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사천의 한국항공우주 KAI 본관
2022년 5월부터 7월까지 SBS 취재파일은 "한국항공우주산업 KAI 대표이사에 항공우주 전문가를 임명해야 한다"는 10편 안팎의 기사를 집중적으로 내보냈습니다. 윤석열 대선 캠프에서 활동한 명함을 내세워 KAI 사장 자리를 놓고 낙하산 각축을 벌이는 항공우주산업 문외한들을 막기 위한 '나홀로 몸부림'이었습니다. 김용현 군부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염치 없이 김용현의 친구인 예비역 중장 강구영 씨를 KAI 사장 자리에 앉혔습니다.
이재명 정부에서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우선 12ㆍ3 비상계엄 이후 예비역 장군들의 기가 많이 죽었습니다. 산업자원부 출신들도 종종 KAI 낙하산 대열에 끼어들었는데 "수출입은행의 KAI 지분 26%라고 해서 KAI에 아마추어 낙하산 꽂는 것은 폭력"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주춤하는 분위기입니다. 언론 매체들도 띄엄띄엄 "낙하산 반대"를 외치고 있습니다. 적어도 예비역 장군 같은 황당무계한 KAI 낙하산은 더 이상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차기 KAI 대표이사의 자격은 무엇일까요? KAI의 지난 3년 경영 실적이 다른 방산업체들에 비해 처참한 수준이라고 해서 경영이나 수출 전문가를 기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드는데 방산 고수들의 견해는 다릅니다. "경영과 수출을 논하려 해도 시장에 내놓을 물건이 없다", "블록Ⅰ보다 훨씬 까다로운 KF-21 블록Ⅱ 개발과 미국제로 흑화한 FA-50의 국산화 및 개량에 성공하기 위해 개발 리더십이 시급하다", "KF-21 블록Ⅱ를 잘 만들면 KAI의 재무제표는 자연히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첫번째도 개발, 두번째도 개발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블록Ⅰ보다 어려운 블록Ⅱ
KF-21은 양산에 돌입했지만 개발은 한참 남았습니다. 상대 전투기를 잡는 공대공 미사일이 적용된 블록Ⅰ의 개발 일정은 내년 6월까지입니다. KF-21 블록Ⅱ는 공대지 능력이 추가됩니다. 블록Ⅱ 개발은 내년 6월 착수해 2~3년 소요될 전망입니다.
문제는 블록Ⅱ 개발 난도가 블록Ⅰ보다 높다는 점입니다. 블록Ⅰ의 공대공은 전파 간섭이 희박한 하늘에서 테스트하기 때문에 개발 기간은 짧고 성공 확률은 높은 편입니다. 하늘에서 지상 목표물을 때리는 블록Ⅱ의 공대지 미사일은 지상에서 유발되는 수많은 전파를 이겨내야 합니다. KAI 핵심 관계자는 "clutter라고 불리는 지상의 숱한 전기적 반사파들을 뚫고 미사일과 레이더의 소프트웨어를 안정적으로 통합하는 작업이 몹시 어렵다", "KF-21 개발의 진짜 도전은 블록Ⅱ 공대지 체계"라고 말합니다.
KAI의 미래는 KF-21에 달렸습니다. KF-21은 앞으로 3년 이상 개발의 난기류를 통과해야 합니다. KAI의 차기 리더십은 KF-21의 고난도 막바지 개발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방위산업진흥회의 한 고위직은 "강구영 대표 체제에서 KAI의 고정익 개발 인력 구성이 기형적으로 악화됐다", "KF-21 블록Ⅱ 개발 성공을 위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블록Ⅱ 개발 성공 후 '수출 어부지리' 노려라!"
K방산 신드롬은 폴란드 잭팟 덕입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안보 불안에 직면한 폴란드가 우리 무기를 대거 사들이면서 K방산은 전대미문의 호시절을 만났습니다. 만약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없었다면 K방산의 위상은 지금과 달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K방산의 수출본부장은 러시아의 푸틴"이라는 진담 반, 농담 반의 자평이 방산업계에서 나옵니다.
푸틴이 착해지면 K방산의 호황도 끝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도 블록Ⅱ 개발 성공을 전제로 KF-21은 좀 다를 것이란 전망이 많습니다. 좋은 미사일만 장착하면 KF-21 수출 실적은 저절로 치솟는다는 것입니다. KF-21의 공대공은 유럽 MBDA사의 미티어입니다. KF-21 수출형의 공대지는 독일 타우러스사의 타우러스 적용이 검토되고 있습니다. 블록Ⅱ 개발에 성공해 공대공 미티어와 공대지 타우러스를 장착하면 KAI와 MBDA, 타우러스는 KF-21 수출의 한 배를 타게 됩니다. 여기에 KF-21 수출의 희망이 있습니다.
미티어와 타우러스는 각각 한발에 수십억 원입니다. 전투기 1소티(1회 출격) 풀무장에 2백억 원 이상 필요합니다. 전투기 도입 국가들은 최소 4~5소티 무장을 함께 삽니다. KF-21에 장착되는 미티어와 타우러스 4~5소티 물량의 가격은 KF-21 전투기 가격보다 높습니다. 외국계 방산업체의 한 임원은 "유럽의 거대 방산기업인 MBDA와 타우러스가 KF-21 수출을 위해 발 벗고 뛸 수밖에 없다", "유럽 거대 방산기업들의 수출 노하우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서 블록Ⅱ 개발에 성공하면 KF-21 수출 전망은 밝다"고 내다봤습니다.
"미국제 된 FA-50 되살려야!"
폴란드에 수출하느라 FA-50이 미국제가 다 됐습니다. 에이사 레이더, 군용GPS, 임무컴퓨터 소프트웨어, 미사일 등을 모두 미국제로 바꾼 탓입니다. 그나마 미국의 수출 승인이 제때 안 나와서 골치입니다. 승인이 떨어져도 미국제 장비와 FA-50의 다른 장비들을 연동시키는 체계통합 작업이 까다롭습니다. 모두 성공한 뒤에는 FA-50을 미국에 가져가 감항인증 등 각종 테스트를 거쳐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대한민국 대형 방산수출 역사상 처음으로 납기를 못 맞춰 폴란드와 수정계약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LIG넥스원의 국산 에이사 레이더와 국산 임무컴퓨터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FA-50의 국산화를 오히려 높일 기회가 있었습니다. 방사청은 FA-50 에이사 레이더 개발비의 정부 투자와 융자 제안까지 했었습니다. 전례가 드문 전폭적인 지원 방안이었습니다. KAI는 "폴란드가 미국제 레이더를 원한다"며 방사청의 지원을 거절했습니다.
방사청의 지원 의사가 아직 살아있든 죽었든 FA-50의 국산화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 방산업계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미국제 핵심장비로 도배된 FA-50은 수출 때마다 미국의 간섭을 받기 때문에 수출 절차가 험난합니다. 납기 지연으로 K방산 신뢰를 떨어뜨리기 십상입니다. 수출해도 돈은 미국 업체들이 챙깁니다. FA-50의 핵심장비를 국산화해야 납기도 맞추고 돈도 법니다. KF-21과 마찬가지로 FA-50도 개발의 세월을 다시 밟아야 KAI의 진정한 먹거리가 됩니다.
여기에 더해 FA-50을 장기 흥행시키려면 공대공, 공대지 미사일을 강화하는 것도 필수 과제입니다. 방위사업 관련 정부 핵심 관계자는 "지금까지 KAI의 리더십은 무장 강화와 같은 미래지향적 FA-50 개발에 전혀 의지가 없었다", "KAI의 차기 리더십은 쓸 만한 무장을 추가 장착한 FA-50을 중저가의 보급형으로, 강력한 무장의 KF-21을 비싼 고급형으로 각각 개발하는 투-트랙 개발 전략을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