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페퍼민트 NewsPeppermint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5년 전 이맘때를 기억하십니까? 한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첫 확진자가 나온 지 한 달 반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퍼지면서 마스크와 손소독제 대란이 일어났고, 종교 단체의 예배를 비롯해 여러 사람이 한데 모이는 것이 감염 경로로 지목되기도 했습니다.
5년 전 저는 뉴욕에 살고 있었습니다. 미국에선 원래 마스크를 쓸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한국 가정에는 한 통씩 있는 수술용 마스크도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뉴욕에도 진단을 안 해서 확진자가 아니었을 뿐 이미 감염된 사람, 보균자들이 2월 내내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고 있었을 거란 생각에 아찔하기도 합니다. 2월에는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을 취재한다며 뉴햄프셔주 프라이머리 현장에 가서 수백 명이 모인 체육관에서 민주당 사람들을 인터뷰하기도 했습니다. 그 체육관 안에도 코로나바이러스가 있었을지 모릅니다.
아무튼 미국에선 일반인은 말할 것도 없고, 의료 현장에서 일하는 의사,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 노동자들이 쓸 마스크와 방역 장비도 부족해 오히려 일반인은 마스크를 사지 말라는 권고도 나왔습니다. 손소독제도 아주 작은 들이 제품을 한 사람당 한 통씩만 팔았습니다. 한 통만 더 사게 해달라고 떼를 쓰는 손님과 가게 직원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마스크 보내주겠다는 가족한테 "다른 나라도 아니고 미국에서 마스크를 못 살까 싶어서 그래?"라고 큰소리쳐 놓고는 주변 편의점, 약국 등을 다 돌고도 마스크를 못 사서 2월 말에 아마존에서 주문한 마스크는 4월 중순이 다 돼서야 도착했습니다.
미국이 의료 기술이나 치료법, 신약 개발 같은 의학 연구 분야에선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나라일지 몰라도 병원 문턱이 높고, 건강 수명이 낮은 등 공중 보건 지표는 어디를 봐도 선진국이라고 볼 수 없는 나라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이런 전염병에 특히나 취약할 것 같았는데, 걱정은 현실이 됐습니다. 미국에서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망한 사람이 100만 명이 넘습니다. 정확히 마지막으로 집계한 숫자는 122만 명이고, 코로나19로 병원이 마비돼 살리지 못한 환자까지 더하면 희생자 숫자는 150만 명에 이릅니다. 심지어 사망자가 한창 급증할 때 정확한 사인을 진단하지 못하고 사망 처리한 사람들 가운데 코로나19로 사망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들 숫자까지 더하면 이
숫자는 훨씬 더 커질 수도 있습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으니 쉽게 잊힐 뿐, 미국에서만 (보수적으로 잡아도) 122만 명, 전 세계적으로 2천만 명 가까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코로나19 팬데믹의 파괴력은 사망자, 감염자 숫자만 놓고 봐도 절대로 작지 않습니다. 자꾸 떠올릴수록 트라우마가 되는 기억이다 보니, 의도적으로 잊으려 하고 지워내는 기억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외면하고 잊으려 해도 이미 세상은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좋든 싫든 코로나19라는 21세기 들어 가장 파괴적인 전염병이 많은 걸 바꿔놓은 세상입니다.
뉴욕타임스에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비롯해 환경과 보건에 관한 칼럼을 주로 쓰는 데이비드 월러스웰스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창궐한 지 5년을 맞아 칼럼을 연재했습니다. 번역한 칼럼이 첫 번째 글이고, 이어 지난 4일에는
인터랙티브 형식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이 미국 사회를 어떻게 바꿔놓았는지를 분야별로 자세히 분석하는 글을 한 편 더 썼습니다. 미국 맥락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도 많지만, 그 가운데는 우리도 예외가 아니거나 전 세계 어느 나라나 해당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접촉하면 바이러스가 옮고 병에 걸릴 수 있으니, 자연스레 서로 멀리 떨어져 지내는 게 권장되고, 규범이 됐습니다. 이제는 코로나19가 끝나고 일상을 회복한 지 오래됐지만, 팬데믹을 거치며 '비대면'이 자연스러워진 만큼 개인과 개인은 파편화되고 서로 더 멀어졌습니다.
여기에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온라인에서 노동과 일상에 필요한 기본적인 업무를 더 쉽게 해결할 수 있게 되면서 개인은 역설적으로 더 외로워졌습니다. 개인이 느끼는 감정적인 고독은 사회적인 수준에서 총합을 측정하기 어렵지만, 사회적 고립을 측정하는 지수는 많은 나라에서 더 높아졌습니다. 온전히 코로나19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팬데믹이 이 변화에 영향을 끼친 건 분명해 보입니다.
과학에 대한 신뢰, 보건 정책을 비롯해 정부가 내놓는 정책에 대한 신뢰가 낮아진 것도 문제입니다. 처음 접하는 유형의 바이러스를 파악하고 분석해 대책을 내놓는 과정에서 발생한 과학계의 어쩔 수 없는 시행착오도 영향을 미쳤을 테고, 정부 지침과 정책도 특히 초반에는 일관성이 부족해 혼란을 가중한 적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언론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팩트체킹에 실패하기도 했고, 아예 사실을 제대로 검증하거나 취재하지도 않은 채 언론을 사칭하며 가짜뉴스와 왜곡된 주장을 퍼나른 '유사 언론'의 자극적인 선동이 종종 먹힌 것도 결과적으로는 재앙을 불렀습니다.
점점 더 잦아지는 전문가들의 경고
조류독감(H5N1)으로 알려진 바이러스는 원래는 자연의 새에 있던 바이러스입니다. 자연의 새들은 이미 면역이 형성돼 문제가 되지 않는 저병원성 바이러스는 보통 공장형 축사에 있는 다른 가금류 사이에서 강력한 바이러스로 변이를 일으켜 고병원성이 되고, 주변의 새들은 물론 포유류 등 다른 종으로 번져 나갑니다. 이 바이러스가 인간에게도 옮는 인수공통감염병이 되는 순간 경고등에 불이 들어옵니다. 이어 인간에서 인간으로 바이러스가 감염된다면, 그 바이러스는 머지않아 팬데믹의 창궐로 얼마든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개인의 생각과 태도를 바꾸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참담했던 기억을 굳이 자꾸 꺼내보기 싫어서 눈을 감는 개인을 나무랄 수도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다릅니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지난 재난에서 교훈을 얻고 다음번에 일어날 비슷한 상황에 대비해야 합니다.
미국의 상황은 희망적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신임 보건복지부 장관인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는 잘 알려진
백신 회의론자입니다. 이어 식품, 의약, 의료 분야 연구를 감독하고 지원하는 정부 기구도 전문성보다 트럼프 대통령과 정치적인 코드가 맞는 인물들로 속속 채워졌습니다. 물론 팬데믹이 반드시 온다는 보장이 있는 건 아니니 운이 좋게 재앙을 피해 갈 수도 있겠지만,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지지 말란 법도 없는데, 그때 전문가들의 조언에 회의적인 이들이 과연 과학적인 사고와 사실을 기반으로 한 대책을 내놓을 수 있을지 우려스럽습니다.
이미 우리는 언제 또 팬데믹이 창궐해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이미 미국에서는
조류독감 인체감염이 나왔습니다. 다행히 아직 사람 대 사람 감염 사례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당장 실험실에서 연구 목적으로 배양, 실험하는 바이러스를 얼마나 안전하게 통제하고 있는지, 안전 기준이 잘 지켜지는지도
갈수록 의문입니다. 권위 있는 기관이 엄격한 규정을 정해놓고 이를 철저히 감독해야 할 텐데, 오히려 그 역할을 해야 하는 세계보건기구(WHO)는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세계보건기구의 위기는 기구에서 탈퇴하겠다는 위협을 실행에 옮긴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이는 미국의 팬데믹 대처 역량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공중보건 역량을 약화시켰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