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구리 수입에 대해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조사를 지시하면서 그가 첫 임기 때처럼 이 법조항을 이용해 자동차 등 여러 제품의 수입을 통제하려할지 주목됩니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특정 품목의 수입이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될 경우 관세 등 적절한 조치를 통해 수입을 제한할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수입 규제의 종류와 수위 등을 직접 결정하게 하는 등 대통령에 폭넓은 재량권을 부여한 법이라 관세 만능주의자인 트럼프 대통령이 활용하기에 안성맞춤인 법적 근거입니다.
232조 조사에서 중요한 고려는 조사 대상 품목이 국가 안보에 중요한가, 수입이 너무 늘어 해당 품목을 미국 자체적으로 생산할 역량이 약화하지는 않았는가 등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상무부에 232조 조사를 지시한 이유도 구리가 항공기, 차량, 선박 등 군사 장비는 물론이며 인공지능(AI) 같은 첨단산업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백악관 고위당국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구리는 미국 무기 체계에 두 번째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재료"라면서 미국의 구리 생산량이 중국의 14%에 불과하다고 설명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조사를 지시함에 따라 상무부 장관은 270일 내로 구리 수입이 안보를 저해할 위험이 있는지, 있다면 위험을 어떻게 완화할지를 권고하는 보고서를 대통령에 제출해야 합니다.
이후 대통령은 90일 이내로 상무 장관의 결론에 동의하는지, 장관이 권고한 수입 규제 등의 조치를 이행할지 결정해야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첫 임기 때 지시한 철강에 대한 232조 조사의 경우 조사를 개시한 2017년 4월부터 실제 관세를 부과한 2018년 3월까지 거의 1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백악관 고위당국자는 구리에 대한 조사를 "트럼프 시간"(Trump time)대로 진행할 것이며 이는 "가능한 한 빨리"를 의미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당국자는 또 "지정학적 소란이 생길 경우 (구리 수입이) 차단되면서 우리가 스스로를 방어하고 번성하는 경제를 운영하는 게 어렵게 될 위험이 있다"면서 "이것(232조 조사)은 무역적자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첫 임기 때 232조 조사를 적극적으로 사용했고 실제 철강과 알루미늄에 관세를 부과한 사실을 고려하면 안보는 명분일 뿐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습니다.
미국 정부는 1962년 무역확장법을 개정해 232조 조사를 도입한 이후 2001년까지 26건의 조사를 했고 이후 16년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4월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해 232조 조사를 지시하면서 사실상 사문화됐던 법 조항이 부활했습니다.
의회조사국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에만 철강, 알루미늄, 자동차 및 부품, 우라늄, 티타늄 스펀지, 변압기 및 부품, 바나듐 등 8건의 조사를 개시했습니다.
이런 전례가 있어 트럼프 대통령이 2기 때도 232조 조사를 광범위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돼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동차, 반도체, 의약품에 25% 이상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는데 자동차 및 부품의 경우 이미 집권 1기 때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습니다.
당시 상무부는 자동차와 부품의 수입이 크게 늘어 미국 자동차 기업들이 안보에 필요한 군용 차량 등을 개발, 생산할 역량이 약화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에 상무부는 자동차와 특정 부품에 최대 25% 관세를 부과하거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에 최대 35% 관세를 부과하는 안을 제시했습니다.
다만 한국에 대해서는 자유무역협정을 재협상한 지 얼마 안 됐고, 미국과 국가 안보 관계가 굳건한 점을 감안해 관세 면제를 고려해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조사 결과를 받고서도 행동하지 않았기에 관세 부과는 없던 일이 됐습니다.
232조 조사를 한다고 해서 꼭 관세를 부과하거나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의회조사국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1963년부터 2022년까지 35건의 조사를 했는데 안보에 위협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경우는 15건이었고, 이 가운데 12건에 대해 대통령이 행동을 취했습니다.
(사진=A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