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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세계·새로운 연애 판타지…<나의 완벽한 비서>의 성공 비결 [스프]

김민표 D콘텐츠 제작위원

입력 : 2025.01.29 09:00|수정 : 2025.01.29 09:00

[취향저격] (글 : 홍수정 영화평론가)


나완비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최근 넷플릭스, 웨이브 등 OTT에서 드라마 부문 1위를 휩쓰는 작품이 있다. 올해 초 방영을 시작한 <나의 완벽한 비서>이다. 이 작품은 3회 만에 시청률 두 자릿수를 돌파하고, 주역을 맡은 한지민은 물론 이준혁까지 다시 주목받으며 신드롬을 일으키는 중이다.

<오징어게임> 시즌2를 비롯해 쟁쟁한 작품이 활보하는 지금, <나의 완벽한 비서>가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여기에는 2025년의 우리가 욕망하는 판타지가 숨겨져 있다.

'오피스 로맨스'는 꾸준히 사랑받는 장르다. 멋지게 일하며 성공 가도를 달리면서 사랑도 쟁취하는 이야기. 하지만 장르물도 시대에 따라 조금씩 모습을 바꾼다. 예전과 지금 시청자의 욕망이 다르고, 그들이 꿈꾸는 로맨스가 다르기 때문이다. <나의 완벽한 비서>는 변화하는 시대의 공기를 감지하고 이것을 정조준하는 데 성공한 사례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 속에 녹아있는 이 시대의 욕망은 무엇일까. 특히 '지윤'이 대변하는 커리어 우먼들의 욕망은? 하나하나 이야기해 보자.

<나의 완벽한 비서>는 한 헤드헌팅 회사를 배경으로 한다. 이곳의 CEO 지윤(한지민)은 일에 철두철미한 '본업 천재'이지만 평소에는 허당이다. 가방을 아무 데나 던져 놓고 물건을 빠트리는 등 허술 그 자체. 반면 그녀의 비서 은호(이준혁)는 섬세하면서도 프로페셔널한 면모를 발휘해 지윤이 챙기지 못한 것을 완벽하게 보강한다. 은호가 오며, 지윤은 그간 놓친 것이 채워지고 일에 완벽하게 몰입하는 경험을 한다.

여기에 이 드라마가 포착한 첫 번째 욕망이 있다. 그것은 '일상의 보살핌'에 대한 욕망이다. 이것은 경제적으로 의존하거나 커리어의 도움을 받고 싶다는 생각과는 다르다. 지윤은 '일잘러'이며 자기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아간다. 다만 필요한 때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갖다주고, 깜빡 잠이 들었을 때 춥지 않도록 챙겨주는 일. 어두운 침실에 켠 조그마한 수면등처럼, 때때로 찬바람이 드는 삶에 은은한 온기를 불어넣어 주는 일. 그런 '챙김'을 받고 싶다는 욕망은 은호를 통해 실현된다.

이건 기존의 로맨스물과 다른 부분이다. 그간 로맨스에서 남성 캐릭터의 신분이 더 높은 경우가 많았다. 남성은 여성을 신체적·경제적으로 보호하고(위험이나 궁핍에서 구해줌), 여성은 그를 정서적으로 케어하는(어릴 적 상처 등을 보살펴줌) 구도가 대부분이다. 이런 상호작용을 통해 둘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나의 완벽한 비서>에서는 이런 구도가 역전되어 있다. 지윤은 일자리를 찾던 은호를 채용하고, 은호는 지윤의 숨겨진 상처를 알아본다. 게다가 이런 설정은 열렬한 호응을 얻고 있다. 시청자, 특히 여성들이 꿈꾸는 사랑의 형태가 달라지고 있다는 시그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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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은호에게 독특한 설정이 있다. 그는 홀로 딸을 키우는 싱글 대디다. 그뿐만 아니라 "딸의 웃음을 지켜주고 싶다"며 육아 휴직까지 감행할 정도로 육아에 진심이다. 기존 로맨스물에서 찾아보기 힘든 설정이다. 대부분의 작품이 결혼 전 연애 단계를 다루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완벽한 비서>는 남자 주인공을 이혼남으로 설정하는 것을 감수하면서, 그가 얼마나 훌륭한 아빠인지를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이것은 좋은 남편을 넘어 '내 아이의 좋은 아버지'를 기대하는 심리를 정확히 조준한다. 무척 사랑해서 결혼한 커플도 출산 이후에 '육아'라는 새로운 전쟁을 맞이한다. 게다가 워킹맘과 맞벌이가 보편화된 요즘이다. 성별을 막론하고 결혼 전 단계에서 '저 사람은 육아에 잘 동참할 수 있는 사람인가' 여부를 고민하는 이들이 많다.

<나의 완벽한 비서>는 은호를 통해 이런 니즈를 충족한다. 물론 이것은 이혼이 많아진 요즘을 반영하는 설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좀 더 방점이 찍힌 쪽은 은호의 육아 능력이다. 또한 지윤은 아버지에 대한 결핍이 있는 인물로 등장하는데, 다정다감한 은호는 지윤이 놓친 부성(父性) 그 자체를 상징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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