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진법사 자택서 발견된 신권 뭉치
무속인 '건진법사' 전 모(65)씨가 '기도비'를 명목으로 거액을 받으며 각종 청탁을 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한국 정치권, 관가, 경영계 뒤편에서 뿌리내렸던 '브로커'의 세태가 수사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전 씨는 인맥을 중심으로 노골적 금품 교환을 일삼던 기존 브로커에서 한 걸음 나가 무속을 결합한 고도의 은폐 전략을 썼다고 검찰은 보고 있습니다.
어제(27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남부지검은 지난 1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는 전 씨를 조사하면서 기도비의 성격을 집중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전 씨가 공천·인사·인허가 등 청탁과 함께 받은 돈에 대해 '기도를 해달라는 명목'이었을 뿐이라며 대가성을 부인했기 때문입니다.
검찰은 순수한 의미의 기도비라면 왜 청탁이 실패한 이후 돌려줬는지 추궁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실제 검찰이 "의뢰자의 요청대로 부처님이나 신령님에게 기도를 드렸는데 왜 돈을 돌려주냐"고 묻자 전 씨는 "그거야 상대방 생각이 다른 점도 좀 있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조사 말미에 '정치 브로커로 보인다'고 지적한 검찰에 훈수를 두는 듯한 말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 씨는 "검사님은 이런 세계를 이해 못 해서 그런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계속 빌던 집 안에 있으면 그 사람들은 기도 안 하면 못 산다"고 했다고 합니다.
전 씨가 기도비를 돌려준 데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전형적인 브로커의 수법"이라며 "'실패했을 경우 돈을 돌려줘야 사고가 안 난다'는 게 이 세계의 법칙"이라고 귀띔했습니다.
전 씨는 검찰에 "대기업 중에서 저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며 자신의 신통력이나 예지력을 믿은 유력 인사들이 기도비를 건넸을 뿐이라는 논리를 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검찰은 지난해 전 씨의 법당과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하며 대기업 임원, 정치권 관계자, 법조인, 경찰 간부 등의 명함 수백 장을 확보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통상 1억 원, 많게는 3억 원씩 기도비를 받는다는 게 전 씨의 설명입니다.
선거철이나 정부 인사철에 이뤄지는 이런 '은밀한 거래'는 갈수록 음성화하는 모습입니다.
특히 지방선거 공천은 브로커들이 활개 치기 쉽습니다.
연고, 학연, 지연 등이 강하게 작용하는 지역 정치 풍토상 비공식 경로를 통한 로비나 청탁이 끊임없이 시도됩니다.
검찰은 2022년 지방선거 때 전 씨가 경북에서만 군수 후보 등 5곳의 청탁을 받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서울권 구청장 후보 당내 경선에 개입한 정황 등도 포착했습니다.
이들 지역은 보수세가 강해 국민의힘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그만큼 공천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브로커가 개입할 공간은 넓어집니다.
정부·공공기관 고위급 인사도 투명한 인사 절차보다는 대통령실이나 정치권 고위 인사 라인이 개입해 이뤄지는 경우가 상당하다는 인식도 브로커를 찾게 하는 요인입니다.
여권 관계자는 "지방선거와 인사철은 돈이 오가는 복마전이 펼쳐진다"며 "워낙 은밀하게 이뤄져 수면 위에 드러나는 사례는 극히 일부일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윤석열 정부와 관련해 전 씨와 함께 정치 브로커로 지목되는 사람으로는 명태균 씨도 있습니다.
명 씨는 윤 전 대통령 부부의 공천 개입 의혹과 얽혀있고, 국민의힘 대선 경선 과정에서 여론조사 결과를 조작했다는 의혹 등을 받고 있습니다.
명 씨의 경우 대놓고 금품이 오가지는 않았지만, 여론조사를 중심으로 각종 개입이 이뤄졌다는 점이 기존 브로커와 다른 양상이라고 정치권 관계자는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