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0일 오전 충남 아산시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을 방문해 현대차 관계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우리는 사실 중도 보수 정도의 포지션"이라고 말해 당내서 정체성 논란이 벌어진 가운데, 친명(친이재명)계가 오늘(20일) 김대중 전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 역시 중도우파·보수를 지향했다며 비명(비이재명)계를 향한 반격에 나섰습니다.
비명계에서 이 대표의 발언을 두고 정체성을 쉽게 바꿀 수는 없다며 "몰역사적"이라는 공세를 폈으나 친명계는 오히려 민주당이 배출한 전직 대통령들을 소환, 오히려 이 대표의 발언이 역사적 정통성에 부합한다면서 논란을 일축하는 모양새입니다.
친명계의 한 관계자는 통화에서 "1997년 대선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도 '중도 우파'를 언급했다"며 당시의 김 전 대통령 발언을 담은 언론 보도를 사례로 들면서 비명계의 지적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은 같은 해 11월 13일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우리 당은 중도 우파"라며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하기 때문에 우파이고, 서민의 이익을 대변하기 때문에 중도"라고 말했습니다.
친명계 좌장격인 정성호 의원은 SBS 라디오에서 "김 전 대통령은 우리 당이 중도 우파 정당이라고 하셨지만, 진보적 가치를 포기한다는 입장은 아니었다"며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면서도 합리적인 중도·보수 정책도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발언도 근거로 제시됐습니다.
강유정 원내대변인은 오늘 기자들을 만나 "문 전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한 신문 인터뷰에서 '새누리당에 비해 진보이긴 하지만 민주당은 정체성으로 보면 보수정당이다'라는 발언을 했다"며 "해당 기사의 제목은 '우리 당은 보수다'라고 달리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비명계는 오늘도 민주당이 진보진영의 목소리를 대변해온 것이 사실에 부합한다며 이 대표의 발언이 성급했다는 비판을 이어갔습니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라디오에 나와 "하루아침에 중도·보수 정당이라고 한 것은 적절치 못했다"며 "민주당이 진보적 영역을 담당해 왔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김두관 전 의원도 오늘 페이스북에서 "'중도·보수' 망언은 철학도, 역사도, 기본 이념도 없는 정치적 수사"라며 "실언이라고 인정하고 독재에 맞서 싸워온 민주당 지지자와 국민에게 사과하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인영 의원도 페이스북 글에서 "제자리를 지킨 것은 민주당, 그리고 당원이다. 원래 우리의 자리를 놔두고 다른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이 대표"라며 "민주당의 이 대표로 돌아오라. 파란색 옷을 입고 빨간색 가치를 얘기하는 것은 어색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같은 정체성 논쟁을 두고 당내에서는 계파 간 갈등을 유발할 것이라는 걱정어린 시선과 '괜찮다'는 시각이 엇갈리는 상황입니다.
우선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쪽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이재명 일극 체제' 문제로 갈등 양상에 있던 주류와 비주류 사이의 골이 더 깊어지지 않을지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양측이 노선을 놓고 생산적인 토론을 벌인다면 오히려 당의 근본을 성찰하는 모습이 부각되며 전체적으로는 유권자에게 긍정적 인식을 심어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나아가 이같은 낙관론적 관점에서, 김 전 대통령이 중도 우파를 자처했다는 점이 오히려 널리 알려지는 효과를 불러오며 국민의힘의 최근 행보에 거부감을 가지는 유권자들의 민심을 흡수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 대표는 어제 MBC 백분토론에서 "국민의힘을 '보수'로 부르지만 지금은 거의 범죄 집단"이라며 "건전한 보수, 합리적 보수의 역할도 우리 몫이 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