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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멘터리] 최악의 올림픽 참사...'더 테러 라이브'의 탄생

이주형 논설위원

입력 : 2025.02.09 11:05|수정 : 2025.02.09 11:52

이주형 기자의 씨네멘터리 #129《9월 5일: 위험한 특종》


(※일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72년 뮌헨 올림픽 최고의 스타는 미국의 수영 선수 마크 스피츠였다. 100m와 200m 자유형을 비롯해 무려 7개의 금메달을 휩쓸었다. 올림픽 역사상 첫 7관왕의 탄생, 게다가 모든 기록이 세계 신기록이었다. 

그런데 더 큰 일이 벌어진 것은 마크 스피츠가 7관왕에 오른 다음 날 새벽이었다. 미국 ABC 방송사의 신참 프로듀서 제프리 메이슨은 올림픽 선수촌 바로 옆의 ABC 올림픽 방송센터로 출근했다. 스튜디오 건물 안은 고요했다. 그런데 잠시 후, 채 1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선수촌 쪽에서 콩볶는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히 총소리였다. 올림픽 역사상 최악의 하루가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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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뉴스가 유튜브로 생중계된다. 지상파 정규 뉴스도, 지상파가 정규 뉴스 외에 라이브로 중계하는 뉴스의 현장도. 그리고 지상파가 라이브로 중계하지 않.거.나. 못.하.는, 그들만의 뉴스와 그들만의 세상도. 인생은 짧고 뉴스는 길다.

이 많은 라이브 ‘이벤트’를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내 눈으로 현장을 라이브로 본다면 모든 것이 진실일까. 유튜브 라이브에 나와 그들이 떠드는 얘기는 뉴스 가치가 있는가. 뉴스 가치는 누가 결정하는가? 저널리스트들이 결정하는가? 구독자가 결정하는가? 아니면 유튜브 라이브 이벤트를 켠 그들이 결정하는가? 그들의 이야기는 확인된 사실인가? 확인됐다면 얼마나 충분히 확인됐을까? 이런 ‘질문들’이 53년 전 ABC의 뮌헨 올림픽 참사 생방송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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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5일: 위험한 특종》은 -CNN의 걸프전 생중계보다 거의 20년 앞서- 재난 상황을 위성으로 생중계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뉴스 역사상 처음으로 일깨운 방송인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대회 11일째인 9월 5일, 뮌헨 올림픽에서 벌어진 테러의 현장을 약 스무 시간 동안 TV로 생중계했다. 역사적 사건을 보도하면서, 스스로 뉴스의 역사가 된 것이다.

지금이야 뉴스의 현장을 라이브로 연결해 보여주는 것이 흔하디 흔한 방송 뉴스 기법이지만, 1972년 당시만 해도 방송사에서 재난과 사건의 현장을 여과없이 생중계로 보여준다는 것이 낯선 개념이었다. 지금처럼 기동성 좋은 ENG카메라(또는 스마트폰)나 인터넷이 없었고 16mm 필름 카메라로 뉴스를 녹화해 내보내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도 쉽지 않았다.

부조정실의 룬(맨 왼쪽)과 제프리, 마빈(가운데 서 있는 순서대로) / 롯데엔터테인먼트     ABC방송의 스포츠 부문 대표 룬 알리지(피터 사스가드扮)는 뉴욕 본사로부터 계속 채근을 받고 있었다. 올림픽 테러 생중계에서 그만 손을 떼고, 이를 뉴스 부문에 넘기라는 요구였다. 룬은 거칠고, 거세게, 반대했다. 우리 코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데, 이걸 대서양 건너 앉아있는 보도본부에 넘기라고?  

룬은 생방송 중인 올림픽 스튜디오 부조정실로 가서 ABC스포츠 부대표인 마빈 베이더(밴 채플린扮)와 생중계 연출자인 프로듀서 제프리 메이슨(존 마가로扮)을 비롯한 스태프들에게 선언한다. 
 
이것은 ‘우리의 이야기다'. (This is our story) 우리가 계속 맡는다.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선수촌에 잠입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검은 9월단’은 이스라엘 선수단 중 2명을 죽이고 9명을 인질로 붙잡았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포로로 붙잡힌 팔레스타인인 200여 명을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ABC방송은 이 테러의 현장을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중계했다. 암스트롱의 달 착륙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생중계를 봤다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말인즉슨, 시청자들 중에는 인질로 잡혀있는 선수들의 가족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뜻이었다. 

만약 인질이 사살되는 장면이 생중계되기라도 한다면? 

생중계를 연출하고 있던 프로듀서 제프리의 머리에 ‘On Air’ 불이 켜지듯 빨간 불이 들어왔다. 제프리는 머리 속에 떠오른 생각을 즉시 입 밖으로 밀어냈고, 이를 들은 룬과 마빈은 조용히 부조정실을 빠져나와 복도에서 입씨름을 벌였다. 

결국 우리의 목표가 시청률이냐고? 마빈이 공격하자 룬는 우리는 그저 (상황을 전해야하는) 더 큰 책임이 있으며 이야기가 이끄는대로 가는 것일 뿐이라고 방어했다. 마빈은 물러서지 않고 물었다. 테러리스트들도 자신들의 행위를 전세계가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바로 그것이 그들이 올림픽을 노린 이유일텐데, 만일 그들이 인질을 사살하는 장면이 생중계되면 그럼 그건 누구의 이야기냐고. 
  
우리의 이야기야, 그들의 이야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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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작스런 재난 생방송 보도야말로 방송팀에게 재난이었다.

주로 전광판에 오차없이 정확하게 찍히는 점수나 기록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오던 스포츠 프로듀서들에게 또 하나의 낯선 상황이 펼쳐졌다. 팩트가 치러야하는 ‘절차’ 혹은 ‘절차적 팩트’의 문제였다. 팩트는 전광판의 점수처럼 즉시,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뮌헨 올림픽에 파견나왔다 대사건을 목격하게 된 ABC뉴스 중동 특파원 피터 제닝스는 일찌감치 선수촌에 진입해 목소리로 생중계에 뛰어든다. 제프리로부터 바깥 소식을 전해 들으며 방송하는 그는 제프리에게 끊임없이 복수의 소식통에게 확인했는지 묻는다. 

또 생중계에서 인질범들을 게릴라로 불러야할지 테러리스트라 불러야할지 헷갈려하는 제작진에게 ‘테러리즘’의 정의를 교과서적으로 읊어대며 ‘테러리스트’는 논란을 부를 수 있는 단어라고, 참사 생중계는 자신이 속해있는 보도본부에 넘기라고 요구한다.   

  이를 거부하고 역사적 방송을, 그것도 특종으로 전하고 있는 룬과 제프리는 독일의 공영방송 ZDF를 인용해 인질들의 석방 소식을 라이브로 전한다. ZDF는 더 없이 확실한 소스였지만, 불행히도 유.일.한. 소스이기도 했다. 룬은 참사 생중계의 메인 진행자인 아나운서 짐 맥케이에게 ‘우리가 듣기로는’(as we are hearing)이라는 문구를 인질 석방 소식 앞에 덧붙이라고 한 뒤 그대로 방송을 진행한다. 하지만 불과 얼마 뒤 밝혀진 사실은? 역사에 기록된 대로 ‘인질 전원 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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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BC 스포츠 프로듀서들이(에게) 던(져)졌던 질문은 반세기가 지나도 그대로다. 문제는 더욱 심화되었다.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생중계가 가능한 스마트폰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위성 생중계는 미국의 지상파 방송사들도 비싼 사용료를 내고 제한된 시간동안만 가능했었다. 그리 먼 과거의 일이 아니다. (필자도 해외 출장 가서 리포트를 보내려면 호텔 등에 설치된 글로벌 통신사 부스로 찾아가서 겨우 5분, 10분 단위로 위성을 청약해서 사용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망에만 연결된다면 누구든지,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무엇이든지 생중계가 ‘쌉가능’하다. 구글은 공짜로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신, 조회수를 올릴 수 있다면 뭐든 생중계할 준비가 돼있는 유튜버들을 사실상 (근로계약서도 안쓰고) 고용하고 있는 셈이다.
 
  룬 알리지 역을 맡은 피터 사스가드는 한 인터뷰에서 “생중계는 필터링되지 않은 진실이라는 환상이 있다. 요즘은 무수히 많은 작은 카메라가 사방에서 기록하고 우리는 그것이 이야기 전체를 다 보여준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관점이 모든 것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사건에 무수히 많은 관점이 존재하고 그중 아무런 편견없이 이야기를 전달하는 관점은 단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라이브로 여과없이 모든 것을 보여주는 저널리즘과 유튜브 라이브는 지금이야 당연한 일이 됐지만 1972년, 지금으로부터 오십여 년 전의 사람들은 -방송인들조차도- 뉴스를 그런 식으로 봐야 한다는 생각을 안 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어떤가, 좋은가? 내가 보고 싶은 영상만, 듣고 싶은 이야기만, 언제 어디서든, 여과없이 있는 그대로, 생(生)으로, 몇시간이고, 볼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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룬 알리지는 뮌헨 올림픽 참사 생중계 5년 뒤 ABC스포츠 사장 겸 ABC뉴스 사장에 올랐고 ‘ABC 월드 뉴스 투나잇’과 ‘나이트라인’ 등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미국의 메인 뉴스와 심야 뉴스 시장을 석권했다. 룬은 ‘이야기’가 있는 스포츠 중계로 현대적인 스포츠 방송의 초석을 세웠고 방송인으로는 처음으로 올림픽 훈장을 받았다. 두 차례에 걸쳐 디즈니 제국의 사장을 하고 있는 ABC 방송 회장 출신의 밥 아이거가 초년생 시절 룬 알리지로부터 방송을 배웠다. 그 내용은 밥 아이거가 쓴 『디즈니만이 하는 것』이란 책에 잘 나와 있다. 

제프리 메이슨은 7번의 올림픽과 6번의 월드컵, 비외른 보리와 존 매켄로의 윔블던 결승을 연출했고, 26개의 에미상을 받았다. 각종 스포츠 이벤트를 프로듀싱하며 미국 최고의 스포츠 프로듀서로 수십 년간 활동했고 스포츠 방송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마빈 베이더는 1968년부터 1992년까지 10번의 올림픽 프로덕션을 지휘하며 경영과 행정의 측면에서 대형 스포츠 이벤트 방송 제작의 기틀을 세웠다. 예산 수립과 방송 세부 집행 계획의 디테일과 이성적인 판단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스포츠 방송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피터 제닝스는 룬 알리지 사장 아래서 ABC의 메인 뉴스인 ‘ABC 월드 뉴스 투나잇’의 앵커로 발탁돼 1980-90년대 미국 최고의 앵커로 이름을 날렸다. 2005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ABC뉴스의 얼굴이었다. 

짐 맥케이는 37년 동안 인기 스포츠 방송인 ABC ‘드넓은 스포츠의 세계’을 진행하고 12번의 올림픽을 중계하면서 미국의 전설적인 스포츠 캐스터가 됐다. 특히 뮌헨 올림픽 참사의 메인 진행자로서 품위있는 방송으로 스포츠 부문과 뉴스 부문에서 각각 2개의 에미상을 받았지만, 본인은 당시 미국 최고의 뉴스 앵커인 월터 크롱카이트로부터 찬사 전보를 받은 것을 더 자랑스럽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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