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시간 26일 이란 최대 항구 샤히드라자이에서 발생한 대규모 폭발 참사에 따른 파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항구에 적재된 인화성 화학물질이 사고 원인일 수 있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가운데 최근 몇 달 사이 미사일 고체연료 제조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을 실은 배들이 이 항구에 정박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이란 정부는 "군사용 화물은 없었다"며 혼란을 잠재우려 애쓰고 있지만, 늘어나는 인명 피해에 현지 민심은 악화하고 있습니다.
영국 BBC 방송은 이번 사고로 이란 국민 사이에 애도를 넘어 정부를 향한 분노가 커지고 있다고 27일 보도했습니다.
이날 기준 사고 사망자는 최소 40명, 부상자는 1천 명을 넘어섰습니다.
사고 직후 47명에서 시작한 사상자 집계치가 계속 늘어나자 정부의 대응 혼선과 사고 원인에 대한 의구심 등으로 이란 국민 사이에 불만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이번 참사가 항구 내 적재돼 있던 인화성 화학물질에서 비롯됐을 수 있단 분석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이란 여론은 더욱 악화하고 있습니다.
BBC는 많은 이들이 당국의 무능을 탓하고 있다며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인화성 물질이 적절한 관리도 없이 항구에 방치될 수 있었는가?'라고 묻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현지 언론이 보도한 이번 사고 현장의 CCTV 영상을 보면 불이 컨테이너 한 곳에서 시작된 뒤 다른 컨테이너로 빠르게 퍼지고, 항구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급히 달아납니다.

이 영상은 2분간 지속되다 거대한 폭발 후 꺼졌습니다.
이와 관련해 이스라엘 매체 와이넷은 최근 몇 달 사이 과염소산나트륨을 싣고 온 배 2척이 이 항구에 정박했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과염소산나트륨은 고체연료 미사일 추진체의 주성분인 과염소산암모늄을 만드는 데에 쓰이는 핵심 화학물질입니다.
다만 이란 국방부 대변인 레자 탈라에이-니크는 국영 언론 인터뷰에서 "(사고) 지역에 군용 연료나 군사용으로 수입·수출된 화물은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이란 의회 국가안보·외교정책위원회 대변인 에브라힘 레자이도 엑스에서 초기 보고에 따르면 이번 폭발은 "이란의 국방 부문과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군사용이 아닌 일반 화학물질 폭발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의 화학과 교수 안드레아 셀라는 미국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고가 "질산암모늄 폭발의 특징을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질산암모늄은 비료와 산업용 폭발물로 널리 사용되는 범용 화학물질이지만, 잘 보관하지 않으면 화재 발생 시 폭발 위험이 크게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지난 2020년 8월 레바논에서도 질산암모늄으로 인해 큰 폭발이 발생한 바 있습니다.
당시 베이루트항 물류창고에 6년째 방치된 질산암모늄 약 2천750t이 터지면서 214명이 숨졌습니다.
가디언은 "폭발에 대한 공식 설명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화학물질을 높은 온도의 컨테이너에 보관한 것이 원인일 수 있다는 보고가 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란 정부는 사고 수습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이번 사고 피해자들을 방문하는 한편 철저한 사고 원인 규명을 지시했습니다.
이란 내무부는 관련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이란과 우호적 관계인 러시아도 지원에 나섰습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사고 희생자 가족을 위로하고, 부상자들의 쾌유를 기원했다고 크렘린궁은 전했습니다.
러시아 비상사태부는 푸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화재 진압에 특화된 수륙양용 항공기 Be-200과 일류신(IL)-76 군 수송기를 이란에 파견한다고 밝혔습니다.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 인도, 튀르키예 등도 이란에 애도의 뜻을 표했습니다.
(사진=A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