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페퍼민트 NewsPeppermint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0211 뉴욕타임스 해설 썸네일](https://img.sbs.co.kr/newimg/news/20250210/202038202_700.jpg)
중국 기업 딥시크 쇼크는 인공지능 업계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 커다란 충격파를 안겨줬습니다. 인공지능 기술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딥시크가 수많은 제약을 뚫고 보여준 성공은 테크 업계의 미래에 관한 수많은 논의를 낳았습니다.
딥시크의 성공에 급락했던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주가는 이내 상당 부분 회복했지만, 기술 경쟁의 주도권을 중국 기업이나 딥시크처럼 훨씬 더 몸집이 작은 스타트업에 내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딥시크의 성공적인 데뷔는 인상적이지만,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인공지능 기술 개발에서 뒤처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여전히 컴퓨팅 파워나 최첨단 칩 제조 기술, 성능이 뛰어난 칩에 대한 접근권, 막대한 자금 등 미국 기업들이 앞서 있다고 볼만한 이유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래도 이번 일은 기술 개발을 선도한다고 자부하던 미국 빅테크 기업들에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렇다면 딥시크는 어떻게 훨씬 더 많은 자원을 풍족하게 쓸 수 있는 업계의 거인들이 하지 못한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요? 기술적인 비결을 분석하는 일은 딥시크에서 모델을 학습하는 데 어떤 데이터와 알고리듬을 썼는지 공개하지 않는 이상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그런 가운데 딥시크가 열악한 환경을 딛고 혁신을 이뤄낸 비결을 시장의 구조와 경쟁 여부에서 찾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에 해당하는) 연방거래위원장을 지낸 리나 칸입니다.
칸 전 위원장은 "미국 빅테크 기업을 향한 맹목적인 숭배, 이제는 멈춰야"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칼럼에서 경쟁의 싹을 자르고 스스로 '고인 물'이 돼버린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점점 혁신에 필요한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며, 딥시크가 울린 경종을 외면하고 시장에 경쟁을 다시 도입하지 못한다면 정말로 큰 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다고 경고합니다. 연방거래위원장으로 재직 중에도 여러 차례 경쟁이 사라지는 시장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에 대해 경고하는 글을 썼던 칸 전 위원장의 논조는 이번 글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이 사안도 어느 한쪽의 말이 전적으로 옳고, 다른 의견은 전부 다 틀렸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빅테크 기업이 주장해 온 것들, 즉 더 많은 컴퓨팅 파워와 에너지 생성, 최첨단 칩을 계속 개발하고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보장하는 막대한 자본 투자도 실제로 중요합니다.
다만 빅테크 기업들이 이런 자원과 정부의 지원을 독점하거나 끼리끼리 나눠 갖고, 새로 시장에 뛰어들려는 경쟁자를 말려 죽이기 위해 암묵적으로 담합하고 있다면 문제가 됩니다. 예를 들어 사실상 독과점 상태에 가까운 지금 상황을 유지하려고 진입장벽을 계속 쌓는 건 기득권을 혁신에 쓰지 않고, 지대를 추구하는 데 악용하는 일입니다. 만약 빅테크 기업들이 그러면서 정작 미국 정부에 자신들을 경쟁으로부터 보호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면 이는 '고인 물'이 빨리 썩는 지름길이 될지도 모릅니다. 인공지능 분야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앞서 있는 지금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건 정부의 비호보다도 오히려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을 가능하게 해주는 시스템이라는 리나 칸의 지적은 일리가 있습니다.
중국의 내부 경쟁과 딥시크
칸 전 위원장의 논리를, 딥시크를 배출해 낸 중국 시장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요? 정확한 분석은 쉽지 않겠지만, 파괴적 혁신을 통한 기술 개발과 경제 발전에 관해 근본적인 차원에서 추론은 해볼 수 있습니다.
중국은 아시다시피 공산당이 시장을 통제하는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 모델을 따릅니다. 일상적인 경제 활동에선 기업이든 개인이든 당과 국가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또는 당이 정해놓은 선을 넘는 순간 우리나라나 미국 시장에선 없는 제재를 받을 수도 있죠. 열심히 일하고 심지어 혁신을 이뤄도 그 과실을 내가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분배하는 건 중앙의 권력이나 당의 몫이라면 열심히 일할 이유도 사라져 혁신이 잘 일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바이트댄스나 텐센트 등 성공한 기업들이 정부의 눈 밖에 나거나 조사를 받고는 하루아침에 핵심 기술에 대한 통제권을 잃거나 사업을 접은 일도 있습니다.
이렇게 공산당은 시장을 통제하고 때로 지나치게 개입해 혁신의 동력을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중국 안에서 기업들이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도록 잘 유도하기도 합니다. 매번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딥시크는 분명 이렇게 내부적으로 치열한 경쟁을 시킨 게 성공으로 이어진 사례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딥시크의 성공이 경쟁 덕분이라고 단언하긴 어렵습니다. 또 국가가 시장을 통제하는 동시에 경쟁을 시킬 수 있는 건 중국 정도의 경제 규모가 아니면 하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설사 공산당이 개입해 시장이 이룬 혁신의 과실을 가로채 혁신의 동력을 떨어뜨리는 문제가 있더라도, 역설적으로 한 기업이 특정 분야에서 독점이나 과점 상태를 오래 유지하지 못하는 점은 오히려 주기적으로 치열한 경쟁을 낳는다는 측면에서 좋은 일입니다. 강력한 당이 주기적으로 경기장을 다시 평평하게 고르고, 새로운 선수를 출전시켜 새 경기를 펼치게 하는 셈입니다.
반면 오늘날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은 시장에서 구축한 권력을 더 공고히 다지는 데 혈안이 돼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구글은 1990년대 시작된 마이크로소프트 반독점 소송의 결과로 지배적인 기업이 사라진 시장에서 온라인 검색 시장을 장악하며 성장했습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오늘날에 이르렀고, 그 과정에서 놀라운 기술 혁신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오늘날 초기 구글 같은 스타트업이 나오면 어김없이 구글에 인수되고 말 겁니다. 구글이 사들이지 않는다면 아마존이나 메타, 테슬라가 가능한 한 초기에, 헐값에 잠재력 있는 스타트업을 사들일 겁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점점 더 혁신보다는 지대를 추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로비에 쓰는 비용도 지난 10여 년 사이 급증했습니다.
개별 기업이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 문제 될 게 없지만, 시장을 감독하고 혁신이 일어날 만한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규제 당국은 이를 가벼이 여겨선 안 됩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주요 기업들이 자신의 의제를 따라주길 바라고 있으며, 자신과 코드가 맞는 기업에는 얼마든지 특혜를 줄 수 있는 인물로 보입니다. 선거 과정에서, 또 당선 이후 대기업 CEO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워지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트럼프 대통령도 기업들의 민원을 잘 들어주고 있습니다. 앞서 바이든 행정부의 연방거래위원회나 법무부 반독점국이 대기업들을 상대로 제기한 반독점법 위반 소송도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기업들에 유리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칸 전 위원장은 확신에 찬 예측을 내놓았습니다. 독점 기업은 혁신을 위해 노력할 유인이 없거나 부족합니다. 특히 파괴적 혁신이 기존 자신의 시장 점유율이나 이윤을 갉아먹는다면 오히려 혁신을 가로막으려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혁신하지 않으면 반드시 도태될 거라는 예측을 단정적으로 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또한, 인공지능 분야는 특히 컴퓨팅 파워나 고성능 칩을 사용하기 위해 자본 집약적인 투자가 매우 중요하다는 빅테크 기업들의 주장도 일리가 있습니다. 인공지능 시장에선 굳이 혁신하지 않더라도, 많은 돈과 자원을 쏟아부을 수 있는 거대 기업이 결국엔 승리할 수도 있습니다.
그나마 지금껏 미국에서 시장의 바닥을 평평하게 고르고, 경쟁을 다시 촉진한 건 제도입니다. 미국은 중국처럼 정부가 시장을 직접 장악하진 않지만, 반독점 규제 당국과 사법부 판결 덕분에 독점 기업을 견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 전반과 시장, 제도까지 쥐락펴락하고 있는
일론 머스크나 트럼프에게 잘 보이려고 파격적인 조치를 잇달아 내놓고 있는
빅테크 기업들을 보면, 트럼프 임기 4년은 반독점 규제 당국이 사실상 와해되고,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시장을 감독하는,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상황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