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정치적 인간의 우화] 어째서 간사한 자들이 득세하는가 (글 : 양선희 소설가)
#1
"나는 충성스러운 믿음으로 윗분을 대하고, 공로를 쌓아 안위를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는 시각장애인이 흑백을 알고 싶어 하는 것처럼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바른 이치를 행하고 부귀를 쫓지 않고 봉사하면서 나의 안위를 구하라는 것은 청각장애인이 맑은 소리와 탁한 소리를 구분하려고 하는 것과 같으니 더욱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두 가지로 안위를 구할 수 없는데 내가 어떻게 간사함으로써 힘 있는 자들의 무리에 가담하지 않겠는가."
#2
"나는 청렴하게 봉사하여 안전함을 구하려 했다. 그러나 이는 마치 컴퍼스나 자도 없이 원과 네모를 그리라는 것처럼 결과를 기대할 것이 없다. 법을 지키고 붕당을 이루지 않고 업무에 매진해 안전을 구하려 해도, 이는 마치 말로 정수리를 긁으려는 것처럼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두 가지로 내가 안전할 수 없는데 내가 법을 폐하고 세도가에 빌붙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는가."
#3
간신이란 주인의 속마음을 그대로 따라 신임과 총애를 받아 권세를 누리려는 자들이다. 이런 신하들은 군주가 좋아하는 사람은 칭찬하고, 군주가 미워하는 자를 헐뜯는다. 대체로 사람이란 좋아하고 싫어하는 취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서로 인정해 주고, 다를 경우는 서로 피하게 되는 것이다.
신하가 칭찬하는 사람을 군주도 인정하는 것을 동취(同取)라 하고, 신하가 비방하는 자를 군주도 물리치면 이를 동사(同舍)라고 한다. 이렇게 취사가 같은 데 서로 반목할 수 있을까. 아직 그런 걸 보지 못했다. 이것이 신하 된 자들이 신임과 총애를 받는 방법이다.
간신들은 믿음과 총애의 힘을 얻고서 타자를 헐뜯거나 칭찬하고 그 진퇴를 제멋대로 한다.
그런데도 군주는 법술로 이를 통제하거나 증거를 찾아 심판하지도 못한다. 예전에 자기 의견과 같았다는 것으로 지금 하는 말도 그저 믿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총애받는 신하가 군주를 속여서 사심을 성취하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주인은 반드시 윗자리에 앉아서 속고, 신하는 반드시 아랫자리에서 권세를 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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