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 내 빌런 고발부터 직장 내 괴롭힘 상담까지! 직장생활의 모든 것, 대나무슾에 털어놔 봅시다!
Q. 주변 사람들로부터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직장에서 힘든 일을 당한 동료들을 대할 때, 다른 사람들처럼 깊게 공감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저 스스로도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친척이나 지인의 장례식장에서도 솔직히 눈물이 날 만큼 슬프지 않아요. 참사를 당한 유가족의 사연을 TV나 라디오를 통해 접할 때도 안타깝고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함께 울어주지는 못합니다. 이런 저는 사이코패스인가요?
A. 사람들은 시대적 화두는 변해도 변치 않은 인간이 지녀야 할 가치는 공감이라고 믿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관계주의적 문화에서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단순한 성격적 특성이 아니라, 결함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밈인 "너 T야?"는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에게 던지는 비난 섞인 표현입니다.
1. 평가된 정서적 공감, 과소 평가된 인지적 공감
물론 공감은 중요하지만, 부정적 측면도 큽니다. 예일대학교 심리학과 폴 블룸(Paul Bloom) 교수는 <공감의 배신>에서 공감은 어리석은 판단을 이끌어내고 무관심과 잔인함을 유발하며, 친구, 부모, 남편, 아내로서 역할을 더 어렵게 만든다고 주장합니다. 만약 당신이 깊이 공감하고 있는 한 아이를 죽게 할 것인지, 이름도 모르는 20명의 아이들을 죽게 할 것인지 선택하는 상황에 있다면, 당신의 공감은 1명을 살리는 쪽을 선택하게 할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하마스의 이스라엘 침공 시, 이스라엘의 피해자에 공감할수록 가해자를 더 잔혹하게 처단하는 것에 동조할 것입니다. 공감은 공정성을 해치고 폭력을 옹호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많은 심리학자들은 정서적 공감(affective empathy)은 줄이고, 인지적 공감(cognitive empathy)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인지적 공감은 추론입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 감정, 관점을 이해하고 인식하는 능력입니다. 상대의 감정을 똑같이 느끼지 않더라도 감정 상태를 추론할 수 있습니다.
실제 정서적 공감과 인지적 공감은 전혀 다른 심리적 과정으로 각각을 관장하는 뇌 부위도 다릅니다. 인지적 공감은 대뇌피질의 보다 바깥쪽에서 정서적 공감은 보다 안쪽에서 작용합니다. 사이코패스의 제1 특성이 공감 능력 결핍인데, 이때의 공감은 정서적 공감입니다. 아래 그림과 같이 사이코패스의 뇌는 공감 장면에서 뇌 안쪽이 활성화되지 않습니다. 사이코패스는 인지적 공감에는 문제가 없지만, 정서적 공감에 선천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사이코패스의 뇌 사진은 우리의 착각을 유발합니다. 정서적 공감은 좋은 것, 인지적 공감만은 나쁜 것 같은 생각을 들게 합니다. 하지만, 사이코패스가 정서적 공감 능력 결핍 때문에 흉악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제2, 제3 특성인 자제력 부족, 공격성이 범죄와 관련이 높습니다. 정서적 공감이 부족하다고 타인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정서적 공감 부족이 공격성을 설명하는 비율은 단 1%에 불과합니다(Vachon, D. D., Lynam, D. R., & Johnson, J. A. (2014). The (non) relation between empathy and aggression: surprising results from a meta-analysis. Psychological bulletin, 140(3), 751.).
사실, 우리 사회에서 정서적 공감의 부족으로 야기되는 문제는 의외로 심각하지 않습니다. 알고 보면 정서적 공감은 장점이 많다기보다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약점이 더 많습니다. 정서적 공감 능력이 지나치게 높은 의사는 환자의 고통이 염려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합니다. 정신과 의사가 환자의 우울과 불안을 그대로 느끼면 엉뚱한 처방을 하기 쉽습니다. 자녀에게 정서적 공감을 강하게 느낀 부모는 훈육에 실패합니다. 리더가 구성원들에 대해 더 많이 공감할수록 실제로 그들에 대해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안다고 착각할 가능성이 높습니다(Eyal, T., Steffel, M., & Epley, N. (2018). Perspective mistaking: Accurately understanding the mind of another requires getting perspective, not taking perspectiv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14(4), 547.).
무엇보다 정서적 공감 능력이 높다고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이 높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반면에 인지적 공감과 연민은 상대의 상태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고 현실적인 도움을 줍니다. 그렇다고 제가 정서적 공감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서적 공감의 장점은 우리의 예측만큼 크지 않은데 과대평가되고, 인지적 공감의 장점은 지나치게 과소평가됐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래서 공감적 경청 스킬보다 인지적 공감 스킬 개발에 더 힘을 써야 합니다.
인지적 공감을 잘하는 사람들의 스킬이 바로 질문입니다. 정서적 공감으로는 상대가 진정으로 느끼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공감이 잘됐다고 믿을수록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다른 사람의 진짜 의도와 감정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질문이 필수적입니다. 꼭 해당 주제에 관한 질문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분야에 걸쳐 상대에게 질문하는 것은 상대의 진짜 의중을 잘 예측하도록 돕습니다. 예를 들어, 정치적 견해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꼭 정치 성향을 물을 필요 없이 좋아하는 영화나 작가를 묻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결국, 다방면에 걸쳐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상대의 느낌, 감정, 선호 등을 더 잘 파악할 수 있습니다.
2. 공감에는 공감 피로가 따른다
심리학이 밝혀낸 공감에 대한 중요한 사실은 공감이 제한된 자원이기 때문에 무한정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일정 수준 이상 공감이라는 자원을 쓰고 나면 피로감을 느끼게 됩니다. 게다가 정서적 공감은 인지적 공감에 비해 에너지 소모가 큽니다. 심리적 자원의 특징은 신체적, 정서적, 인지적 자원의 원천이 같다는 것입니다. 마치 거대한 충전기가 있는데 TV를 볼 때도, 냉난방기를 켤 때도, 세탁기를 돌릴 때에도 같은 충전기를 쓴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신체적, 인지적으로 자원을 소진하고 나면 정서적 자원을 쓸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어느 순간 쉽게 짜증 내고 버럭 하는 이유는 성격적 결함보다는 몸은 지쳐있고, 고민거리는 쌓여있기 때문입니다.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들이 가장 까칠해지는 시기가 언제일까요? 인턴을 수료하고 레지던트 과정에 접어들 때입니다. 이때, 의사들은 감정이 완전히 소진되고 환자들을 물건처럼 대하기 시작합니다. 전체 의사 중에 대략 60% 정도가 이러한 공감 피로(compassion fatigue)를 호소합니다(Bloom, P. (2017). Against empathy: The case for rational compassion. Random House.). 만약 당신이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면, 공감 능력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인지적으로 잡다한 고민에 시달리지 않은지 반드시 점검해야 합니다.
공감 피로의 증상은 스트레스 반응과 매우 유사합니다. 당신이 누군가에 정서적, 인지적으로 지나치게 공감해 자원이 고갈될수록 기억력은 떨어지고 공포와 슬픔, 분노가 늘고 의욕은 떨어지며 소화도 안되고 불면증에 시달릴 확률이 크게 높아집니다. 심리학자들은 공감 피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타인과 미디어로부터 떨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합니다. 퇴근 후 유튜브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헤매는 것은 자원 확보가 아니라 자원 소진의 지름길입니다.
처방전
1. 공감보다 인지적 공감 능력을 높여라
인지적 공감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질문의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질문을 잘하기 위해서는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업무 외 다방면에 걸쳐 질문을 해보고 응답의 질과 양을 따져본 후에 해당 질문을 바꿀지 유지할지 결정하면 됩니다. 유퀴즈와 같은 TV 프로그램의 진행자의 질문도 좋은 참고가 될 수 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