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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손대면 가격 들썩인다"…FBI가 나서자 발칵 뒤집혔다 [스프]

김민표 기자

입력 : 2025.02.23 09:00|수정 : 2025.02.23 09:00

[스프카세] 위조 와인 다큐멘터리 <신 포도(Sour Grapes)>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와인과 페어링>의 저자 임승수 작가가 와인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욕망이 꿈틀대는 곳에는 돈이 몰린다. 돈이 몰리는 곳은 사기와 협잡이 똬리를 틀기 마련이다. 와인도 역시 예외일 수가 없어서 한 병에 수백만 원이 훌쩍 넘는 고급 와인은 마치 명화 모나리자처럼 여기저기서 위조되기도 한다. 위조 와인 문제는 다큐멘터리가 제작될 정도로 상당히 진지하고 심각한 사안이다. 2016년에 공개된 다큐멘터리 <신 포도(Sour Grapes)>는 위조 와인으로 미국 와인업계를 발칵 뒤집은 인도네시아인 루디 쿠르니아완(Rudy Kurniawan)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루디 쿠르니아완(Rudy Kurniawan)
1990년대에 닷컴 붐이 일면서 부유한 수집가들 사이에서 와인 경매에 참여하는 문화가 발달했다. 와인이 상당히 훌륭한 투자 상품이라는 인식이 퍼진 것이다. 당시 와인 경매장에서 단연 주목을 받던 이는 루디 쿠르니아완이었다. 한 달에 100만 달러씩 와인 구매에 쓰는 재력에, 놀라운 미각과 풍부한 지식을 가진 이 젊은 남자는 단번에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중국 전체 하이네켄 판매 독점권을 루디 가족이 소유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누구도 루디 쿠르니아완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루디와 와인 모임을 함께했던 영화감독 제프리 레비(Jefery Levy)는 다큐멘터리에서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지식의 폭이 놀라울 정도였어요. 제게 거의 모든 것을 가르칠 정도였으니까요. 추종자가 생길 정도였고 루디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요. 루디의 신화가 만들어진 이유 중 하나는 그가 탁월한 미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제가 만나본 사람 중 미각이 가장 뛰어났어요. 캘리포니아에서 프랑스까지 어떤 종류의 와인도 루디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확하게 맞혔으니까요."

루디는 특히 프랑스 부르고뉴의 대표 와인 로마네 콩티를 매우 좋아해서 닥터 콩티(Dr. Conti)로 불리기도 했다. 와인 경매에서 루디의 영향력은 대단해서, 그가 등장한 이후 희귀 와인이나 부르고뉴의 올드 빈티지 와인 가격이 급등할 정도였다. 루디는 2006년에 와인 경매에 자신이 수집한 와인 일부를 2회에 걸쳐 3천540만 달러에 판매해 와인 경매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승승장구도 여기까지. 슬슬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억만장자 수집가 빌 코크(Bill Koch)는 미국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 소장했다는 보르도 와인을 경매에서 여러 병 구매했는데(루디에게 산 와인은 아니다), 나중에 분석해 보니 와인 병이 최근에 제작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위조 와인이었던 것이다. 충격을 받은 빌 코크는 전문가를 고용해 와인 저장고에 있는 43,000병을 일일이 확인하며 위조품을 색출했는데. 명백하게 위조로 판명 난 것만도 400병이 넘었으며 해당 와인의 구매가가 400만 달러에 이를 정도였다.

빌 코크(Bill Koch)
특히 희귀 와인 위조가 두드러졌다. 예컨대 빌 코크는 페트뤼스(Pétrus) 1921 빈티지 매그넘(1.5리터)을 2만 5천 달러에 구입했는데, 알고 보니 그해에는 페트뤼스 매그넘 사이즈가 출시되지 않았다. 1858년산 와인에서는 한참 뒤에야 생산된 접착제 성분이 검출되었다. 빌 코크는 경매에서 루디의 와인도 사들였는데 그중에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위조품들이 있었다. 부자가 한을 품으면 일 년 내내 서리가 내린다고 했던가. 빌 코크는 개인 탐정을 통해 루디 쿠르니아완의 뒤를 캐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또 다른 문제가 터졌다. 이번에는 더 심각했다. 2008년 4월 뉴욕의 와인 경매에서 루디가 도멘 퐁소(Domaine Ponsot)의 끌로 드 라 로쉬(Clos de la Roche) 와인과 끌로 생 드니(Clos Saint-Denis) 와인을 내놓았는데, 그게 문제가 된 것이다. 도멘 퐁소의 소유주였던 로랑 퐁소(Laurent Ponsot)는 다큐멘터리에서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임승수 스프카세 
"2008년 4월 뉴욕 경매 당시의 카탈로그예요. 이건 도멘 퐁소인데 사진을 보면 1929년산 끌로 드 라 로쉬라고 나와 있어요. 퐁소 라벨은 1934년부터 제작됐죠. 그러니 위조품이 이미 카탈로그에도 오른 거예요. 여기 있는 것도 모두 위조품이고요. 이런 포일도 사용한 적이 없어요. 니콜라에 와인을 판매한 적도 없죠. 라벨 외에 이런 모양을 입힌 적도 없어요. 모두 끌로 생 드니인데 45년, 49년, 66년, 71년산으로 표기됐지만 시판된 건 1982년이에요. 여기 평점 99점을 줬다는 전문가는 바로 경매인인 존 케이폰(John Kapon)이고요. 어떻게 5만 달러, 7만 달러나 하는 와인에 이렇게 좋은 평점을 주게 됐을까요? 경매인은 20퍼센트 수수료를 챙기기 때문이에요. 이틀 후 비행기를 타고 (경매가 열리는) 뉴욕으로 건너갔어요."

경매를 중지시킨 로랑 퐁소는 루디를 만나 와인을 어디서 샀는지 캐물었다. 위조 와인의 출처를 밝혀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루디는 자신이 와인을 너무 많이 구입하기 때문에 확인이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나중에 로랑은 루디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는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와인을 샀으며 판매자 이름은 팩 헨드라(Pak Hendra)라는 거였다. 그 후 루디로부터 추가로 팩 헨드라의 연락처라며 전화번호 2개를 받았는데, 확인해 보니 한 번호는 라이언 에어라는 인도네시아 항공사 번호였고 다른 번호는 와인과는 무관한 인도네시아 상점의 번호였다. 게다가 '팩'은 인도네시아어로 '씨'라는 존칭이고 '헨드라'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흔한 성이다. 루디는 '서울의 김 씨에게 와인을 샀다'고 얘기를 한 셈이다.

결국 이 문제를 주시하던 FBI가 수사에 들어갔고 루디의 자택에서 돈다발처럼 묶여 있는 엄청난 수량의 위조 라벨, 코르크 추출 기구와 재밀봉 기구, 라벨이 부착되지 않은 빈 병, 라벨 분리 중인 병 등 다수의 와인 위조 증거품을 발견했다. 그중 흥미로운 물품은 반쯤 채워진 병에 손글씨를 쓴 것이었는데, 'M-45'와 그 제조법이 적혀 있었다. M-45는 세기의 와인으로 불리는 샤토 무통 로칠드 1945를 의미하는 표식이다. 여러 와인을 섞어 자신이 마신 샤토 무통 로칠드 1945의 맛을 비슷하게 재현하려 노력한 것이다. 실제 루디의 위조 와인은 라벨에 적힌 와인의 특징을 꽤 잘 살렸다고 한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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