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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의 신이 사랑하면 도망 못 가요"…최태지 X 문훈숙의 고백 [스프]

김수현 문화전문기자

입력 : 2025.05.19 09:01|수정 : 2025.05.19 09:01

[더 골라듣는 뉴스룸]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장,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


발레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 '쌍두마차' 체제를 다진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장과 문훈숙 유니버설 발레단장. 두 사람은 라이벌, 맞수라기보다는 서로 의지하는 동반자 관계라고 하죠. 두 사람의 발레 인생은 어떻게 시작됐는지 들어봤습니다.

최태지 전 단장은 국립발레단 주역으로 춤췄던 시절, 임신과 출산으로 은퇴와 복귀를 반복했다고 하는데요, 발레단을 그만두고 학원까지 차렸던 그가 무대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78kg까지 늘었던 몸무게는 어떻게 감량했을까요? 문훈숙 단장이 들려준 어린 시절 일화는 발레에 대한 인식이 그동안 얼마나 바뀌었는지 실감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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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 : 버지니아 동네의 작고 허름한 발레 학원에서 취미로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전공한 건 한국에 와서 선화예술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최영아 아나운서 : 발레를 하는 게 처음부터 재미있었어요?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 : 응접실에도 카펫이 깔려 있으면 스트레칭 해보고 '엄마, 나 발레!' 어린 여자애들이 다 그렇게 하잖아요. 텀블링도 좋아했던 기억이 나요.

최영아 아나운서 : '힘들어서 그만둬야지'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으시고요?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 : 매일, 매일, 매일.

최영아 아나운서 : 매일이요? 기대하지 못했는데.(웃음) 너무 힘들어서일까요?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 : 발레는 애증 관계. 좋지만 너무 혹독한 친구.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장 : 저도 선생님 같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우리가 발레를 배운 60년대 말, 70년대에 발레리나는 결혼도 안 하고 아기도 안 낳는 시기였는데, 저는 인생을 살면서 발레를 하고 싶다고 생각해서 '결혼하면 절대 발레를 안 하겠다, 결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그때까지는 열심히 하자', 중간에 그만두고 싶어도 '이 시기만 열심히 하자'. 미래에 대단한 발레리나가 되겠다는 생각 없이 그냥 아름다운 몸매로 있고 싶어서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김수현 기자 : 한국에 오시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장 : 재일 교포였고 부모님도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으셨었거든요. 저는 일본 이름도 있었고 일본 학교도 다녔고, 문화청에서 주는 장학금에 내정됐는데 마지막 문구에 '한국 국적을 가진 자'라고 하면서... 그때 아이덴티티를 (고민하고), 일본은 역시 폐쇄적이고 너무 일본인만 사는 나라라고 생각해서 프랑스에 유학을 갔더니.

김수현 기자 : 그럼 자비로 가신 거예요?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장 : 네. 너무 쇼크 받으니까 부모님이 갔다 오라고. 이후 일본발레협회 회장님이 '한국에 임성남이라는 내 제자가 있는데 일본에서 공부하고 왔다. 한 번 가 보면 어떠냐'라고 소개받고 임성남 선생님을 만나게 됐어요. 83년도, 사십여 년 전이네요. 임성남 선생님께서 저를 발레리나로 키워 주셨고요. 62년도부터 국립발레단을 이끌어 가셨고 일본에서 오셔서 너무 고생하셨는데, 제의를 받고 입단하게 되었습니다.

김수현 기자 : 제가 춤추시는 걸 못 봐서.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장 : 안 보시는 게 좋을 거예요. 요즘 수준으로 보시면요. (웃음)

김수현 기자 : 무슨 말씀을요.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장 : 그때 우리도 열심히 했지만.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 : 그때 기준으로는 참 잘했죠.

김수현 기자 : 중간에 아이를 낳고 그만두겠다고 하신 적도 있고.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장 : 물론이죠. 일부러 열심히 식사해서 78kg까지 가고, 진짜 안 하고 싶었으니까.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계속 발레만 하며 몸무게 재고 타이트하게 살다가, 전화기 코드 빼고 신나게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하니까 78kg, 30kg 이상 찌는 거예요. 아기 낳으면 다 빠질 줄 알았는데 아니죠. 3.9kg로 낳았는데 3.8kg만 빠지더라고요.

한국에서 다시 발레를 시작했으면 국립발레단 프리마였다는 걸 알았겠지만 제가 뉴욕에서 낳았거든요. 그래서 바리시니코프가 연습했던 선생님께 가서 (수업을) 들었죠. 그때 74~75kg였어요. 유모차 밀고 '한때 저도 발레리나였습니다. 수업 들어도 되냐' 해서 시작하니까 3개월 만에 30kg가 바로 빠졌습니다. 발레 하면 몸이 가벼워지니까, TV 보고 에어로빅도 하면서. 그리고 일단 연습실에 가면 거울이 있잖아요. 사실 좋은 선생님은 거울이거든요. 거울이 있으면 아무래도 노력하더라고요. 집에 거울 갖다 놔야 돼요.

저는 다시 한번 복귀하자는 생각이 없었어요. 누구든 꿈을 크게 꾸고 살라고 하는데 저는 이 순간만 중요해요. 이 순간 자기 자신에 솔직하게 살자. '발레 한 번 해볼까? 괜찮아, 지금 플리에(기본 동작)를 똑바로 설 수 있으면 되는 거다'라고 하면서 다시 하니까 3개월 만에 살이 빠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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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기자 : 그 3개월 후에 바로 발레 다시 하신 거예요?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장 : 뉴욕에서 임성남 선생님께 전화했어요. '옛날보다 더 잘할 것 같아요. 한국에 가서 다시 해보고 싶다' 그때는 제가 프러포즈했어요. 87년도에 국립발레단에 입단했어요. 임성남 선생님께서 환영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아주 옛날이야기네요.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 : 항상 저는 이런 날씬한 모습만...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장 : 첫째 때만이 아니라 둘째도 78kg로.

김수현 기자 : 둘째도요. 그러면 둘째 출산 후에도 또 그만둬야 했어요?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장 : 88 올림픽 끝나고 임성남 선생님께 '아무래도 (아이) 둘이니 집에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가지 말라고 말리셨는데 사표를 던지고 산부인과에 갔어요. '저 둘째 낳아야 됩니다' (웃음)

저는 발레를 하면 너무 마른 자신이 슬펐어요. 얼굴이 안 좋아질 정도의 체중이 무대에서 예쁘거든요. 항상 못 먹고 사는 사람 같았다가 잘 먹으니까 스트레스가 없고 78kg이 되고. '다시는 임성남 선생님이 하라고 안 하시겠지' 했는데 또 오셨어요. 옥수동에서 학원을 했었는데 잘 됐어요.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 : 우리 다시 할까요? (웃음)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장 : 다시 오셔서 학원 그만두라고 하시고, 저는 '둘째까지 낳은 사람이 왜 발레를 합니까? 안 합니다' 했는데 계속 찾아오셨어요. '네가 필요하다' 저는 발레가 좋은 것보다 저를 필요로 한다고 해 주시는 분이 계시는 게 감사해서 다시 왔어요. 발레가 좋아서가 아니에요. 저는 발레를 떠나고 싶은 사람이었고, 제가 필요하다고 하니 '그러면 옛날같이 춤추지 못해도'라고 하면서 왔어요. 재입단을 하는 거죠. 그 욕심도 있었어요.

최영아 아나운서 :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만두고 싶었지만 절대로...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장 :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발레의 신이 너를 사랑하게 되면 너는 발레에서 도망가지 못한다'고 하는데, 제가 너무 소름 끼쳐서 '나는 선생님같이 되고 싶지 않아. 절대로 발레에서 도망갈 거야'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우리가 업인 것 같아. 운명.

최영아 아나운서 : 발레의 신이 이렇게 딱,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장 : 이렇게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것도 감사하게 생각해요.

최영아 아나운서 : 네, 한국 발레계도 마찬가지고요. 

김수현 기자 : 임성남 선생님이 안 잡았으면 어떻게 될 뻔했어요?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장 : (저는) 없었어요. 임성남 선생님이 계셨기에 저는 이때까지 여기서 발레를 했다고 생각해요.

최영아 아나운서 : 임성남 단장님의 큰 그림이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도 갑자기.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장 : 너무 멋진 분이셨고요. 그 시기에 남자가 발레를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겠어요? 61년도에 발레단이 만들어졌거든요.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 : 그 당시엔 여자도 발레를 한다면 그렇게 곱게 보지 않았어요.

최영아 아나운서 : 그랬어요?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장 : 지금이야 다르지요.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 : 엄마는 '발레 하는 며느리를 어떤 시어머니가 원할까' 걱정하셨어요. 남자(발레리노)가 잡고 올리고 돌리고. '엄마, 거기 올라가 있으면 아무것도 생각 안 해. 어디를 잡았는지도 모르고 든 남자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애만 쓰고 있으니까 그런 걱정하지 마'라고. 그런데 엄마 친구들은 '언제까지 발레 시킬 건데. 빨리 정신 차리고 학교 보내야지' 이렇게 얘기했기 때문에 걱정하셨어요. 지금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제 기억으로는 그렇게 고운 시선은 아니었어요.

최영아 아나운서 : 그래도 꿋꿋하게 발레를 계속하셨고.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 : 저도 발레의 신 때문에.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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