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 서구청 한 민원 부서 공무원들
"지금부터 이 전화는 통화 내용이 녹음됩니다."
민원 전화를 상시로 녹음하는 행정안전부의 지침이 시행된 지 나흘이 지난 25일 오후 광주 서구청 한 민원 처리 부서 현장에서는 고성이 오가는 악성 민원이 여전했습니다.
악성 민원인들로부터 공무원을 보호하기 위해 행안부가 지난 21일 녹음 전화 상시 운영, 폭언 시 전화 종료, 퇴거 및 출입 제한 조치, 수사기관 고발 지원 등을 권고했지만 현장에서는 소용없는 듯했습니다.
한 공무원이 전화기를 들자마자 신원 미상의 남성 민원인은 "왜 불법주정차 과태료를 부과했느냐"며 다짜고짜 항의부터 했습니다.
담당 직원이 차분하게 불법 주차된 차량의 장소·일시를 안내하며 "관련 법에 따라 정당하게 과태료를 부과했다"고 응대했지만, 되돌아오는 것은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과 "낼 수 없다"는 고성이었습니다.
끊임없는 욕설과 간간이 이어지는 협박 끝에 이 공무원은 결국 "다시 한번 확인해 보겠다"는 말로 민원인을 달랬고, 그제야 악성 민원 전화를 끊을 수 있었습니다.
구청으로 찾아와 난동을 부리거나 직원을 폭행하는 사건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하루가 멀다고 계속되는 악성 민원에 공무원들은 불안에 떨어야만 했습니다.
한 공무원은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은 고사하고 민원인에게 멱살 잡히거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라며 "언제든지 행패를 부리는 일은 일어날 수 있고, 악성 민원에 시달려 정신과 치료를 받는 직원도 여럿이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실제로 광주 서구에서는 최근 2개년 간 414건(2023년 309건·2024년 105건)의 민원인 위법 행위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직원들에게 반복적으로 폭언·욕설을 한 사례가 268건으로 가장 많았고, 협박 55건, 성희롱 50건, 폭행 3건, 기타 38건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지난해 3월에는 기초생활 수급 관련 문의로 동행정복지센터를 찾은 한 민원인이 "밤길 조심해라. 나 흉기 들고 다닌다"고 협박했고, 재차 센터를 찾아 여직원에게 성희롱하는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급기야 지난달에는 구청 여러 부서를 돌아다니며 난동을 피우고 직원을 폭행한 사건도 있었고, 국민신문고·정보공개 청구 등으로 악성 민원을 수십여 차례 제기한 민원인이 의도적으로 직원을 쫓아다닌 사건도 발생해 경찰에 고발하기도 했습니다.
광주 서구는 악성 민원으로 힘들어하는 직원들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무관용 강력 대응' 원칙을 세우며 자구책을 마련했습니다.
경찰·변호사와 협력 체계를 만들어 위법행위·공무방해 행위에 법적 대응 중이며, 청원 경찰을 순환 배치하고 있습니다.
서구 관계자는 "민원 처리 직원의 요구가 있으면 언제든지 부서 이동 등의 인사 조처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며 "정신건강 회복을 위해 1인당 연간 50만 원의 치료비를 지급하는 복지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