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오스카, 빌보드, 노벨상... 한국 문화의 위상, 한국의 위상이 날로 높아지는 요즘입니다. 그런데 '한강의 기적'의 숨은 비결. 혹시 잠을 줄이고 일한 것이었을까요. 최근에 충격적인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분야에서는 우리 국민이 전 세계 최하위권입니다.
지난 20일 한 글로벌 가구 업체가 세계 57개국 5만 5천221명(한국인 1천3명)을 대상으로 수면에 관한 조사를 벌였습니다. 여기서 한국인의 수면지수는 57개 나라 중 최하위권인 50위에 머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인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6시간 27분에 불과했습니다.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네 번째로 수면이 부족했고, 스스로 평가하는 수면의 질은 57위로 가장 낮았습니다.
우리 민족은 강합니다. 어떤 역경에도 맞서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아, 이 경우엔 일어서지 않고 푹 잘 수 있습니다, 라고 얘기해야겠군요... 언제나 그렇듯, 음악에 길이 있습니다. 지구상에 존재 못할 루트도 음악이라는 형이상학적 시공간 안에서는 시원스레 열려 있습니다. 수면과 꿈나라라는 이해 못 할 저 세계로 향하는 길도 그러하다고 믿습니다. 일단, 멀리서 한 곡 가져오겠습니다. 저는 이 곡의 임상실험은 끝냈습니다. 다름 아닌 제가 몸소 이 곡의 약효를 톡톡히 봤습니다.
Bach's Goldberg Variations [Glenn Gould, 1981 record] (BWV 988)
자장가는 주로 어머니가 불러주시는 줄 알았는데 이번엔 아버지입니다. 이른바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입니다. 이 곡은 애당초 음악적 수면제로 기획된 작품이라는 설이 파다합니다. 당시 독일 드레스덴에 러시아대사로 파견돼 있던 카이저링크 백작은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이 곡이 만들어지던 18세기 당시 유튜브가 있었겠습니까, 블루투스 스피커가 있었겠습니까, 스마트폰이나 스트리밍이나 음반이나 오디오가 있었겠습니까. 잔잔한 음악을 들으면 잠이 들까 싶어서 백작은 골드베르크라는 젊은이를 고용해 잠자리에서 하프시코드를 연주하도록 시켰다고 합니다. 골드베르크의 잘못인지, 백작의 증세가 심한 탓인지 차도는 영 없었습니다. 결국 평소 알고 지내던 바흐에게 불면증을 깨부술 만한 곡 하나만 부디 써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게 됩니다. 그렇게 탄생한 곡이 바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인 거지요.
J.S.Bach "The Goldberg Variations" [Glenn Gould] (1955)
카이저링크의 뒷이야기는 잘 모르겠지만 저의 뒷이야기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클알못(클래식을 알지 못하는 사람)' 시절, 골드베르크 변주곡 전곡 연주회에 가서 제1곡 '아리아'를 들은 뒤 즉시 '푹잠'에 빠져들었습니다. 박수 소리에 눈을 떠보니 상황 종료. 이미 40여 분에 이르는 30개의 변주가 끝나고 수미쌍관, '아리아 다 카포'의 잔향마저 가신 뒤 음악회는 끝나 있었던 것입니다. 감동에 빠져 눈물까지 흘리는 동행인의 모습을 보고 저는 자괴감에 빠졌지만, 귀가해서 저 작곡 배경을 찾아본 뒤 '나야말로 제대로 감상한 최고의 관객 아니었나', 자기 위안을 하기도 했답니다.
Richter: Dream 1 (before the wind blows it all away)
21세기에도 우리 시대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있습니다. 2015년, 독일 출신 영국 작곡가 막스 리히터(1966~)가 발표한 앨범 'Sleep'(잠)입니다. 재생 시간이 8시간 24분 21초. 기획 단계부터 수면 과학자가 참여해 곡의 시작부터 끝까지 푹 자도록 해서 현대인의 수면에 기여하자는 갸륵한 기획 의도가 있었던 겁니다.
의도는 적중했습니다. 이 앨범은 글로벌 음원 플랫폼에서 수십억 회의 재생 수를 기록하면서 현대인들의 새로운 자장가로 떠올랐습니다. 더한 걸작은 콘서트입니다. 일단 객석이 있어야 할 곳에 150~200개의 침대를 깔아놓는 것으로 이 콘서트의 준비는 시작됩니다. 관객들은 좌석에 앉는 대신 침대에 편하게 누워서, 동이 터오고 8시간 24분 21초가 흘러 음악이 멈추는 순간까지, '(돈 내고 보러 온 건데) 잘 것이냐, 들을 것이냐'의 달콤한 딜레마 속에 몸을 뒤척이게 돼 있습니다.
Max Richter's music to sleep by
전달 매체가 부모의 목소리이든 블루투스 스피커이든, 자장가는 아마도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가장 오래된 노래 형태일 것입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나 바빌로니아 지역에서 발견된 점토판과 쐐기문자에서 이미 성가, 애가, 무곡 등과 함께 자장가의 기록 흔적이 나타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장가는 단순한 멜로디와 가사가 반복되며 느린 템포로서 '너무 울면 귀신이 잡아간다'라거나, '신이시여, 우리 아이를 지켜주소서'와 비슷한 내용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미국 밴드 메탈리카는 '눈 감으면 샌드맨이 코 베어갈지 모르니 베개 꽉 움켜쥐고 한쪽 눈 뜨고 자라'는 무시무시한 메시지를 담은 '안티-자장가'인 'Enter Sandman'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기도 했죠.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