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해봐서 아는데…”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아는 사람 못 봤다. ‘해봐서 안다’는 것은 지금은 안하고 있다는 뜻이니 현 상황을 제대로 알 리가 없지 않은가. 또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도 있다. ‘해봤다’는 것도 나름이라, ‘직업이 사장’처럼 실무를 거의 안하고 관리자만 오래 한 사람이라면 제대로 해봤다고 하기도 어렵다.
* * *
페라리
지난 2019년 흥행작 《포드V페라리》는 1960년대 레이싱카의 대명사였던 이탈리아의 페라리에 도전장을 내민 미국 포드의 레이싱카 GT40의 레이서와 엔지니어에 대한 이야기다. 양산차 브랜드가 슈퍼카 브랜드에게 ‘르망24시’(세계적인 스포츠카 경주 대회)에서 한판 붙자고 덤빈 것이다.
일반 도로나 잘 달리면 그만인 포드는 왜 이런 승산없는 게임에 뛰어들었을까. 평범한 양산차만으로는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창출하기 어려웠던 포드가 섹시한 이미지의 페라리를 인수하려다 페라리 창업자인 엔초 페라리에게 뒤통수를 맞고 실패하자 “그럼 우리가 직접 레이싱카를 만들겠다”고 나선 것이다.
자존심 센 엔초 페라리는 포드가 양산차뿐 아니라 ‘레이싱’에도 간섭하겠다고 하자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레이싱’은 페라리의 영혼이었다. 애초 페라리는 ‘스쿠데리아 페라리’라는 레이싱팀을 운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회사였다. 현재 뉴욕증시에도 상장돼있는 페라리사의 종목코드가 ‘RACE’일 정도다. (대부분은 사명을 따서 만든다)
최근 개봉한 마이클 만 감독의 《페라리》는 《포드V페라리》보다 10년 앞선 시대의 이야기로, 레이싱보다는 ‘인간 엔초 페라리’를 깊숙이 들여다보는 영화다. ‘페라리’ 프로젝트는 《히트》, 《콜래트럴》등을 만든 할리우드의 명장 마이클 만이 무려 20년 넘게 준비해온 역작으로 그간 이름이 오간 주인공만도 로버트 드 니로에서 크리스턴 베일, 휴 잭맨 등 당대의 스타 배우이었다. (결국에는 아담 드라이버로 낙찰되었다)
1957년 여름, 페라리는 위기에 처해 있었다. 차를 팔아 버는 돈보다 레이싱에 쓰는 돈이 많았기 때문이다. 페라리의 변호사가 이러다가는 회사가 파산할 거라며 피아트나 포드같은 파트너를 찾아보라고 말한다. “페라리사가 지금 일년에 백 대도 못만들고 있는데, 적어도 사백 대는 만들어야 된다”는 게 그의 조언이었다. 엔초 페라리가 그에게 묻는다.
-그런데 어떻게 고객용 차를 사백 대나 팔지?
-재규어가 르망 경주에서 1, 2, 3등을 휩쓸었어. 그 뒤로 판매 예약이 꽉 찼다는군.
-재규어는 차를 팔려고 경주에 나가는 거야. 하지만 나는 레이싱을 하기 위해 차를 팔지. 우리는 완전히 다른 조직이야.
-살아남지 못하면 조직이고 뭐고 없어.
엔초 페라리는 페라리를 창업한 기업가이기에 앞서 그 자신이 레이서였다. 알파 로메오의 레이서였던 그는 자신의 팀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창단해 모터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레이싱팀으로 키웠다. 또 나중에 물리학 명예 학위를 받는 자동차 엔지니어이기도 했다.
닌텐도
지난 2005년, 세계 최대 규모의 게임 개발자들의 연례 행사인 ‘게임개발자회의’(GDC)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다.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포켓몬’ 등으로 유명한 닌텐도의 4대 사장인 이와타 사토루가 두 번째 기조연설자로 연단에 섰다. 그리고 ‘게이머의 마음’이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이 연설은 현장에서 큰 박수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후 두고 두고 화제가 되며 이와타를 세계 게임업계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명함 속의 저는 한 회사의 사장입니다.
머리 속의 저는 게임 개발자입니다.
하지만 마음 속의 저는 게이머입니다.
대외적으로는 세계 최고 게임 회사의 사장이지만, 여전히 게임 개발자라는 자의식을 갖고 있으며, 직업이나 지위에 상관없이 자신은 스스로를 게이머라고 생각한다는 그의 연설은 게임업계를 넘어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줬다.
‘게임은 어렵거나 복잡해서는 안되고 누구나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던 고(故) 이와타 사장은 재임 시절 닌텐도DS와 닌텐도Wii를 시장에 내놓아 닌텐도의 제2의 부흥기를 열었다. 도쿄공대 출신의 천재 프로그래머였던 그는 벤처 기업에서 게임을 개발하다 닌텐도에 스카웃돼서 나중에는 닌텐도 창업자 일가가 아닌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사장에 오른다.
이와타 사장 재임 시절, 닌텐도는 삼성의 ‘창조 경영’의 본보기가 되기도 했다. (당시 삼성측의 설명) 2009년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는 최고경영진과 함께 일본 출장길에 올라 이와타 사장을 면담하기도 했다.
삼성
남자의 ‘3대 꿈의 직업’이 프로야구 감독, 영화 감독, 함장(또는 지휘자)이라면, 집안 살림을 거덜내는 남자의 ‘3대 취미’는 자동차와 카메라, 오디오다. 흥미롭게도 이 세 분야 모두 삼성이 한때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겠다며 발을 들여 놓았던 분야다. 고(故) 이건희 회장의 재임 시절의 일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건희 회장은 다양한 분야의 ‘덕후’였다. 그러다보니 해당 분야의 기업가 수준을 뛰어넘어 전문가 또는 실무자급 지식을 쌓고 있었다. 자동차와 오디오, 카메라 모두 직접 분해하고 조립할 정도의 이해도를 갖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전세계의 자동차 잡지를 구독하고 외국 기술자들도 불러 지식을 얻을 수 있었던 이 회장은 용인에 국내 최초의 레이싱 트랙을 만들어 직접 레이싱을 ‘해봤고’ (자동차 수집가로서 이 회장은 1억원 이상 수입자동차만 124대 보유했고, 그 중에는 페라리도 19대가 있었다고 한다), 70년대부터 일제 ‘미놀타’ 카메라를 수입해 팔던 데서 벗어나 2000년대 이후 삼성 카메라의 이름으로 DSLR과 미러리스 카메라를 출시하며(필자도 -사실상 펜탁스 K10D에 삼성 로고를 붙인- 삼성의 중급기 GX10을 보유했었다) 일본 브랜드들과 경쟁을 시도했다. 2010년 무렵에는 세계 디지털 카메라 시장 점유율에서 3,4위를 다투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에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하이엔드 오디오에도 도전했다. 한남동 집에 오디오룸을 마련해 세계적인 명기들을 분해하고 테스트하던 이 회장은 헤일즈, 마크 레빈슨과 제휴해 1996년 당시 돈으로 3천 만원이 넘는 삼성 하이엔드 오디오 시스템인 ‘엠퍼러’를 내놓았다.
삼성은 이 세 사업 중 자동차와 오디오는 IMF 경제위기 때, 카메라는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뒤에 차례로 철수했다. (갤럭시 스마트폰 카메라에 과거 삼성카메라의 노하우가 전승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 *
《페라리》의 마이클 만 감독은 이 영화를 기획하고 촬영하는 동안 페라리의 본사가 있었던 이탈리아 모데나 시에서 살았다. 복제 자동차를 만들어야 했기에 《페라리》는 제작비가 많이 드는 프로젝트였다. 적당히 타협해서 제작비 규모를 절반 정도로 줄였다면 지난 20여 년 동안 언제든지 이 영화를 크랭크 인 할 수 있었지만, 만 감독은 창의성과 자본, 예술과 비즈니스 사이의 긴장감을 오랫동안 유지했다. 엔초 페라리가 레이싱과 사업 사이에서 그랬듯이.
“하나는 다른 하나에 의존하지만,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를 타협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제대로 만들거나 아예 만들지 않기로 했습니다.”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인터뷰)
결국 만 감독은 자신과 주연배우들의 급여를 삭감해가며 영화를 완성했다.
페라리는 1969년부터 조금씩 이탈리아 최대 재벌인 아녤리 가문의 피아트에 지분을 넘기며 피아트 그룹 산하에 있다가 2015년 분사해 독립 브랜드가 됐다. (소유주는 아녤리 가문) 페라리도 지금은 하이브리도차도 만들고 곧 전동화 모델도 출시한다. 페라리의 영혼이 깃든 레이싱 머신은 머신대로 만든다. 주가도 뉴욕 증시에서 잘 나가고 있다. 지난해 폭스바겐과 포르쉐 주가가 약 30% 빠지는 동안 페라리는 거꾸로 30% 넘게 올랐다. 미국의 증시분석가들은 트럼프 취임으로 유럽 자동차에 고율의 관세가 부과되더라도 페라리는 큰 타격을 입지도 않고, 생산지를 이탈리아 밖으로 옮기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용 상승분을 자동차 가격에 전가할 수 있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브랜드라는 것이다. 소유주는 바뀌었지만 브랜드는 살아남았다.
이건희 회장은 생전에 왜 삼성이 자동차 사업을 계속 하려고 하느냐는 질문에 앞으로는 자동차가 전자 제품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오늘날의 시점에서보면 자동차는 배터리를 얹은 IT 제품이나 마찬가지로 돼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시각은 혜안이 아닐 수 없다.
엔초 페라리, 이와타 사토루, 이건희 세 사람은 각각 자동차 덕후, 레이싱 덕후, 게임 덕후, 프로그래밍 덕후, 카메라 덕후, 오디오 덕후 등이었다. 마니아 출신의 기업가였고 리더였다. 조직의 리더가 돼서도 마니아로서의 초심과 호기심을 버리지 않았다.
장궈강 중국 칭화대 교수는 『자치통감』 해설서에서 지도자는 구체적인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을 맡기고 결과를 평가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에게 필요한 것은 능력이 아니라 권력이라는 요지의 말을 했다. 따라서 다양한 의견을 듣고 지혜를 모아 시시비비를 밝히는 것이 좋은 지도자의 요건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유명하다는 이유로 유명해지는 시대에, 권력자가 됐다는 이유로 권력을 마구 행사하는 시대에, 엔초 페라리, 이와타 사토루, 이건희처럼 능력과 비전, 열정이 있던 리더를 다시 떠올린다.
“자동차 제작자가 반드시 엔지니어나 기술자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는 자동차에 대한 열정을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인간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의 역할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야망을 조율하는 것입니다.
-엔초 페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