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어떻게 정확히 볼 것인가? '기대'와 '관점'이 아니라 객관적 '현실'에 기반해 차분하게 짚어드립니다.
북한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에 걸쳐 전국 20개 지역에 경공업 공장 준공식을 진행했습니다. 옷 공장, 식료품 공장, 일용품 공장 등을 전국 20개 지역에 동시다발적으로 만든 것인데, 김정은 총비서가 지난해부터 추진하고 있는 '지방 발전 20×10 정책'의 일환입니다. '지방발전 20×10 정책'이란 매년 전국 20개 시·군에 현대적인 경공업 공장을 만들어 10년 안에 지방 주민들의 물질문화 생활 수준을 한 단계 향상한다는 정책입니다.
올해 초 진행된 경성군 지방공업공장 준공식
북한은 올해에도 2년 차 건설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새로 20개 지역에 경공업 공장들을 짓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난해에 건설한 공장들은 잘 가동이 돼서 주민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일까요?
노동신문, '생산정상화' 강조
이와 관련해, 북한 노동신문에는 최근 주목해 볼만한 글이 실렸습니다.
지난 22일 노동신문은 "새 지방공업공장들의 생산정상화 이것은 전적으로 시·군당 책임일군들의 몫이다"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는데, 이 글을 보면 이미 준공된 지방공업공장들이 제대로 가동되고 있는지 의문을 품게 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노동신문은 이 글에서 지방공업공장들의 생산정상화를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당의 새로운 지방발전정책의 생활력을 남김없이 발휘해나가자면 새로 일떠선 지방공업공장들에서 생산정상화의 동음을 높이 울려야 한다."
"생산건물들을 번듯하게 건설하고 현대적인 설비들을 갖추어놓고도 원료, 자재가 부족하거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공장운영을 정상화하지 못한다면 그 결과는 생산실적에 대한 실무적 총화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민들의 기대에 그늘을 던지는 심각한 정치적 후과로 이어진다."
"시·군당 책임일군들은 새 지방공업공장들의 생산정상화가 전적으로 자기들의 몫이라는 것을 깊이 자각하고 그 실현에 심신을 깡그리 바쳐야 한다."
"자신심만 있으면 자기 지역의 경제적 자원과 잠재력을 최대한 리용하여 지방공업공장들의 생산정상화에 필요한 조건들을 주동적으로 지어나갈 수 있다."
"원료기지의 생산능력을 높이고 기술자, 기능공 대렬을 강화하는데서 제기되는 문제 등을 제때에 료해(파악)하고 필요한 대책을 따라 세워 지방공업공장들이 생산을 높은 수준에서 정상화하도록 하여야 한다."
<노동신문, 지난 22일>
공장 운영을 제대로 하라는 독려일 수도 있지만, 공장이 잘 돌아가고 있다면 굳이 '생산정상화'를 소리 높여 외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노동신문이 지금 이런 호소에 나서고 있는 것을 보면, 공장은 준공했지만 운영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 당국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북한이 준공한 20개 지역 경공업 공장들 가운데 일부는 가동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일부는 가동 징후가 포착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공장들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다면, 왜?
북한이 애써 지어놓은 공장들이 제대로 가동이 되지 않고 있다면, 어떤 이유 때문일까요?
북한 당국이 공장 건물은 완공해 줬지만, 공장 운영에 필요한 원료조달이나 운영자금 등의 문제를 전적으로 지방에 떠넘겼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김정은은 지난해 2월 평안남도 성천군 지방공업공장 착공식에 참석해, 공장 건설은 국가에서 전적으로 맡아 하겠지만 공장 운영은 각 지방의 간부들이 알아서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군인들을 동원해 공장은 지어주겠지만, 공장을 운영해 제품을 생산하는 것은 지역의 간부들이 책임지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군들의 지방공업공장 건설에 필요한 자금과 로력(노동력), 세멘트와 강재를 국가에서 전부 보장하며 건설자재들의 수송을 비롯한 여러 문제들도 적절히 대책하도록 하였습니다."
"당에서 모든 조건을 마련해주고 인민군대가 공장건설을 통째로 맡아 해제낀다 해도 완공후 그 운영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주민들이 실지 덕을 보게 만들어야 하는 당사자는 시·군의 당 및 행정경제일군들입니다."
<김정은 성천군 지방공업공장 착공식 연설, 지난해 2월 28일>
성천군 지방공업공장 착공식에 참석해 연설하는 김정은 (지난해 2월)
그렇다면, 지방의 간부들은 어떻게 원료를 조달해 공장을 운영하라는 뜻일까요?
북한이 제시하고 있는 방법은 그야말로 자력갱생에 기초한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이 매체들을 통해 제시하고 있는 방법을 보면, 수유나무와 피마주, 역삼, 해바라기 같은 이른바 '기름작물'(주로 기름을 짜기 위해 심는 작물)들을 재배해 비누를 만들고, 머루와 다래, 오미자 같은 산열매를 확보해 음료수를 만드는 식입니다. 종이의 원료가 되는 원료림을 조성하는 방법도 제시됩니다. '자기 지방의 원료 원천에 의거한 소비품 생산'이 당의 일관된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노동신문의 최근 글을 봐도 북한의 지방공장들이 어떻게 원료를 조달해 운영되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천군 식료공장에서는 예로부터 소문난 성천 약밤을 원료로 하여 정과, 단묵(젤리), 단졸임(잼) 등을 생산하고 있다."
"동해를 낀 어랑군에서는 명태, 대구, 도루메기, 가재미, 멸치, 조개 등으로 말린 제품과 랭동제품, 식혜, 젓갈품을, 함주군의 식료공장에서는 자기 고장의 특산인 가막조개를 랭동제품으로 내놓고 있다."
<노동신문, 지난 24일>
이렇게 자력갱생을 강조하다 보니, '지방발전 20×10 정책' 추진 이후 각 지역마다 원료림 조성 작업이 대대적으로 추진됐습니다. 외부에서 필요한 원자재를 들여와 생활필수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원료를 해결하라 하니, 주변에 바다가 없어 수산물도 없는 곳에서는 원료림 부지를 확보해 수유나무와 피마주, 역삼 등을 심는 작업이 대대적으로 진행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공장의 원료를 조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고 생산할 수 있는 물건에도 제약이 있었을 것입니다. 북한이 공장들을 준공해놓고도 아직까지 '생산 정상화'를 부르짖고 있는 것은 원료를 확보해 주민들에게 필요한 생필품을 만드는 작업이 여전히 원활하지 않음을 반증합니다.
지방 간부들만 다그치는 북한
그런데도 북한은 지방의 간부들만 다그치고 있습니다.
노동신문은 지방공업공장들의 운영 정상화는 시·군당 책임간부들에게 달려 있다면서 비상한 각오를 갖고 분발하라고 채근했습니다.
"지방공업발전정책의 실행은 명백히 해당 지역의 전반사업을 장악지도하는 시·군당 책임일군들의 몫이다."
"시·군당 책임일군들은 지방공업공장들의 생산을 정상화하기 위한 사업을 당위원회적인 사업으로 틀어쥐고 월마다 어김없이 총화하여야 한다."
<노동신문, 지난 22일>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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