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 지하철역에 등장한 스탈린 조각상을 감상하는 시민들
구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을 영웅적으로 묘사한 조각상이 러시아 모스크바 지하철역 한복판에 등장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위대한 승리 역사'를 강조하고 있는 러시아가 스탈린 미화 속도를 더하고 있다는 게 서방 언론의 관측입니다.
2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러시아는 최근 꽃을 건네는 노동자와 아이들 가운데서 점잖은 모습으로 먼 곳을 응시하는 스탈린의 모습을 담은 조각상을 모스크바의 한 지하철역에 설치했습니다.
1966년 '탈스탈린 운동' 당시 철거됐던 조각상이 복제돼 등장하자 시민들도 큰 관심을 드러냈습니다.
주민 릴리아 A. 메드베데바(75)는 조각상을 보며 "우리 지도자가 원래로 돌아와 너무 기쁘다"며 "우리는 그 덕분에 전쟁에서 이겼다"고 말했습니다.
NYT는 이 조각상이 사망한 지 72년이 지난 '잔혹한 지도자'의 위상을 재건하려는 작업의 일환이라고 짚었습니다.
러시아 정권이 자국 역사를 일련의 영광스러운 승리로 재구성하고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서 이를 이어가기 위해 스탈린의 유산을 되살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러시아에서는 광활한 영토에 질서를 확립하고 나치 독일에 승리했던 구소련 시대에 대한 향수가 여전히 강하며, 특히 자본주의로의 이행과정에서 고통을 겪은 기성세대 사이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NYT는 지적했습니다.
러시아 당국은 지난달 볼고그라드 공항의 이름도 스탈린그라드로 변경했습니다.
볼고그라드는 구소련 시절 스탈린그라드로 불렸는데, 제2차 세계대전에서 처절한 전투를 거쳐 나치에 승리한 지도자 스탈린을 기리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스탈린은 1936년부터 1938년까지 군 지도자, 지식인, 소수 민족, 지주 농민 등 70만 명이 처형된 이른바 '대테러' 기간에 대규모 숙청을 주도한 장본인이고, 크림반도의 타타르족 등 소수민족들도 고향에서 추방했습니다.
또 그의 정책은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구소련 전역에 대량 기근을 초래했습니다.
실명을 밝히기 꺼린 한 대학생은 지하철역 조각상 앞에서 스탈린을 "피비린내 나는 폭군"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시위자들은 과거 푸틴 대통령이 스탈린을 비난한 발언을 적은 포스터를 조각상에 붙여놓기도 했습니다.
조각상 철거 운동을 시작한 자유주의 정당 야블로코당 소속 정치인 레프 슬로스버그 베르그는 "서서히 진행되는 이 나라의 재스탈린화는 국가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정부 만행을 정당화하기 때문에 사회뿐만 아니라 국가에도 위험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사진=A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