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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박했던 그날…외국인선원·이장·어촌계장, 주민 60명 살렸다

류희준 기자

입력 : 2025.04.01 17:27|수정 : 2025.04.01 17:27


▲ 주민 대피에 일조한 외국인 선원 수기안토 씨

"이 사람들하고 해경, 구조대장 아니었으면 주민 절반은 죽었을지도 몰라요."

경북 영덕군 축산면 경정3리 선착장에서 만난 한 60대 주민은 입이 마르도록 산불 위기 속 '숨은 영웅'들을 칭찬했습니다.

그가 말한 사람들은 마을 이장 김필경(56) 씨와 어촌계장 유명신(56) 씨, 외국인 선원 수기안토(31) 씨입니다.

지난달 22일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안동, 청송을 거쳐 영덕 서쪽 경계지점까지 확산한 것은 지난달 25일 오후 6시쯤입니다.

영덕군은 25일 오후 5시 54분에 지품면 황장리에 산불이 확산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이 산불이 동쪽으로 25㎞ 떨어진 축산면 경정3리까지 번지는 데는 2시간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워낙 경황이 없었고 산불이 확산하면서 전기, 통신이 마비된 지라 산불이 몇 시쯤 도착했는지 정확하게 아는 주민은 드물었습니다.

다만, 오후 7시 40분쯤엔 밖에 연기가 자욱했고 8시쯤엔 산불이 마을까지 번졌다고 보는 주민이 많았습니다.

이런 주민 말이 맞는다면 산불은 시간당 10㎞ 이상 이동한 셈입니다.

산불이 번졌을 때 이 마을 주민 60명 중 상당수는 집에 머물고 있거나 이미 잠든 상황이었습니다.

이상한 낌새에 밖으로 나온 김필경 이장은 선착장에서 오른쪽, 유명신 계장은 왼쪽, 인도네시아 출신 선원 수기안토 씨는 중앙으로 가서 마을 주민을 깨워 대피시켰습니다.

김 이장은 "빨리 나오라고 방송을 해도 나오지 않아서 셋이 함께 고함을 치면서 깨우거나 밖으로 나오도록 했다"고 말했습니다.

고령으로 거동이 어려운 주민을 위해 수기안토 씨는 7명의 주민을 업고 나왔습니다.

그는 8년 전 입국한 뒤 줄곧 이곳에서 선원으로 근무한 터라 할머니를 "할매"란 경상도 사투리로 부를 정도로 한국 생활이 능숙한 편입니다.

그는 "할매가 걸음을 빨리 못 걸으니까 일일이 집에 가서 업고 나왔다"고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대피한 주민들은 불이 마을을 덮치자 차에 타거나 달려서 방파제 끝으로 피했습니다.

불길이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있는 데다가 연기가 자욱하고 불똥이 날아다녀 도저히 다른 곳으로 대피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민들은 방파제 콘크리트 블록 사이사이에 있거나 차에 타고서 긴급하게 해경 등에 연락했습니다.

해경은 축산면에서 민간구조대장으로 활동 중인 전대헌(52) 씨에게 연락해 주민을 구하러 나섰습니다.

전 대장이 다른 후배, 직원과 함께 레저보트와 낚시 어선을 몰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주민들이 방파제에 있어 배를 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콘크리트 블록이 미끄러워 자칫 다른 사고도 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거센 화염을 뚫고 주민들이 배가 있는 선착장까지 달려갈 수도 없었습니다.

불길이 거세게 번진 상황은 전 대장이 몸에 부착하고 있던 카메라에 찍힌 동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전 대장은 때마침 선착장에 있던 키가 꽂힌 소형 트럭을 몰고 방파제까지 달려가 주민 10여 명을 태우고 선착장에 왔습니다.

이후 자신의 보트로 주민을 낚싯배까지 이동시켰고 이를 한 차례 더 반복해 낚싯배에 20여 명을 태우고서 축산항에 입항했습니다.

나머지 주민 상당수는 울진 해경 도움을 받아 축산항으로 이동했고 일부 주민은 남아서 상황을 지켜봤습니다.

경정3리 주민 임 모 씨는 "전 대장과 해경 직원들 덕분에 마을 주민이 많이 구조됐다"고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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