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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법적 정의는 없지만, 지능지수가 71~84 사이인 경우를 '경계선 지능인'이라고 합니다. 성인이 돼도 '자립'은 어려운데 사회의 지원은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2일) 시선 360에서는 국민 전체의 13% 정도로 추산되는, 이 경계선 지능인의 이야기를, 권지윤 기자, 정성진 기자가 차례로 전해드립니다.
<기자>
A 씨의 20대 딸은 경계선 지능인입니다.
학습이 늦었지만, 어릴 때는 엄마가 특별히 더 신경 써서 채워나갔습니다.
[A 씨/20대 경계선 지능인 부모 : 제가 버는 돈 거의 다 얘한테 일대일로 하다못해 줄넘기 같은 것도 (다 가르쳤거든요.) (그런데) 사회에 나갈 때는 제가 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니잖아요.]
그러나 커갈수록 딸은 점점 고립됐습니다.
A 씨가 무료 노동까지 자처하며 딸 일자리를 구해 주려 했지만 허사였습니다.
[A 씨/20대 경계선 지능인 부모 : 국숫집에 얘를 데리고 가서 '저하고 둘이 할 테니까 딸 알바비만 주세요.' 이런 욕심으로 여기저기 다녀봤죠.]
어릴 때는 '학습 부진아', 커서는 '손이 느린 사람', 경계선지능인 B 씨는 30대 후반이 된 지금, 생존의 문제를 고민 중입니다.
끈을 묶는 게 느려 매듭 없는 신발까지 신고 일했지만 한 달 이상 지속할 수 없었습니다.
[B 씨/30대 후반 경계선 지능인 : 덮밥집에서 알바를 했는데 멀티가 안 되고 이건 노력의 문제가 아니구나라는 걸 (알게 됐죠.)]
도움이 절실하다는 생각에 장애인 등록 신청을 했지만, 거부당했습니다.
B 씨는 2년째 소송을 진행 중입니다.
[B 씨/30대 후반 경계선 지능인 : 장애인이 안 되고 다른 방법이 없어요. 재판할 때 저도 굉장히 괴롭습니다. '내가 이렇게 못났습니다, 이렇게 능력이 없어요.' (라는 걸 증명해야 해요.) 다 발가벗는 거예요. 내 모든 걸.]
장애인으로 등록되면 일자리 지원이나 자립자금 대여 등 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법령상 지적 장애인은 지적 능력 불충분으로 사회생활이 상당히 곤란한 사람으로 정의하지만, 막상 시행규칙에는 '지능지수 70 이하'로 규정합니다.
B 씨의 지능지수는 72라, 이 선은 넘어 대상에서 빠지는 것입니다.
[임한결 변호사/B 씨 대리인 : 경계선 지능인 중 일부는 지적 장애인이 겪는 사회적 어려움과 동일합니다. 이분들을 장애의 틀 내에서 보호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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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지원에서 제외된 성인 경계선 지능인들의 가장 큰 바람은 자립 기반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김 모 씨/30대 중반 경계선 지능인 : 아직까지는 독립이 좀 어려운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취업을 하게 되면 돈을 좀 벌고 싶은….]
이들의 취업을 돕기 위해 장애인고용공단은 지난해 처음으로 일 경험 시범사업을 했습니다.
천천히 가르치고, 현장도 경험시키는 맞춤형 직업교육입니다.
경계선 지능인 100명이 부푼 기대를 안고 참여했습니다.
[김 모 씨/30대 중반 경계선 지능인 : 혼자서 일을 할 때는 좀 어려움이 있다 보니까 천천히 가르쳐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으면 같이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교육 후 실제 취업까지 이어진 사람은, 단 1명도 없습니다.
그나마 다섯 명이 카페 아르바이트 등 단기 일자리를 구한 게 전부입니다.
기간이 5주로 짧아 일을 배우기에는 부족했고 무엇보다 이들을 지원할 법과 제도가 없는 게 실패 이유로 꼽힙니다.
기업이 장애인을 채용하면 보조금과 세금 감면 등 혜택을 받지만, 경계선 지능인은 비장애인으로 분류돼 해당 사항이 없기 때문입니다.
[B 씨/30대 후반 경계선 지능인 : 장애인을 뽑으면 보조금이라도 받잖아요. 경계선 지능인을 왜 굳이 뽑겠어요?]
독일 등에서는 일찌감치 경계선 지능인을 학습장애로 분류해 장애인에 준해 지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난해 7월부터 5건의 관련 법안이 발의됐을 뿐입니다.
법이 만들어져야 제도적 지원도, 예산 편성도 가능한데 아직 논의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것입니다.
[변민수/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 선임연구위원 : 누군가 같이 동행할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 서비스를 만들어줘야 될 필요가 있는 것이죠.]
국민의 10명 중 1명 이상이 경계선 지능인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이들의 자립을 도우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A 씨/20대 경계선 지능인 부모 : 작은 직업이라도 주어지면 세금 내고 국민으로서 다른 사람에게 부담 주지 않고 살아갈 수 있거든요.]
(영상취재 : 황인석·제일·조창현·신동환, 영상편집 : 원형희·김종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