼 이번 미국의 공격은 '대형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군대나 군사 자원이 이란 본토에 진입한 사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이슬람혁명으로 국외로 도주한 팔레비 국왕 모하마드 레자는 암 치료를 이유로 미국으로 입국할 수 있었는데 이란 혁명 지도부는 그의 신병을 송환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미국은 병 치료를 명분으로 강경한 반미 노선의 혁명 지도부에 신병 인도를 거부했고, 이에 분노한 이란 대학생들이 1979년 11월 테헤란 주재 미 대사관을 점거한 뒤 미국인 외교관과 직원 52명을 인질로 잡았습니다.

당시 지미 카터 미 행정부는 인질 사태가 장기화하고 대선이 다가오자 테헤란 대사관에 억류된 자국인 인질을 구출하기 위해 작전(독수리 발톱)을 실행했습니다.

1980년 4월 24일 미 특수부대 델타포스, 해병대 등 약 90명의 정예요원을 실은 헬기는 이란 중부의 사막으로 비밀리에 착륙했습니다.

이들은 인질이 있는 테헤란으로 이동했어야 했지만 예기치않은 사막 지역의 모래폭풍으로 헬기가 고장나거나 조종 미숙으로 충돌, 폭발하면서 작전을 제대로 수행해보기도 전에 간신히 철수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미군 8명이 숨졌고 헬기 잔해는 이란 정부의 '선전용 전시물' 신세가 됐습니다.

이 작전은 미군 역사상 최악의 실패이자 수모로 남았고, 카터 대통령의 재선 실패가 '독수리 발톱' 작전 참사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을 정도입니다.

테헤란 미 대사관 인질 사건으로 미국은 이란과 국교를 단절했고 이를 계기로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시작하면서 양국은 '적성국'이 됩니다.

미국인 인질들은 이란과 굴욕적 협상으로 444일 만인 1981년 1월 20일 로널드 레이건 취임일에 전원 석방됐습니다.

이란에 대해 미국이 군사력을 직접 동원한 두 번째 사례는 이란·이라크 전쟁 말기인 1988년 7월 3일 이란 민항기 격추 사건입니다.

이란 남부 항구도시 반다르아바스를 이륙해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로 향하던 이란항공 IR655편 에어버스 A300기가 걸프 해역 호르무즈 해협에 배치된 미 구축함의 대공미사일에 격추돼 민간인 탑승자 290명 전원이 숨졌습니다.

당시 걸프 해역에선 미군과 이란 함정의 교전이 종종 벌어지던 터라 긴장이 첨예했던 상황이었긴 했으나 이 인도적 참사로 미국은 큰 비난을 받습니다.

민항기를 격추한 미 해군 구축함 USS빈센스호는 이 여객기를 이란군의 F-14 전투기로 오인했고 여객기 측에서 식별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고 해명했습니다.

사후 조사에서 이 여객기는 민항기 항로를 정확히 운항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란 정부는 1989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미국을 제소했고 1996년 양국이 합의해 유가족에게 총 6천100만 달러를 보상했으나 미국은 사과하거나 공식적으로 책임을 인정하진 않았습니다.

이란에선 이 사건으로 반미 감정이 크게 고조됐고 여전히 매년 7월 3일을 추모일로 기리며 반미 시위를 벌입니다.

2011년 12월과 2019년 6월 이란군은 미군의 드론을 방공미사일로 격추했습니다.

당시 이란은 미군 드론이 영공을 침범했다고 주장했지만 미군은 이를 부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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