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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산불 악몽이 또"…화마가 할퀴고 간 울주 신화마을

유영규 기자

입력 : 2025.03.26 12:44|수정 : 2025.03.26 12:44


▲ 26일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신화마을 한 주택이 전날 발생한 산불로 전소돼 있다.

"12년 전 산불에 타버려 창고를 새로 지었는데 또다시 다 타버렸네요."

산불 발생 20여 시간 만인 오늘(26일) 아침 주불이 진화된 울산 울주군 언양읍 송대리 화장산 인근의 직동리 신화마을에는 검게 타버린 뼈대만 남은 구조물들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불에 탄 창고를 황망하게 바라보던 주민 방 모(89) 씨는 "12년 전에도 창고가 불타서 같은 자리에 다시 지었는데 또 불타버렸다"며 "안에 있던 곡물 건조기와 농기계도 완전히 못쓰게 됐고 트럭도 다 타버렸다"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나마 쓸만한 농기계를 찾으려 이곳저곳을 살펴봤지만, 사용할 수 있는 기계는 거의 없어 막막한 한숨만 터져 나옵니다.

신화마을은 전날 근처에 있는 화장산에서 시작된 산불이 국도를 넘어 번지며 주택 여러 채와 창고, 축사 등이 소실되는 피해를 봤습니다.

2013년 발생한 대형 산불로 큰 피해를 봤던 마을 주민들은 당시의 악몽이 반복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주민 손 모(61) 씨 이번 산불로 어릴 적부터 살던 집을 잃었습니다.

동생과 함께 집에서 건질만한 공구를 찾던 손 씨는 "초등학교 시절 추억도 있고 집안 곳곳에 부모님 손때가 묻어 있는 집이었다"며 "12년 전에도 버틴 집이었는데 설마 우리 집이 탈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고 참담한 심정을 전했습니다.

2013년 화재로 이미 한 차례 집을 잃었던 주민 엄 모(70) 씨는 "설마 설마 또 불길이 넘어올까 싶었는데 송대리 쪽에서 난 불이 동네를 집어삼킬 듯 오더라"며 "급히 대피해서 멀리서 쳐다보는데 동네 전체에 연기가 꽉 차서 어느 집에 불이 난지도 못 알아볼 정도였다"고 간밤의 상황을 회상했습니다.

엄 씨는 "과거에도 다른 데서 난 불이 바람을 타고 번져서 우리 마을이 피해가 컸는데 똑같은 상황이 반복됐다"며 "이번엔 우리 집은 멀쩡하지만, 이웃에 있는 집들이 피해가 큰 것 같다"고 했습니다.

축사에서 소 20마리를 키우는 황 모(85) 씨는 "밤새 소가 죽을까 싶어서 엄청나게 걱정했는데 다행히 소는 괜찮다"며 "12년 전에 집이 불에 싹 다 탔는데 그 뒤론 소 입김만 봐도 연기인가 싶어서 놀란다"고 말했습니다.

마을 인근에 있는 작은 사찰인 길상사도 산불을 피해 가지 못했습니다.

오늘 오전 길상사는 예불을 드리는 법당과 창고 건물이 완전히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길상사 김 모(34) 사무장은 "문화재 신청을 하려고 준비했던 석상이 불에 타 훼손돼 버렸다"며 "손쓸 틈도 없이 연기가 덮쳐버려서 주지 스님을 모시고 겨우 탈출할 수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이 사찰의 주지 스님은 법당 쪽으로 번지는 불을 끄던 중 발목 골절을 당했습니다.

김 사무장은 "등산객과 신도 등 매일 10∼20명이 꾸준히 찾아오는 절이었다"며 "12년 전 화재 때는 창고만 타고 법당은 버텼는데 이번에는 끝내 이렇게 타버렸다"고 막막해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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