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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약은 어쩌다 '공부 잘하는 약'이 됐을까 [스프]

박수진 기자

입력 : 2024.11.29 09:01|수정 : 2024.11.29 09:01

[뉴스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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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편화된 뉴스는 이제 그만, 이슈의 맥락을 읽는 재미를 담았습니다.
 
 
#체스 천재에겐 비밀이 있었다. 녹색 알약을 먹고 눈을 감으면 체스판이 펼쳐지고 천재는 그 환상 속 체스판에서 자신의 기술을 익힌다. 하지만 성공 가도를 달릴수록 불안과 스트레스는 더 커지고, 승부에 집착할수록 녹색 알약은 한 알에서 수십 알, 수백 알로 늘어난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작가 지망생의 인생에도 투명한 알약이 등장한다.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인생의 끝자락에서 이 약을 먹은 그는 자신의 뇌를 100% 가동하기 시작한다. 주식을 잘해 백만장자가 되고, 정계에 진출해 유명 정치인이 되기도 한다.

눈치챘겠지만 둘 다 가상의 이야기다. 넷플릭스 시리즈 <퀸스 갬빗>의 주인공은 고아원에서 강제로 주던 신경안정제를 과다 복용하며 환영을 보게 된다. 이 영화에서 녹색 알약의 이름은 '잔졸람'. 세상엔 없는 약이다. 영화 <리미트리스>에 나오는 작가 지망생은 뇌를 100% 가동시켜 준다는 'NZT'라는 알약을 먹는다. 이 또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약이다. 주인공들에게 약은 신천지를 선사해 주는 것 같았지만 결국은 자신의 인생을 지배하고 더 큰 위기로 몰아넣는 '위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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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영화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 알려진 약이 있다. 바로 애더럴(adderall)이다. 애더럴은 미국에서 주의력결핍과다행동장애(ADHD)나 기면증 치료에 주로 사용된다. 과거에는 우울증 치료제, 월경증후군 치료제 등으로 지금보다 쉽게 처방이 되기도 했지만 오남용 및 중독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현재는 통제 약물(2급 약물)로 분류돼 있다. 애더럴의 주성분은 마약류로 분류되는 암페타민이다. 국내에선 반입, 유통이 모두 금지돼 있다.
 

미국에서 먼저 시작된 '공부 잘하는 약' 열풍

암페타민 남용의 문제는 미국 사회에서 1930년대부터 이어져 왔지만 미국 대학생들 사이에서 소위 '공부 잘하는 약', '집중 잘 되는 약'으로 인기몰이를 시작한 건 2000년대 초반부터다. '애더럴'은 미국에서 '대학생 전용 마약'이라고 불리며 ADHD 치료와는 무관하게 소비돼 왔다. 2018년에는 미국 사회의 이런 문제를 지적하는 <Take your pills>라는 다큐멘터리도 등장했는데, 이 다큐멘터리에 나온 한 미국 대학생은 "예쁘고 공부 잘하고 싶으면 이 약을 먹으면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학생들이 페이스북이나 SNS에서 불법으로 애더럴을 사고파는 모습도 다큐멘터리에 담겼는데, 현재 국내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ADHD 치료제 오남용과 불법 거래 모습과 흡사하다.

애더럴이 불법인 국내에선 그 자리를 다른 성분의 ADHD 치료제가 채우고 있다. 콘서타, 페니드, 메디키넷 등인데 모두 '메틸페니데이트' 성분이다. 암페타민과 성분적으로는 차이가 있지만 각성 효과가 나타나는 특징은 같다. 1944년 스위스에서 최초로 합성된 후 1950년대부터 기면증, 만성피로 등을 치료하는 각성제로 쓰였다. ADHD 치료제로 처방되기 시작한 건 1960년대 미국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언급한 애더럴 만큼은 아니지만 메틸페니데이트도 미국에선 '스터디 드러그(Study drug)'라고 불리며 집중력을 높여주는 약으로 유명하다.
 

프로포폴, 졸피뎀 제친 메틸페니데이트... 절반은 10대

미국에서 ADHD 치료제가 '대학생의 마약'으로 소비돼 왔다면 국내에선 10대들이 주 소비층이다. 단기간에 집중력을 높여준다는 잘못된 소문이 퍼지면서 시험을 앞둔 청소년들이 보조제처럼 이 약을 먹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 실제 메틸페니데이트 처방 통계를 봐도 이런 경향은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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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식약처가 관리하고 있는 의료용 마약류는 효능별로 진통제, 항불안제, 최면진정제, 마취제, 식욕억제제, 진해제, 항뇌전증제, ADHD 치료제로 분류된다. ADHD 치료제의 비중은 이 중 가장 적지만 처방량 증가세는 가장 뚜렷하다. 2022년 ADHD 치료제는 7,312만 정이 처방됐는데 3년 전과 비교해 28.4% 증가했다. 같은 기간 처방량이 증가한 최면진정제(3.1%), 마취제(4%), 항뇌전증제(6.7%)와 비교해 봐도 증가세가 단연 높다.

성분별로 봐도, 졸피뎀이나 프로포폴의 경우 지난해 처방량과 처방 환자 증가율이 전년 대비 6% 이하에 머물렀고, 펜타닐 패치는 관리 감독이 강화되면서 처방량이나 처방 환자가 오히려 7~8% 감소했다. 하지만 메틸페니데이트는 환자 수, 처방량 모두 각각 27%, 28% 증가했다. 메틸페니데이트가 다른 의료용 마약류에 비해 처방 증가세가 뚜렷한 주요 원인은 예상대로 10대다. 올해 1~8월 처방 환자 28만여 명 중 13만여 명이 10대였다. 45%에 달한다. 다른 의료용 마약류가 중증 질환 비율이 높은 고령층을 대상으로 많이 처방되는 점과 비교하면 뚜렷한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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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 효과는 학습 능력 향상이 아니다

ADHD 치료제는 어쩌다 공부 잘하는 약이란 오해를 받게 됐을까. 전문가들은 약물 복용 후 나타나는 각성 효과를 학습 능력이 향상된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ADHD가 왜 발병하는지 '병인'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뇌의 신경전달물질 중 각성과 흥분을 일으키는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등이 잘 분비되지 않는 것이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다. 집중력과 의욕이 저하되는 것. ADHD 환자들이 주의 집중이 안 되거나, 산만한 모습을 보이거나, 할 일을 잘 마무리하지 못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ADHD 치료제는 강제로 도파민 등의 흥분 물질을 분비시켜 준다. 인위적으로 흥분감과 행복감을 만들어주는 셈이다. 뇌에 흥분 자극이 더해지니 감정이 긍정적으로 변하게 되고, 공부든 일이든 좀 더 집중이 잘 되고 수월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뇌 전달물질이 부족한 ADHD 환자들에게는 치료가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비 ADHD 환자)에겐 지나친 자극이 된다. 과한 자극은 중독과 뇌세포 손상의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ADHD 환자가 아닌 사람이 ADHD 치료제를 복용할 경우 오히려 작업 생산성이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호주 멜버른대학 신경과 연구팀은 ADHD 환자가 아닌 성인 40명에게 일주일 간격으로 총 4회에 걸쳐 ADHD 치료제 3종류(메틸페니데이트, 덱스트로암페타민, 모다피닐)와 위약(플라시보)을 먹도록 했다. 참가자들은 약물을 먹은 후 미션을 수행했는데, <배낭의 무게를 유지하며 최대한 비싼 물건을 담도록 하는 것>이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ADHD 치료제를 복용했을 때 ▲문제를 푸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렸고 ▲배낭에 물건을 넣거나 빼는 행동을 더 많이 반복한 걸로 나타났다. 또 ▲위약을 먹었을 때 평균 이상의 성과를 보였던 참가자들이 ADHD 치료제를 복용한 후엔 평균 이하로 성과가 하락하는 모습도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 실험을 토대로 ADHD 치료제가 동기 부여를 강화하긴 했지만 노력 대비 성과 개선 효과가 제한적이었다며 "결국 문제 해결의 품질은 낮아졌다"고 결론내렸다. ADHD 치료제를 먹었다고 해서 작업 결과물이 좋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치료제 복용 후 각성 증상이 나타날 수는 있지만 이게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청소년기 잘못된 사용이 장애를 촉발한다

전문가들은 ADHD 치료제 남용의 부작용도 경고하고 있다. 비질환자가 약물을 과도하게 복용할 경우 두통, 불면증, 식욕 감소 등의 가벼운 부작용은 물론 환각, 망상, 극심하게는 자살 시도도 나타날 수 있다.

메틸페니데이트가 의료용 마약류로 분류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중독의 위험성이다.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에서 메틸페니데이트는 '오남용 우려가 심하고 제한적 의료용으로 쓰이며 심한 신체적 또는 정신적 의존성을 일으키는 약물'로 분류돼 있다. 국제질병통계분류(ICD-10) 기준으로도 메틸페니데이트는 '남용의 잠재성이 있는 정신자극제에 의한 중독'에 해당하는데 불법 마약인 메스암페타민(필로폰)도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중독과 오남용의 우려 때문에 식약처는 메틸페니데이트를 하루 최대 60mg(소아 청소년 기준), 1회 처방 시 3개월 이내로만 처방하도록 하고 있다. 의사의 정확한 진단과 제한된 용량 안에서만 처방을 하도록 하는 조치다.

ADHD 환자가 아닌 청소년이 학습 능력 향상 등을 목적으로 약물을 남용했을 경우(비의료적 사용자)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학업 성취가 낮아졌다는 연구도 있다. 2017년 미시간대학교 약물남용센터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미국 고등학생(18세) 8,362명을 35세까지 추적 관찰한 결과 청소년기에 약물을 오남용한 그룹이 대학 학위를 취득할 가능성이 오남용 경험이 없는 비교군에 비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성인이 돼서도 더 많은 약물 사용 장애(SUD)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기도 했다. 이에 반해 ADHD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한 그룹(의료적 사용자)은 ADHD 진단을 받지 않은 학생들과 비교해 봐도 학업 성취 등의 면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

이 연구를 전제로 보면 오히려 ADHD여도 의사의 진료 하에 잘 치료를 받으면 학업 성취나 성인이 된 이후의 삶에도 큰 영향이 없지만, ADHD가 아닌데도 약을 지속 복용하는 경우 장기적인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청소년기 잘못된 사용이 장애를 촉발할 수 있단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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