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페퍼민트 NewsPeppermint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0207 뉴욕타임스 해설 썸네일](https://img.sbs.co.kr/newimg/news/20250206/202036883_700.jpg)
지난 4일 트럼프 대통령이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와의 정상회담 이후 또 한 차례 폭탄 발언을 했습니다. 미국이 가자지구를 점령(take over)해 가자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 200만 명을 주변 국가로 이주시킨 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잔해를 싹 치우고 일대를 중동 최고급 휴양지로 개발하겠다고 말한 겁니다. 미국 대통령이라기보단 전직 부동산 개발업자다운 파격 발언이었지만, 국제법과 지역에서 갈등이 반복되는 역사적 맥락에 대한 철저한 무지를 드러낸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당장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받아들이라고 트럼프로부터 집요한 추궁을 받아온 이웃 아랍 국가 이집트와 요르단은 물론이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 주요 국가들, 영국을 비롯한 동맹국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을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말이야 쉽지만, 20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을 강제로 이주시키는 건 제네바협약 위반 소지가 다분하고, 인종 청소로 간주될 경우 엄연한 전쟁범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전 세계가 트럼프의 첫 임기 4년을 겪었고,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든 지 어느덧 10년이 다 돼가지만, 여전히 트럼프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매우 어려운 인물입니다. 종잡을 수 없는 돌출 발언과 행동은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고 나서 더 심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가끔은 일부러 예측하기 어려운 수를 내서 협상력을 높이려는 전략을 쓰는 것 같기도 합니다.
트럼프란 인물을 명쾌하게 정의하고 제대로 분석해 트럼프 행정부가 내놓을 정책을 예측하는 일은 학자나 기자들에게도 절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전 세계 모든 정부에 올해 주어진 미션은 트럼프가 뭘 하려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필요하다면 "트럼프의 비위를 잘 맞추는 일"이 될지도 모릅니다. 당장 가자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싹 내보내고 휴양지를 짓겠다는 말도 약소국 정치 지도자가 했다면 곧바로 무시당했을 텐데, 미국 대통령이 했기에 파장이 달랐죠.
비즈니스맨 트럼프
저는 그동안 트럼프의 행보에 어떤 사조나 "-주의"를 붙이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트럼프가 늘 강조하는 "America First"를 "미국 우선주의"라고 옮기기도 하고, 미국 언론에서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슬로건 "MAGA"에 "-주의"를 뜻하는 접미사 "-ism"을 붙여 "MAGAism"이란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이는 모두 철학적인 기반을 둔 정치 사조라기보다 그저 현실 정치인 트럼프의 특징을 짚어낸 단어에 가깝습니다. 그냥 트럼프 이름 뒤에 접미사를 붙여 "Trumpism"이라고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죠.
대신 제 생각에 정치인 트럼프 또는 인간 트럼프의 특징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단어는 있습니다. 영어로 "transactional"이란 형용사인데요, 한영사전에는 "업무적인"이란 뜻이 가장 먼저 나오지만, 여기서 말하는 업무란 비즈니스, 특히 무언가를 사고파는 협상에 관한 업무를 주로 뜻하므로, "거래적인"이라고 옮기는 게 더 정확해 보입니다.
트럼프는 모든 일에 돈 계산이 철저합니다. 공짜란 없고, 가는 게 있으면 반드시 상응하는 무언가를 받아내려 합니다. 받아낼 게 없는 일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자기한테 득이 되는 사람은 반드시 챙기고, 자기를 도와준 사람한테도 꼭 상을 내리지만, 반대로 자신에게 반기를 들었거나 자신을 해하려 했던 이들에겐 잊지 않고 복수합니다. 이런 성격이 사업가 트럼프에게는 보탬이 됐을지 모르지만, 정치인 트럼프, 특히 대통령 트럼프로서 어떤 자질인지를 두고는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습니다.
트럼프는 전쟁을 싫어합니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전쟁에 반대한다기보단 사업가의 관점에서 볼 때 전쟁은 돈과 자원을 쓸데없는 데 태워버리는 '한심한 짓'일 뿐입니다. 그래서 미국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이용해 어떻게든 전쟁을 끝내려고 해왔습니다. 무슨 수를 쓰든 휴전을 끌어낸다면 전임자 바이든과 대조가 될 테니, 정치적으로도 성공적인 훈장이 되겠죠. 그래서 트럼프가 어떤 참신한 아이디어를 낼지 한편으로 기대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짧게는 지난 반세기, 길게는 20세기 내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역사적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해법은 현실성이 전혀 없고, 오히려 갈등에 불을 지피는 꼴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도 모든 걸 사업적 관점에서, 돈이 되는지 따져보는 트럼프의 거래적인 면모가 잘 드러났지만, 트럼프의 외교 정책에는 어쩜 이렇게 일관성이 전혀 없는지 혼란스러워졌습니다. 트럼프는 (전쟁을 싫어하는 것과 비슷한 이유로) 미군을 다른 나라에 주둔하면서 새로 독립한 나라가 민주주의 제도를 뿌리내리도록 도와주는 걸 대체로 반대했습니다. 단순히 반대하는 정도를 넘어 미국인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일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 일이라며 경멸했죠.
첫 번째 임기 때 아프가니스탄에서 계속해서 군대를 철수하려던 것도 그 때문이었고, 나토나 한국에 방위비를 더 많이 분담하라고 윽박지르는 것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그런데 "중동의 화약고" 중에도 심장부에 해당하는 가자지구에 트럼프 말대로 휴양지를 지으려면 대규모 미군을 상당히 오랫동안 주둔해야 하는 일입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라 신뢰하기 어렵죠.
전통적인 보수 세력의 반공 사상도 아니고, 강력한 군대를 앞세워 힘으로 찍어 누르는 것과도 결이 좀 다르고, 돈이 되는 일이면 어제의 적과도 협상 테이블을 차리고, 금전적인 손해를 보는 것 같으면 오랜 우방국에도 날 선 말을 쏟아냅니다. 도대체 트럼프의 외교 정책을 설명할 수 있는 일관된 기준이나 원칙이 있기는 한 걸까요?
럿거스대학교 역사학과의 제니퍼 미텔슈타트 교수의 칼럼은 아주 흥미로운 설명을 제공합니다. 트럼프가 특히 다른 나라와의 관계, 국제 사회나 외교 무대에서 보여주는 말과 행동은 주권주의(sovereigntism)라는 틀로 거의 다 설명할 수 있다는 겁니다.
주권주의의 기원은 19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1919년은 3.1 운동이 일어난 해라서 우리나라 역사에도 중요한 해죠. 교과서에서 배운 기억을 더듬어보면, 일본 제국주의 지배에 맞서 3.1 만세운동을 벌인 기저에는 당시 전 세계적으로 유행처럼 번지던 민족 자결주의 바람이 있었습니다. 1919년은 또한, 1차 세계대전 이후 초국가적 거버넌스를 꾸리자는 움직임이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 설립으로 이어진 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미국의 주권주의자들은 바로 국제연맹의 토대가 되는 국제주의를 경멸하는 이들이었습니다. 공산주의, 자유주의, 식민지 독립운동가들, 민족 자결주의에 영감을 받은 이들은 대부분 주권주의자가 익숙하게 여기던 백인, 기독교 중심의 보수적 가치관에 어울리지 않는 이들이었습니다. 주권주의자들은 국제주의를 미국의 권한을 제약하는 나쁜 질서라고 여겼고, 국제주의가 낳은 국제기구의 비호 아래 세를 불리는 이들은 모두 미국의 앞길을 방해하는 이들로 간주했습니다.
주권주의자들은 미국 상원의원들을 압박해 국제연맹에 가입하지 못하게 막는 데 성공했고, 국제연맹 실험도 대공황과 이어진 2차 세계대전을 막지 못하면서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이후 설립된 국제연합(UN)은 주권주의자들의 줄기찬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명맥을 이어오고 있죠. 냉전이 시작되면서 소련에 대항해 자본주의 진영을 이끌어야 했던 미국은 동맹국을 끌어안고 관리할 필요가 있고, 여기에는 반공이라는 가치를 기반으로 한 제도적 질서가 필요했습니다. 보수 세력 안에서도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나라나 단체라면 미국인이 아니라도 미국이 편의를 봐줄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죠.
냉전이 끝난 뒤에도 미국은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강대국의 역할을 계속 맡습니다. 주권주의자들이 보기엔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나토와 같은 방위 조약을 기반으로 안보 질서를 관리하고, 자유무역 질서를 기반으로 국경을 비롯한 장벽과 울타리를 계속해서 허무는 경제 체제를 앞장서서 만들어가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세계화가 미국인의 삶에 도대체 무슨 이득을 가져다줬는지 알 수 없다는 불만과 적개심이 쌓이면서 주권주의자들은 이 감정을 정치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지도자의 등장을 기다렸습니다. 그들에게 2016년 등장한 "아웃사이더" 트럼프는 완벽한 후보였습니다.
외교 정책 이전에 트럼프 행정부가 국내 정책을 펴는 기조를 잠깐 생각해 봅시다. 여러 차례 칼럼에서 소개했지만, 트럼프가 가장 노골적으로 경멸하고 비난하는 원칙이 다양성과 형평성, 포용을 뜻하는 DEI(Diversity, Equity, Inclusion)입니다. 백인 남성에 심지어 부자로 평생을 살아온 트럼프가 기득권이 아닌 이들을 향해 말할 때면 약자의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헤아리려고 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는 태도가 보입니다. 그저 나는 내가 원하는 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취할 테니, 그 과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알아서 잘 피하고 살아남으라고 통보하는 식이죠.
이런 태도를 외교 정책에 대입하면 주권주의 사조에 따른 정책이 나옵니다. 국제법이나 협약, 국제기구는 전부 다 "내 알 바 아닌", 거추장스럽고 부패한 척결 대상일 뿐입니다. 여러 나라와 협력할 필요는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미국에 이로운 거, 미국이 원하는 건 미국이 직접 나서서 취하면 그만입니다. 그 과정에서 걸림돌이 되는 건 제거 대상이 될 뿐입니다. 미텔슈타트 교수는 특히 파나마 운하의 통제권을 되찾아오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얼핏 보면 뜬금없는 주장이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주권주의의 역사적 진화와 주권주의자들의 숙원에서 정확히 찾아냅니다.
트럼프 비위, 어떻게 맞춰야 할까?
가자지구에 휴양지를 짓겠다는 주장도 주권주의의 맥락에서 돌이켜보면 덜 생뚱맞은 지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트럼프를 향한 비판 가운데 국제법이나 제네바협약 같은 규약 위반이라는 지적에는 주권주의자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것들입니다. 국제기구 자체를 악으로 여기기 때문이죠. 또한, 미국 기준에서 보면 훨씬 더 이질적인 존재인 아랍 사람들의 권리도 트럼프에겐 중요하지 않습니다. 트럼프는 이미 첫 번째 임기 때도 주이스라엘 미국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는 등 팔레스타인과 아랍 국가들을 극도로 자극하는 결정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렸는데, 주권주의자들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했을 일입니다.
트럼프가 주권주의에 관해 얼마나 잘 알고, 그 기준을 의식해서 행동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원래부터 거래적인 성향에 사람들의 불만을 정확히 읽어내고 분노를 쏟아낼 표적을 놀라울 만큼 신속하게 가리키는 정치적인 감각이 합쳐진 트럼프는 외교 정책에 있어 주권주의자들이 바라는 길만 가고 있습니다. 세계화의 혜택과 과실을 사람들이 고루 나눠 갖지 못했으며, 그로 인한 불만이 지난 선거에서 자신에게 승리를 안겨줬다는 걸 확인한 지금의 트럼프는 자신이 곧 미국이라고 생각할 만큼 완전한 권한(mandate)을 부여받았다고 믿고 있을 겁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기도 하고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