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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피해가 공식 확인된 지 올해로 15년째를 맞는 가운데, 여전히 꽉 막혀 있는 피해 회복 문제가 새해에는 좀 더 진전이 있을지 주목됩니다.
왜냐고요, 지난해 6월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국가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확정됨에 따라 주요 관련 부처인 환경부가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이에 따른 구체적인 후속 조치에 대한 계획을 밝혔기 때문입니다.
환경부는 2025년 들어 김완섭 장관 명의의 새해 신년사와 업무계획을 통해 가습기살균제 문제에 대한 입장을 잇따라 밝혔습니다. 뭐라고 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신년사와 업무계획서 잇따라 밝힌 가습기살균제 대책
먼저 새해 첫날 내놓은 신년사에서 김 장관은 중점 추진 업무 방향을 3가지로 제시했습니다. 기후 대응과 환경을 통한 시장 창출이란 주제가 첫째와 둘째였고요. 세 번째는 자연 생태계 보전과 안전하고 쾌적한 생활 공간 조성을 위한 환경 정책을 강화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 업무 방향과 관련해 김 장관은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2주가 지난 뒤 1월 15일 환경부가 내놓은 2025년 주요 업무 추진 계획에선 뭐라고 담았을까요? 흔히 줄여서 새해 업무보고라고 하죠. 신년 계획을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자리인데, 이번엔 최상목 직무대행에게 보고가 이뤄졌습니다. 이 자료에 담긴 가습기살균제 관련 부분은 아래와 같습니다.
업무계획 첫 줄에 "정부는 이제 피해 구제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의 주체"라고 썼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큰 틀에서 정부는 이제까지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가해 기업과 피해자라는 두 당사자가 풀어야 할 문제라는 입장을 고집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대법원에서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확정한 만큼, 더 이상 팔짱 끼고 방관할 수 없는 상황이란 걸 인정한 겁니다. 말하자면 저 문장 앞에는 "정부 책임이 인정됐으니" 이런 구절이 생략된 겁니다.
환노위에 협의체 구성... 정부 출연 몫 산출 위한 연구용역도
이에 따라 신년사와 업무계획 자료에 반복돼 나타난 게 '협의체'란 단어입니다. 신년사에선 '사회적 협의체'라고 했고 업무계획상에는 '제도 개선 협의체'라고 했는데, 실은 같은 겁니다.
책임 인정에 따른 후속 조치로서 가장 직접적인 조치는 뭐가 될까요? 아무래도 금전적인 부분이 될 수밖에 없죠. 협의체를 통해서 하겠다는 조치의 핵심도 정부 재정을 통해 피해자 치료 비용과 위자료를 어떻게 얼마나 지급할지 여부가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에 구체적인 정부 책임과 이행 방안을 담는 식이 될 수밖에 없고요. 이 때문에 '협의체'를 국회 환노위에 만들겠다는 게 환경부 구상입니다. 이미 국회 환노위원장실과 협의가 시작됐고요. 이 협의체에 피해자 단체, 가해 기업들, 환경부까지 참여하는 방식이 됩니다.
현재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을 위한 재원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위 특별법 31조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자금의 설치 및 조성을 명시했습니다. 관련 기업 8곳으로부터 분담금 1천250억 원을 거둬서 만들어졌고요. 지난 17년에 이어서 지난해 동일한 규모의 분담금이 추가로 징수된 바 있습니다. 이 재원을 바탕으로 피해자들의 치료비 요양생활수당, 장례간병비, 장해급여 등에 쓰입니다.
피해구제자금 정부 출연, 사실상 처음
환경부는 환노위 협의체를 통해서 관련 기업들 말고 정부가 얼마나 돈을 내야 할지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사실상 정부의 피해구제자금 출연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에 대해 환경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지난 정부 당시 2017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청와대로 불러 사과를 한 뒤 2019년부터 3년에 걸쳐 225억 원을 출연한 바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돈은 성격이 좀 달랐습니다.
특별법 25조 2항에 보면 이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환경부 설명에 따르면 이 조항은, 정부 출연은 기업들이 내야 할 돈을 정부가 우선 대납한 뒤 향후 기업들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돈이라는 설명이라는 겁니다.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에 따른 출연금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겁니다.
제25조(다른 보상이나 배상과의 관계)
② 환경부 장관은 이 법에 따른 구제급여를 지급한 경우 지급한 구제급여 중 정부 출연금 범위(제31조에 따른 피해구제자금의 재원별 조성 비율 등을 고려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금액을 말한다)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또는 유족이 가습기살균제 사업자 등에 대하여 가지는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할 수 있다.
환경부는 정부 출연 규모 확정 등을 위해 현재 법무법인 서초에 '가습기살균제 등 피해 구제 체계 분석 연구' 용역을 발주했고요. 이달부터 연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정부 몫이 얼마나 될지에 대해 물었더니 환경부 측은 현재로선 단언할 순 없다면서 석면 피해기금 같은 게 참조 사례가 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1군 발암물질인 석면으로 인한 피해 회복을 위해서 현재 피해기금이 조성돼 있습니다. 여기에선 관련 기업들이 70%를 부담하고 있고요. 나머지 20%가 정부 몫, 10%가 지자체 몫입니다. 가습기살균제에서는 지자체 책임을 따로 묻기 어려운 만큼, 환경부의 구상은 전체 피해 배보상 액수의 30% 안팎을 정부 몫으로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조정위원회 재가동, 환경부도 한 축으로 참여
새해 업무계획에서 밝힌 또 하나 핵심 사안은 "기존 사적 조정 + 환경분쟁 조정"도 추진한단 겁니다. 쉽게 말하면 기존 사적 조정위원회에 환경부가 한 축으로 참여하겠다는 복안입니다. 구제자금에 대한 정부 출연만큼이나 관심이 가는 사안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