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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10도 혹한의 밤…노숙인들은 여전히 거리에

유영규 기자

입력 : 2025.02.05 07:19|수정 : 2025.02.05 07:19


▲ 서울 종로구 한 지하도보에 자리 잡은 노숙인

"선생님, 식사하셨어요? 이불은?"

4일 오후 7시 30분쯤 시청역 근처 고가도로 밑에서 서울시립 '브릿지종합지원센터' 직원 A 씨가 말을 걸자 침낭 속에 있던 한 남성이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귓불이 떨어질 것 같은 추위를 그는 핫팩 몇 개로 버티고 있었습니다.

A 씨는 "따뜻한 센터에서 주무셨다가 아침까지 드시고 가요"라고 설득했지만, 남성은 한사코 거부했습니다.

A 씨는 남성에게 새 핫팩과 양말을 건네고 이내 자리를 떴습니다.

브릿지종합지원센터는 구세군복지재단이 서울시의 위탁을 받아 강북 지역 노숙인들의 기초 생활을 지원하는 곳입니다.

시설 입소를 거부하고 거리를 고집하는 '만성 노숙인' 50∼70명을 돌보는 게 A 씨의 업무입니다.

수은주가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진 날이지만 A 씨의 '저녁 순찰'은 계속됩니다.

시청역에서 북쪽으로 올라와 광화문 광장에 도착하자, A 씨는 익숙한 듯 광장과 접한 한 대형건물의 실외 환풍시설로 향했습니다.

환풍시설 옆엔 한 80대 여성이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쓴 채 누워 있었습니다.

이 여성은 5년 전까지 조계사 인근에서 노숙하다 비교적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A 씨는 설명했습니다.

A 씨가 핫팩을 건네며 "흔들어서 따뜻해지면 품으셔요"라고 하자 여성은 "네"라고 하며 웃었습니다.

5분 거리에 있는 지하 도보에는 남성 3명이 종이상자로 만든 '울타리' 안에 각각 누워 있었습니다.

한 남성은 맨발이었습니다.

A 씨가 양말을 건넸지만, 그는 "잘 때는 안 신어"라며 받지 않았습니다.

머리맡에 놓인 페트병 속 물은 꽁꽁 얼어 있었습니다.

양말은 그 앞을 지나가던 다른 남성에게 전달됐습니다.

A 씨는 그에게도 "센터에서 주무시고 가라"고 권유했습니다.

남성은 "무슨 말인지 아는데…"라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A 씨와 동행한 1시간 동안 만난 노숙인은 10여 명, 모두 시설 입소를 거부하는 '만성 노숙인'이었습니다.

살을 에는 강추위 속에서도 이들은 왜 '거리의 삶'을 택할까? 당장 시설에 가면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부터, 전과나 채무 등 신상 정보가 드러날까 봐 입소를 꺼린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정신 질환으로 소통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보호의 손길을 뿌리치고 찬 바닥에 누운 이들에겐 A 씨에게 받은 방한용품이 이 밤을 버티게 할 유일한 온기인 셈입니다.

광화문에서 종각역 방향으로 향하던 길에 만난 한 70대 여성은 짐보따리를 들고 바삐 이동 중이었습니다.

A 씨가 "어디를 가시냐"고 묻자 "자러 가지, 뭐"라는 다소 퉁명스러운 답이 돌아왔습니다.

핫팩을 건네자 여성은 이내 "감사하다"며 허리를 굽혔습니다.

(사진=촬영 이영섭,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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