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회 SBS X 그랜드 퀘스트 2025" 오프닝 아트 '한호 작가' 인터뷰
안녕하세요. 미래 사회를 위한 사회적 실험과 깊이 있는 통찰, 혁신적인 도전을 소개하는 뉴스레터, SDF(SBS D포럼) 다이어리입니다. SBS D포럼을 제작하는 SBS 보도본부 미래부가 최근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는데요. 국내에선 드문 과학·기술 전문가 포럼을 개최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달 24일 서울 상암 SBS프리즘타워에서 열릴 <SBS X 그랜드 퀘스트 2025>입니다.
* 포럼 참석을 위해서는 온라인 사전 등록이 필요하며, 참가 신청은 홈페이지(grandquests.sbs.co.kr)에서 가능합니다.
SBS와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이 함께하는 이번 포럼의 목표는 진정한 의미의 산학 네트워크 구축을 통한 대한민국의 기술주권 확보입니다. 그동안 한국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경제 강국으로 자리매김했지만, 현재의 기술 패권 경쟁은 우리 산업에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국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며 전례 없는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기존 세계 질서를 흔들며 글로벌 무역 전쟁을 예고하고 있어 상황은 더욱 엄중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도전적인 시점에서 <SBS X 그랜드 퀘스트>는 산학이 머리를 맞대고 기술 주권에 대한 논의와 함께 구체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장을 가지려고 합니다.
뜻깊은 첫 여정에 현대예술계의 한호 작가가 함께해 주시기로 했습니다. 오프닝 아트를 맡아주신 건데요. 한 작가는 실험적이며 철학적인 착품으로 이른바 'K아트'를 이끌고 있는 현대미술 작가입니다. 세계 3대 비엔날레 중의 하나인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청받기도 했는데 록펠러 재단, 불가리아 소피아 국립미술관, 크레테 현대 미술관 등이 한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Q. 어린 시절, 배에서 경험한 빛과 관련된 일화가 작가님의 예술 세계에 근본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미지가 지금의 작업과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나요?
저의 유년 시절은 바닷가에서 보내졌고,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지역의 포구에서 자주 배를 탔습니다. 그곳에서 노을이 지는 하늘과 떠오르는 달,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며 느꼈던 감정은 제게 깊은 위안과 감성적인 울림을 주었습니다. 배가 출렁이고, 달이 떠 있고, 별이 움직이는 그 장면들은 지금 생각해 보면 일종의 미디어적인 체험이었고, 그것이 저의 기억에 강한 잔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과학자가 아니기에 그것을 분석적으로 이해하지는 않았지만, 심상적으로 다가온 그 빛은 치유와 따뜻함의 감각으로 제 안에 자리 잡았고, 이후의 예술 작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저는 '빛'이 단순한 자연현상을 넘어서 감성적이고 상징적인 존재임을 깨달았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의 빛, 자연이 선사하는 빛, 그리고 산업적인 빛이 교차하면서 예술가는 그것을 감성적으로 수용하고, 공간 속에 다시 구현해 내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저는 이러한 자연과 인공, 감성과 이성이 융합되는 지점에서 예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늘 고민해 왔고, 빛은 그 중심에 놓여 있습니다.
결국, 제가 주목하는 '빛'은 단순한 시각적 요소가 아니라, 과학과 예술, 자연과 테크놀로지의 경계를 넘나들며 상호작용하는 매개체입니다. 본질과 하이테크의 결합은 충돌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와 시각성을 창출하고, 인간 존재와 자연, 그리고 과학 간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최적화된 비주얼을 만들어냅니다. 이성의 과학과 감성의 예술이 충돌하며 만들어낸 빛은, 그 두 가지를 모두 안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상호적인 작용과 사유의 가능성을 선사합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제 작업은 아트와 테크놀로지의 융합, 즉 컨버전스를 통해 '빛'이라는 주제를 지속적으로 탐구하게 된 것입니다.
Q. 'Eternal Light(영원한 빛)'이라는 동일한 제목을 작품에 지속적으로 붙이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일관성이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궁금합니다.
'Eternal Light(영원한 빛)'이라는 제목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체 가운데 영원한 것은 없지만, 인간은 영원을 추구하기에 가능한 개념입니다. 인류가 만들어낸 정신적인 유산들은 영원하며, 그 가치와 사상, 진리를 의미합니다. 지구가 멸망하기 전까지는요. 또한, 우주에 떠 있는 해와 달, 별들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생성과 소멸이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부여한 영원성은 과학적 사실과는 무관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감성을 통해 어떤 대상에게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유구한 유산과 우주의 빛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유한과 무한을 반복하며 역사적인 형상과 마주합니다. 미술사적인 맥락과 통찰을 통해 동서양 예술의 근간을 분석하고, 동서양 미술의 화법, 사상적인 체계의 융복합을 통해 현대미술의 최정점으로 향하는 독창적인 예술에 대한 신념과 집념이 이러한 융합적인 작업을 가능하게 합니다.
동서양 예술의 화법과 준법, 조형과 설치,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예술은 다양한 언어를 구사해 왔으며, 항상 새로운 것을 갈망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분리된 장르가 아닌 융합적인 형태로 재구성되어, 미술사적 맥락을 농축한 결과물로 제시됩니다.
Q. 백남준 작가님의 예술 세계를 잇는 작가라는 평도 있습니다. 실제 백남준 선생님께 영향을 받으셨는지요?
글쎄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부끄럽기도 합니다. 백남준 선생님께서 일본에서 독일로, 다시 뉴욕으로 이어지는 노마드적인 여정을 통해 세계 현대미술의 거대한 획을 그으신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저 또한 백 선생님의 어록과 작업 세계에 깊이 감명받았고, 그 길을 좇아 파리로 유학을 떠났고, 뉴욕에서 작업을 이어갔으며, 다시 베이징으로 옮겨가는 등 유사한 노마드적 궤적을 밟아왔습니다. 한국인으로서 세계 무대를 누비며 미디어 아트라는 새로운 예술 형식에 도전해 온 것도 그 흐름 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백남준 선생님은 비디오 아트와 미디어 아트, 아방가르드의 최전선에 있었던 분으로, 플럭서스 운동[1]의 일환으로서 기존의 것을 완전히 거부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려는 청년 정신과 '뉴 프론티어'의 표상이셨습니다. 저 역시 그런 길을 따르되, 분명 다른 시대적 조건 속에 있습니다. 백남준 선생님의 시대는 진공관과 아날로그 기술의 시대였고, '굿모닝 미스터 오웰' 같은 방송 개념이 가장 진보된 테크놀로지의 표현 방식이었습니다. 반면 지금은 디지털 시대, LED 시대, 메타휴먼의 시대, 그리고 우주 인터넷까지 등장한 동시성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더 이상 텔레비전 방송의 개념에 머물지 않고, 인류의 인식은 이제 우주로까지 확장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와 같은 제2세대 미디어 아티스트들은 백남준 선생님의 열망과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지금 이 시대가 안겨주는 과학과 산업의 변화, 기술 진보와 새로운 물질성 속에서 또 다른 방식의 창조성과 독창성을 추구하게 됩니다. 노마드적인 움직임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 궤적이 펼쳐지는 방식과 결과는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결국, 백남준 선생님과 제가 예술가로서 닮은 점이 있다면,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며 새로운 예술을 도모한다는 점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한 시대는 다르고, 과학이 선사하는 사물과 감각 또한 달라졌기에, 펼쳐지는 예술의 세계도 그만큼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1] 1960년대 독일을 중심으로 발생한 예술 운동인 플럭서스(Fluxus)는 '흐름', '변화'라는 뜻을 갖고 있다. 백남준을 비롯해 조지 마키우나스, 요셉 보이스, 요코 오노 등 전 세계의 다양한 예술가들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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