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가자전쟁 과정에서 인권 존중을 명시한 유럽연합(EU)·이스라엘 양자 협정을 위반했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20일(현지시간) dpa 통신 등이 보도했습니다.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이날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EU·이스라엘 협력 협정' 재검토 결과 보고서를 27개 회원국에 공유했습니다.
지난달 27개국 중 17개국 요청으로 협정 재검토에 착수한 지 한 달 만입니다.
EU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군사작전 과정에서 협정 2조를 위반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00년 체결된 이 협정은 양자 관계의 법적 기반을 담았습니다.
상대 지역을 자유무역지대로 설정한다는 내용으로, 자유무역협정(FTA)과 유사한 역할을 합니다.
EU가 문제 삼은 2조는 '협정 당사국간 관계와 모든 관련 조항은 인권존중, 민주주의 원칙을 기반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EU와 이스라엘 양자관계를 규정하는 조항으로 꼽힙니다.
위반으로 판단되면 원론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무역특혜 중지나 재정지원 중단과 같은 제재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EU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칼라스 고위대표가 오는 23일 EU 외교장관회의에서 재검토 결과를 토대로 회원국들과 향후 조치를 논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습니다.
26일 EU 정상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안건에 포함될 예정입니다.
그러나 EU 회원국 간 이견 탓에 제재 조치를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협정상 무역특혜 중지를 비롯한 외교적 조치를 하려면 EU 전체 인구 65% 이상에 해당하는 15개국 찬성이 필요합니다.
기존에 재검토를 요청한 17개국만으론 인구 65%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이탈리아, 독일이 동참하지 않는 한 가결이 어렵다고 EU옵서버는 해설했습니다.
이스라엘이 3월 가자지구 군사작전을 재개한 뒤 EU 내 강경론이 확산한 건 사실이지만 최근 이스라엘과 이란 무력충돌로 기류가 변하고 있는 것도 큰 변수입니다.
지난 17일 칼라스 고위대표가 긴급 개최한 27개국 외교장관 화상회의에서 약 15개국이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가자전쟁 자체도 뒷순위로 밀려났습니다.
일부 회원국은 이스라엘이 협정을 위반했더라도 일단 가자지구 인도적 위기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고 주장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칼라스 고위대표는 지난 18일 유럽의회 본회의에 출석해 가자지구 인도적 위기에 대해 EU가 침묵한다는 질책이 쏟아지자 "개인적으로 결정할 수 있었다면 (이스라엘에 대한) 조치를 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나는 27개국을 대표하고, 이 점이 내가 느끼는 좌절감"이라고 토로했습니다.
27개국 간 입장 차가 그만큼 크다는 의미로 해석됐습니다.
(사진=A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