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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 없으면 사직 간주" 백악관 명의 메일...수백만 명에 겨눈 칼끝, 결말은? [스프]

김민표 D콘텐츠 제작위원

입력 : 2025.02.25 09:02|수정 : 2025.02.25 09:02

[뉴스페퍼민트] 미국 정부는 일론 머스크를 막을 수 있을까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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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0225 뉴욕타임스 해설 썸네일
지난 토요일(22일) 늦은 오후, 미국 연방 정부 공무원들의 이메일 계정에 백악관 인사관리처(OPM, Office of Personnel Management) 명의로 메일 한 통이 도착합니다.

제목은 "이번 주에 무슨 일을 하셨나요?"였고, 주요 내용은 "이번 주에 어떤 업무를 하셨는지 5개 정도 항목으로 간략히 요약해서 당신의 상사를 참조해 답장을 보내주세요. 단 기밀 정보나 링크, 첨부 파일은 보내시면 안 됩니다"였습니다. 월요일 밤 11시 59분이 도착한 답장만 인정한다는 내용이 더 있었고, 일론 머스크는 토요일 밤 소셜미디어 X에 "답장하지 않는 인원은 사직 의사를 표한 것으로 간주하겠다"라고 썼습니다.

300만 명 가까운 연방 정부 공무원 중에는 이메일에 답장을 보내기 어려운 사람이 많습니다. 업무 특성상 기밀을 포함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도 많고, 휴가 중이거나 근무 중이라 이메일을 열어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이미 정부효율부가 예산을 낭비하는 부서라며 통째로 직무를 정지시켰거나 무급 휴가를 보내놓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도 월요일 밤까지 답장을 보내지 못하면 사직 처리되는 건지, 어떻게 답해야 하는 건지 수많은 공무원이 또 한 차례 당혹스러운 주말을 보냈습니다.

머스크의 정부효율부(DOGE)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수습 기간(probationary)인 공무원들은 곧바로 해고하고, 수습 기간이 끝나 정직원이 돼 해고가 어려운 공무원들에게 희망퇴직 신청을 받더니, 목표치를 채우지 못했는지 노골적인 협박을 시작했습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토요일 오전, 머스크를 향한 원성과 비판에도 "머스크는 정말 잘하고 있다. 사실 더 공격적으로 나서줬으면 좋겠다"라고 썼습니다. 머스크는 이 트윗을 언급하며, "분부대로" 하는 일임을 강조했습니다.

공무원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모욕감과 수치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언론에 보도된 공무원들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이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연방법에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은 본인이 원할 때만 사직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해고 사유에 해당하는 범죄나 비위를 저질렀을 때는 일자리를 잃을 수 있지만, 이번 주에 무슨 일을 했는지 적어 내라는 사실상 근본도 없는 정부효율부라는 조직에서 뿌린 전체 메일에 이틀 안에 답장을 보내지 않은 것이 면직 사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불법의 소지가 다분한 걸 알면서도 머스크는 실리콘밸리에서 직원을 해고하듯 정부 조직을 마구 썰어대고 있습니다. 국제개발처를 사실상 공중분해 시키면서 머스크는 "예산을 갉아먹는 부서를 목재 절단기(wood chipper)에 넣어 갈아버렸다"고 썼습니다. 절차에 문제가 있다며 소송이 잇따라 제기됐지만, 머스크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공격 목표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고, 정부효율부가 하는 일을 가로막는 판사들은 죄다 탄핵해 버리라고 공화당 의원들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정부효율부라는 조직이 '근본 없는 조직'이라는 점을 차분히 지적한 니콜 겔리너스의 칼럼을 번역할 때만 해도 일어나지 않았던 '이번 주에 무슨 일 하셨나요 이메일 사건'이 일어나 해설의 앞부분을 새로 썼습니다. 최신 사례가 쉼 없이 새로 쌓일 만큼 정부효율부는 좌충우돌 연방 정부를 해체하고 무력화하고 있습니다. 이름 자체가 일부러 이 조직이 하는 일을 호도하기 위해 잘못 지어졌다는 겔리너스의 주장이 타당한지 따져보기 위해 정부효율부 설립을 지시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같이 보겠습니다.

취임 첫날 발효한 행정명령 중 하나인데, 제목에는 "정부효율부" 설립에 관한 행정명령이라고 쓰여 있지만, 내용을 보면 실은 이름만 부(Department)일 뿐 백악관 산하 미국 디지털 서비스(US Digital Service)의 이름을 고쳐 미국 정부효율부 서비스(US DOGE Service (USDS))라고 부른다고 쓰여 있습니다. 연방 정부 행정부의 부처를 신설하려면 정부 예산권을 쥔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부처의 장인 장관은 대통령이 후보를 지명하지만, 상원의 인준 절차를 거쳐야 하죠. 트럼프 대통령에겐 이 따분한 절차를 기다릴 인내심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머스크는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정부 일을 시작합니다.

'정부 일'이라고 표현했지만, 일론 머스크와 정부효율부가 정식으로 어떤 권한을 부여받았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미국은 보통법(common law)을 따르는 관습법 국가라는 점을 누차 얘기했는데, 정부조직법을 보더라도 대륙법 체계를 따르는 우리나라에 비하면 그 규정이 훨씬 성깁니다.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규정도 없고, 반대로 어떻게 하면 안 된다는 규정도 없으니, '임시로 뚝딱 만든 부처라도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극단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거죠. 지금까지는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집권 정당 누구도 그렇게 해석하지 않은 건 서슬 퍼런 법이 있어서가 아니라, 관습과 규범을 따랐을 뿐입니다. 법도 쉽게 무시하는 트럼프와 머스크의 조합은 관행과 규범 정도는 더 쉽게 무시하고, 무서운 속도로 공무원들을 줄줄이 해고하고 조직을 잘라내고 있습니다.

머스크의 이런 행위는 엄연히 정부를 방해하고 파괴하는 행위이므로, 여기에 '효율'이란 이름을 붙이는 것도 잘못됐다고 겔리너스는 지적합니다. 효율을 핑계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의제에 반대하는 세력들을 몰아내겠다는 것이지, 실제 예산 절감 효과도 미미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실제로 첫 달 실적을 발표하며, 정부 곳곳의 예산 낭비 관행을 적발하고 바로잡아 550억 달러를 아꼈다는 정부효율부의 자화자찬은 곧바로 주요 언론의 반박에 거짓말, 억지 주장으로 드러났습니다. 심지어 보도자료에 첨부한 근거에도 오타가 있어 실제 절감액은 100억 달러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한때 6조 달러가 넘는 전체 연방 정부 예산 가운데 2조 달러는 줄일 수 있다고 큰소리치던 머스크를 떠올리면 초라한 성적표인데요, 특히 정부 예산이 허투루 쓰이거나 잘못 지급되는 사례 대부분은 연방 정부 공무원 조직이 비대해서 그런 게 아니라, 주 정부가 보험금이나 각종 지원금을 중복 지급하거나 엉뚱한 데 줘서 그렇습니다. 트럼프와 머스크가 이 사실을 모르고 정부효율부에 매진하고 있다면, 그야말로 행정부의 소중한 자원과 시간을 엉뚱한 데 쓰는 셈이고, 이 사실을 알고도 정부효율부의 업무를 계속 강행한다면 다분히 정치적인 걸림돌들을 치워버리기 위한 행위로밖에 볼 수 없습니다.
 

공무원들을 향해 준 모욕, 부메랑처럼 돌아올까?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상당 부분 무력화시킨 채로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여당인 공화당의 주축은 8년 전과 비교하면 자신에게 충성하는, 이른바 "마가 공화당원(MAGA Republicans)"으로 채워졌고, 사법부도 자신이 임명한 대법관 3명을 포함해 대통령의 권한 확대와 면책특권에 우호적인 판사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습니다.

제도적인 견제 장치가 기능을 못 하는 지금 트럼프 대통령을 억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제는 내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의회 다수당을 되찾아오는 시나리오입니다. 다만 지금으로선 지난 선거에서 패배한 민주당이 리더십의 부재 속에 전열을 가다듬지 못했고, 머스크가 X(옛 트위터)를 앞세워 공론장을 효과적으로 파괴하고 장악하면서 기성 언론의 영향력은 갈수록 약화해 정부효율부가 선을 넘었다는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지는 것도 별 위협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트럼프와 머스크는 이번에야말로 사실과 거짓의 경계를 흐트러뜨려서 여론을 쥐락펴락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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