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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한 여론 뒤집으려는 말인 줄 알았는데…뒤에서 웃는 시진핑·푸틴" [스프]

김민표 D콘텐츠 제작위원

입력 : 2025.01.17 09:01|수정 : 2025.01.17 09:01

[뉴스페퍼민트] 그린란드와 파나마 운하, 트럼프가 열려는 강대국을 위한 판도라의 상자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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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0117 뉴욕타임스 해설 썸네일
지난 연말, 우리나라 뉴스가 온통 계엄령과 탄핵 관련 소식으로 도배되던 사이,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 2기 행정부를 둘러싸고 나오는 뉴스는 주로 트럼프가 임명한 장관을 비롯한 행정부 주요 인사에 관한 뉴스였습니다.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된 맷 게이츠 전 의원은 과거에 미성년자에게 돈을 주고 성관계를 하고 의회에서 마약을 한 혐의가 불거지면서 거센 논란이 인 끝에 낙마했습니다. 이어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 후보를 둘러싸고도 과거 성폭행 논란과 미국의 군사 정책을 총괄하기엔 부족한 경험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이 '여기서 또 물러서면 민주당에 주도권을 주게 될 것'이라며 헤그세스를 비판하던 공화당 상원의원들을 반은 협박, 반은 설득해 헤그세스는 상원 인사청문회를 거칠 예정입니다.

이 밖에도 크고 작은 논란을 부른 인선에 비판적인 보도가 줄을 이으며 당선과 함께 한껏 들뜬 기대감이 점점 가라앉던 무렵, 트럼프는 대선 유세 중에 언급한 적도 없던 새로운 "미국 우선주의" 이슈를 꺼내 들었습니다. 바로 미국의 영토와 직접적인 영향력을 전 세계에 확장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중국에 높은 관세를 매기겠다는 경고는 입만 열면 해오던 트럼프지만, 정작 가장 먼저 조준사격을 가한 곳은 이웃 캐나다와 멕시코였습니다. 미국에 들어오는 캐나다, 멕시코산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두 나라 정상은 부랴부랴 트럼프에게 협상을 요청했습니다. 지금은 물러나겠다고 밝힌 저스틴 트루도 캐나다 총리가 마러라고를 찾아왔을 때 트럼프는 "캐나다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고 싶어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트럼프가 하는 말 대부분이 그렇듯 얼마나 진지하게 하는 말인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명백한 폭탄선언이었죠.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트럼프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북극권 안에 있는 커다란 얼음 섬으로 덴마크의 자치령인 그린란드를 사들이는 계획에 관심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사들일 수 없다면 무력을 동원해 이 땅을 미국 영향력 아래 두는 방안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린란드에 이어 파나마에 이양했던 파나마 운하의 통제·운영권을 미국이 되찾아오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모두 언급된 나라들의 주권을 침해하는 소지가 다분한 발언이자, 국제법 또는 미국과 다른 나라의 상호 조약을 파기하고 새로 맺어야만 가능한 일이지만, 트럼프는 거침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앞서 말한 2기 행정부 인사들의 갖은 추문 등 자신에게 불리한 뉴스가 쏟아지자, 여론을 환기하려는 의도로 던진 말이라는 분석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한 데는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 정책이 막지 못한 인플레이션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데, 트럼프도 어마어마한 감세를 비롯해 인플레이션을 더 부추기면 부추기지, 가라앉힐 만한 정책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릴 수 있다면 뭐든 할 거라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하나같이 '설마 멀쩡한 남의 나라 땅에다 돈으로 사든 힘으로 빼앗든 갑자기 성조기를 꽂는 게 가능하겠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 전망이었습니다.

정말 얼마나 진지한 제안인지는 트럼프 본인만 알겠지만, 적어도 취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까지 상황으로는 트럼프는 "영토 확장의 꿈"을 물릴 마음이 없어 보입니다. 계속해서 미국이 기여한 바에 비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다거나 이미 다른 불량 국가들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므로, 미국이 통제권을 가져오는 게 낫다는 식의 주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는 "파나마 운하를 중국군이 관리하고 있다"는 것처럼 명백한 가짜 뉴스도 있지만, 장사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봤을 때 기회 요소도 있을 것이고, 힘의 논리를 관철하면 미국이 얻어낼 게 더 많을 거란 현실적인 계산도 있을 겁니다.

당장 캐나다와 멕시코에 관세를 높이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만으로 트럼프는 두 나라와의 새로운 협상 테이블을 미국에 유리하게 차릴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그린란드도 정말 트럼프가 주장하는 대로 살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만약 그렇게 못하더라도 나토(NATO) 회원국인 덴마크를 압박해 유럽 국가들의 방위비 분담금을 올리는 협상의 지렛대로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그러나 트럼프가 언급하는 "영토 확장의 꿈"을 그저 농담이나 협상용 카드로 가벼이 치부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프리드먼은 특히 그린란드를 예로 들며, 미국이 정말 그린란드를 점유하거나 점령하게 된다면 어떤 도미노 효과가 일어날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엄연한 주권을 인정받던 자치령을 미국이 하루아침에 점유하는 걸 가장 반길 나라들은 현재 국제 질서에 어떻게든 균열을 내고 싶어 하는 또 다른 강대국들입니다. 당장 대만을 통일해 '하나의 중국'이란 과업을 완수해야만 하는 시진핑 중국 주석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어떻게든 유리하게 마무리하고 싶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겐 트럼프의 발언이 더없이 반가울 겁니다.

미국이 그린란드와 내세울 수 있는 관계나 점유의 타당성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중국과 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하나가 되는 게 훨씬 덜 억지스러워 보일 수 있습니다. 대만을 무력으로 침공하면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이 대만을 어디까지 지켜줄지, 그래서 중국이 어느 정도 희생을 치러야 할지 골치 아프게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던 시진핑 주석이나, 직접적인 참전만 하지 않을 뿐 나토 회원국과 동맹국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계속해서 무기를 지원하던 미국 때문에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져 힘들어하던 푸틴 대통령에겐 트럼프가 바이든을 꺾은 것만으로도 좋던 차에 겹경사가 난 셈입니다.
 

강대국만을 위한 질서 대비해야

트럼프가 말하는 "미국 우선주의"는 결국, 미국이 힘에 걸맞은 대우를 받고 더 큰 번영을 독점적으로 누리겠다는 계획입니다. 이미 첫 번째 임기 때 이런 기조를 바탕으로 한 트럼프의 외교 정책에 국제 질서가 재편될 조짐이 있었죠. 바이든 대통령이 냉전 시대의 동맹을 복원해 다시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했지만, 다시 돌아온 트럼프는 동맹과도 이익을 공유할 생각이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맹에 균열이 생기는 걸 누구보다 반길 중국과 러시아로서는 쾌재가 절로 날 겁니다.

강대국이 원하는 걸 제지받지 않고 손에 넣을 수 있는 국제 질서는 당연히 우리나라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칩니다. 당장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등 유사시에 우리가 전쟁에 휘말리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고, 이미 러시아 편에 서서 군인을 파병, 참전한 북한과 우크라이나에 간접적으로 무기를 지원한 우리나라 사이에도 분쟁이 일어날 위험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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