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저격] 뮤지컬 <알라딘>, 원작 IP 한국화 성공... 환상성 표현한 공간은 아쉬움 (글: 장은진 대중문화평론가)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뮤지컬 <알라딘>이 방학, 명절 특수를 누리며 8개월의 장기 공연에 돌입했다. 브로드웨이 초연 10년 만에 2024년 국내 상륙한 알라딘은 티켓 오픈마다 초 단위로 매진됐고 얼마 전 2월 공연 오픈도 순식간에 매진됐다. K-팝 콘서트나 내한 공연 팝스타들의 콘서트가 아닌 라이선스 뮤지컬도 이제 피 튀기는 '피케팅' 전쟁을 벌여야 하니 알라딘과 자스민이 탄 마법의 양탄자를 보러 가는 여행길은 멀고도 쉽지 않았다.
코로나 종식 이후 공연 문화에 대한 갈증과 욕구는 뮤지컬 N차 관람으로도 이어진다. 다양하고 디테일하게 세분화된 대중의 취향은 익숙하지만 신선하고 재미와 감동이 보장된 스토리텔링을 찾아 나선다. <알라딘>은 디즈니의 독창적인 IP 자산이면서 2019년 실사영화로도 성공한 원작 콘텐츠라는 기대감을 바탕으로 한국을 배경으로 현지화된 대사 번역, 화려한 캐스팅 등 관전 포인트가 입소문 나면서 디즈니 영화를 보고 자란 MZ세대 관객들이 몰려들었고 이에 순항 중이다.
어디 한번 보러 갈까 하고 예매 사이트로 들어가 보니 그럼 그렇지, 2월 말까지 전석 매진. 다시 전략을 짜서 설 명절엔 좀 낫겠지 싶어 예매 대기를 걸어 놓은 결과 띠링~ 드디어 취소표 알람이 울렸다! 강의가 없는 방학이기도 하고 서울 구경도 할 겸 샤롯데씨어터가 있는 롯데월드행 SRT 기차를 탔다. 어쩌다 보니 유연석이 나온 <벽을 뚫는 남자> 이후 뮤지컬 공연으로 꽤나 오랜만의 관람이다. 공연장에 도착하니 방학이라 아이들과 온 가족들, 2·30대 연인들, 캐리어를 끌고 온 외국인들, 유난히 젊은 관객들이 눈길을 끈다. 이들은 <겨울왕국>을 보고 자란 디즈니 키즈고 그의 부모들은 90년대 국내 처음 들어온 <인어공주>와 <미녀와 야수>를 보고 자란, 지금은 중년이 된 X세대들이 대부분인데 <알라딘>은 그들 모두의 추억과 욕구를 채워주는 검증된 이야기임엔 틀림없다.
지니 쇼로 기선 잡고 몰입도 선사 : 역동적 장면 펼치는 좁은 공간의 아쉬움
막이 오르면 예상대로 지니의 원맨쇼가 펼쳐진다. 정성화는 능청스럽고 코믹한 지니로 변신해 무대를 휘어잡는 장악력을 보이며 흐름을 잘 리드해 나간다. <알라딘>의 흥행 요소 중 하나를 꼽으라면 150분간 펼쳐지는 공연 내내 지루할 틈 없던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지니의 속사포 랩 같은 대사다. 지니의 대사 속에 <알라딘>의 철학이 있고 고민하는 알라딘의 선택 속에 우리들 인간의 가장 큰 욕망이 숨겨져 있다. 철저히 자신의 욕망을 따를 것인가? 타인의 자유를 위해 이타적 선행을 베풀 것인가? 가장 나다운 모습을 찾아가는 알라딘의 여행은 결국 자신의 갈망을 누르고 타인을 이해하고 함께 갈 때 보상받는다.
대사를 듣다 보면 브로드웨이 버전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 아닌 지금 한국 사회의 반영, 주 관객층인 MZ세대의 욕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대본 번역을 참 맛깔스럽게 했다 싶어 프로그램 북을 보니 양주인, 김수빈이란 음악감독과 번역가 두 사람이 한국어 대사와 가사 번역을 했다.
지니가 처음 만난 알라딘에게 소원 3순위를 브리핑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최신식 발코니 확장 피라미드 분양권이나 롯데타워 시그니엘에 롯데월드까지 덤으로 얹어 준다는 대사는 뮤지컬 주요 관객인 대한민국의 2·30대 MZ세대가 원하는 부의 가치를 보여준다. 부동산, 주식, 코인, 슈퍼카로 부를 획득하며 하루하루 무사안일과 말초적인 부에 올인하는 세태 풍자 뮤지컬 대사는 꽤 흥미로웠다.
뿐만 아니라 지니가 왕자의 소원인 풀코스 요리를 최고의 유행어인 '이븐하게' 구워준다거나 쥐가 나는 장면에서 '나 쥐나, 이거 쥐니? 지니?'라며 난리법석을 부리는 장면과 알라딘을 '맨살조끼보이', '상자 속의 남자, 상남자'로 부르는 애드리브 빵빵 터지는 유머러스한 대사에 관객석은 한껏 즐거워진다. 한국판 지니의 유머에 덩달아 유쾌해지는 동시에 지니가 나에게 나타난다면 어떤 소원을 빌지 상상하게 되는 판타스틱한 마법의 순간을 선사한다.
<알라딘>의 환상성이 극에 달하는 순간은 '흙 속의 다이아몬드'였던 알라딘이 램프를 구하러 사막 속의 동굴에 들어간 장면에서 펼쳐지는 앙상블 단원들의 화려한 집단 군무다. 화려한 의상과 귀에 익숙한 넘버들이 펼쳐지고 여기서 '알라딘'의 하이라이트가 펼쳐진다.
이 멋진 장면을 보면서 아쉬웠던 점은 도입부에서 좀도둑 알라딘이 시장통 세 친구들과 벌이는 추격 장면과 함께 무대 공간이 너무 협소하다는 점이다. 황금 동굴 장면은 그나마 몰입도가 높아서 괜찮았지만 아그라바의 시장에서 알라딘이 무대를 가로지르며 날아다니는 시장통 장면은 배우들의 동선이 좁고 답답해 보여 보는 내내 움직임이 불안해 보였다. 유명 뮤지컬 상시 공연장인 영국 웨스트엔드나 미국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전용 극장도 실제론 아담한 규모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알라딘>은 국내 초연이고 기대치도 높았던 만큼 조금 더 극의 역동성을 활용할 수 있는 무대 공간이었다면 훨씬 멋지고 신나는, 날아다니는 알라딘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더구나 김준수는 춤선이 살아있는 파워풀 아이돌 출신 아닌가.
이 우려는 알라딘과 쟈스민이 양탄자를 타고 날아가는 장면까지 이어졌다. 가장 환상적이고 아름다워야 할 장면에서 양탄자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없었기에 어두운 밤하늘로 표현되며 거의 고정에 가깝게 정지되어 있던 부분은 극의 몰입을 방해하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맘속으로 '제발 날아라! 움직여라!! 양탄자야...' 외쳤지만 양탄자는 요지부동. 주차한 듯 멈춰 있네. 아쉽도다.
샤롯데씨어터의 1, 2, 3층 객석은 모두 1천240여 석으로 계단 단차가 크고 경사가 심한 데다 앞좌석 여유 공간이 좁고 원형으로 커브가 진 1층에 비해 2층에서 보는 시야는 일직선이라 무대가 평면적으로 보이는 단점이 있다. 3천 석의 세종문화회관이나 2천200석의 예술의전당보다는 턱없이 작은 공간에 올려지다 보니 알라딘이란 IP가 가진 환상성과 판타스틱한 연출이 제대로 살지 못한 점은 못내 아쉽다. 물론 무대가 넓어지면 시각적 연출을 위해 소요되는 무대 장치 예산과 비용은 올라가고 제작비가 상승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지만 작은 무대에서의 답답함이 해결되면 좋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부분은 7월 이후 부산 공연장인 드림씨어터에서는 좀 더 나아지리라 생각한다.
한국판 '알라딘'의 성공 : 알라딘의 재해석, 만족도 높은 관객 서비스
앞서 말했지만 <알라딘>의 흥행 요소는 볼거리 가득한 원작 IP의 뮤지컬 장르로의 장르 변환, 재매개된 스토리텔링이다. 디즈니 원작 애니메이션이 갖고 있는 집단 군무와 오리지널 넘버의 환상적 요소를 뮤지컬 장르에 걸맞은 집단 군무와 화려한 볼거리로 재탄생시킨 점, 귀에 익숙한 넘버 대표곡들이 주는 흥겨움, 지니와 알라딘이 보여주는 브로맨스, 똘똘하고도 선한 소년미를 보여준 알라딘과 자유를 꿈꾸며 진취적인 여성 초대 술탄이 되는 자스민의 '자신의 꿈'을 이루는 이야기, 강력한 힘을 가진 빌런이 되기를 소망하다 자신의 욕망에 갇혀버리는 자파의 카리스마 있는 연기와 쉴 새 없이 웃음 폭탄을 던지는 자파의 조력자로 탄생한 이아고의 케미는 윤선용과 정열이란 배우의 이름을 찾아보게 만들었다.
6천 원의 유료 서비스지만 좋은 반응을 얻은 알라딘 소품 착장 네 컷 사진 부스, 다양한 굿즈 판매, 알라딘 콘셉트로 매칭시킨 코스 요리 판매, 그리고 지니에게 소원을 써내면 지니 배우의 친필 편지를 전달하는 MZ세대를 겨냥한 영민한 마케팅은 재관람과 N차 관람을 유도하며 뮤지컬 관람객들에게 기분 좋은 체험을 선사하기도 했다.
퀄리티가 있으면 관객들은 찾게 된다 : K-창작 뮤지컬의 발전을 꿈꾸며
국내 뮤지컬 시장이 5천억 시대를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라이선스 뮤지컬의 흥행에 치우쳐 있고 소규모의 작품들은 단기간에 막을 내리는 대중들의 편중된 선택과 위기론을 전문가들은 지적하기도 한다. 뮤지컬 극단들이 고군분투한 20년. CJ ENM이 창작 뮤지컬을 전략 사업화하고 창작 뮤지컬 시장이 성장하면서 K-뮤지컬은 많은 발전을 하고 있지만 <알라딘>을 바라보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잘 짜인 이야기는 관객들이 꾸준히 찾을 거라는 믿음이 한 걸음 한 걸음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기를. 우리의 창작 스토리가 가진 힘을 원천 IP 소스로 활용하게 될 날이 올 수 있기를 바란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