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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시작됐다…트럼프 2기에 대한 소름 끼칠 만큼 정확한 예언" [스프]

심영구 기자

입력 : 2024.11.22 09:01|수정 : 2024.11.22 09:01

[뉴욕타임스 칼럼] This Is the Dark, Unspoken Promise of Trump's Return, by M. Gessen


1122 뉴욕타임스 번역
 

* 마샤 게센은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칼럼니스트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미국인이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이에게 투표했는지 의아해하는 분들이 많을 거다. 그런 분들에게 발린트 마자르는 꽤 일리 있는 설명을 제시한다.
 
"민주주의는 문제를 풀지는 못하면서 도덕적인 제약만 잔뜩 제공합니다. 변하는 건 없는데, 지켜야 하는 규정만 여기저기 자꾸 늘어나죠. 반면 포퓰리즘은 도덕적으로 아무런 거리낌 없이 문제를 푸는 데만 집중하는 약속의 집합입니다."

전제 정치, 독재를 연구하는 학자 마자르는 도널드 트럼프를 파시스트라고 부르는 게 옳은지 아닌지에는 관심이 없다. 마자르가 보기엔 트럼프 당선인이 유권자들에게 어필한 매력은 좀 더 원초적인 것이다.
 
"트럼프는 당신에게 '다른 사람을 배려하거나, 심지어 고려할 필요조차 없는 세상'을 약속했어요."

전 세계적으로 포퓰리즘으로 무장한 독재자들은 이 원초적인 약속을 미끼 삼아 얻은 권력으로 온 나라를 자신의 독단적인 의지를 관철해 다스리는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블라디미르 푸틴과 빅토르 오르반은 남성이 사회의 주인이던 단순하고 질서 정연한 과거를 복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들은 권력을 손에 쥔 뒤에는 사회적인 억제 기제를 잇달아 제거했고, 집단 안에서 불만이 쌓이는 걸 방조했다. 이어 사람들이 그 불만을 다양한 타인에게, 특히 자신을 대변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집단을 향해 쏟아내도록 부추겼다. 마자르는 이를 "도덕적인 제약 없는 집단 이기주의"라고 부른다.

트럼프의 첫 번째 임기와 선거에서 패한 뒤 지금까지의 4년을 살펴보면, 푸틴과 오르반이 집권한 뒤 초기 행보와 닮은 부분이 많다. 마자르의 이론을 통해 이들의 행보를 자세히 살펴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가 어떻게 흘러갈지도 소름 끼칠 만큼 정확히 예측해 볼 수 있다.

나는 트럼프가 재선에 출마할 거라고 확신한 지난 2021년 늦겨울, 마자르에게 전화를 걸어 이 패턴에 관해 자세히 물었다. 헝가리 사람인 마자르는 오르반의 독재 정치와 독재자 오르반의 특징을 폭넓게 연구해 왔다.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오르반도 앞서 2002년 선거에서 패배, 권좌에서 쫓겨난 적이 있다. 오르반 지지자들은 당시 선거가 부정 선거였다고 믿는다. 그는 8년이 지나서야 다시 총리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 사이 오르반은 헝가리 사람들을 대표하고 대변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인과 정당은 자신과 자신의 정당뿐이라며 세력을 다졌다. 이 주장은 당시 여당은 부당한 방법으로 권력을 차지했고, 그런 여당을 지지하는 사람은 헝가리 국민 자격이 없다는 논리로 이어졌다.

2010년 선거에서 승리해 총리직에 복귀한 오르반은 마자르가 "독재적 돌파구"라고 부른 일련의 조치를 단행한다. 우선 여러 법과 관행을 뜯어고쳐 자신이 다시는 권좌에서 쫓겨나지 않을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오르반의 정당이 의회에서 단독 과반을 차지한 덕분에 수월하게 법을 바꿀 수 있었다.

트럼프가 보인 지난 4년의 행보도 비슷하다. 트럼프는 바이든은 부정 선거 덕분에 대통령이 됐다고 끊임없이 공격했으며, 미국인의 진정한 대변인은 오직 자기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번 선거에서 미국 유권자는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았을 뿐 아니라, 트럼프의 정당인 공화당에 상원과 하원 다수당 지위를 안겨줬다. 트럼프는 이제 얼마든지 자신이 바라는 대로 미국 정부를 재편할 수 있게 됐다.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은 사법부, 언론, 대학, 비영리단체, 특정 종교단체 등 시민으로서 서로 지켜야 할 책무를 규정하고 부과하려는 시민단체, 기관, 제도를 향해 어마어마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오르반이나 푸틴과 같은 독재자들이 거부하고 제거하려던 것이 바로 이러한 숙고의 과정과 절차다. 전제 정치에서는 사람들에게 그런 책무를 지울 수 있는 건 오직 독재자만 누릴 수 있는 권리여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오르반과 푸틴, 그리고 트럼프의 첫 임기 때 행보가 시사하는 바가 있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 돌아가자마자 자기가 보기에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해고하고, 아예 그런 일자리를 없애는 일부터 시작할 것이다. 각종 전문가, 규제 기관에서 일하는 여러 공무원이 두루 포함될 텐데, 예를 들어 미국에 망명을 신청한 이들을 심사하는 망명 심사관이 가장 먼저 없어질 보직, 기관 중 하나다.

정부 말고 또 다른 공격 대상은 대학이다. (마자르의 모교이기도 한) 헝가리 중앙유럽대학은 최고 수준의 연구 대학이자, 훌륭한 고등교육기관이었다. 그러나 오르반 총리는 대학교의 주요 시설, 기능을 헝가리 밖으로 쫓아냈다. 미국 공립대학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다면, 플로리다주에서 일어난 일을 예고편으로 보면 된다. 론 드산티스 주지사는 주립대학교 시스템을 주정부가 하나부터 열까지 통제하고 관리하는 사실상의 정부 기관으로 만들어버렸다.

마가(MAGA) 운동은 한술 더 떠 사립대학교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가장 최근에는 캠퍼스 내 반유대주의를 문제 삼으며 의회에서 잇달아 청문회를 열어 대학교를 압박했다. 순전히 청문회 때문이라고 볼 순 없지만, 주요 대학교 총장 6명이 청문회 전후로 총장직을 내려놓거나 사실상 해고됐다. 이제 공격 목표는 사립대학이 받는 연방정부의 교육 보조금과 세제 혜택으로 옮겨갈 거다. 이런 재정적 압박은 규모가 크고 부유한 명문 대학이라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문을 닫는 학과나 부처가 생기면서 자연히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고, 규모가 작은 인문계 대학들은 파산해 아예 문을 닫게 될지도 모른다.

시민사회단체도 주요 타깃이 될 것이다. 특히 이민자, 과거에 수감됐던 이들, 성소수자, 여성 및 취약계층을 보호하거나 지원하고 옹호하는 단체들이 우선 공격 대상이 된다. 그러고는 노동조합을 조준할 수도 있다.

뉴욕타임스의 A.G. 설즈버거 발행인은 워싱턴포스트에 쓴 기명 칼럼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언론과의 전쟁을 어떻게 벌일지 몇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거기에 내 예상을 보태자면, 오르반이 했듯, 또 트럼프 본인이 첫 임기 때 했던 방식을 답습하는 거다. 즉, 트럼프는 자신에게 충성하는 언론에만 기삿거리를 제공하는 등의 특권을 주고, 반대로 자신에게 비판적인 논조를 고집하는 언론은 소유주의 다른 사업을 못살게 구는 식으로 배척할 것이다. 이 전략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이미 트럼프가 재선되기도 전에 입증됐다. LA 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의 억만장자 소유주는 신문사가 대통령 후보를 공개 지지하는 관행에 따라 써놓은 칼럼의 발행을 막판에 가로막았다. (두 신문사를 소유한 패트릭 순숑과 제프 베조스는 트럼프에게 밉보이지 않으려고 내린 결정이라는 비판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며 선을 그었다.)
 
***

물론 카멀라 해리스 캠프는 선거 내내 미국인에게 이 점을 경고하려고 애를 썼다. 아예 선거 막판에는 트럼프에게 파시스트 딱지를 붙이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그러나 마자르는 트럼프를 이념에 따라 움직이는 파시스트로 분류하는 건 정확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폴란드의 총리를 지낸 야로스와프 카친스키는 임신 중절을 사실상 전면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려 했다. 심지어 임신 중절 금지 정책을 고집하다간 선거에서 패해 총리직을 내려놓아야 할 거라는 점이 여론조사 결과에서 분명히 드러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다르다. 임신중절권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면 환호받을 만한 데 가면 열심히 그 얘기를 하다가도 반대로 견해가 다른 이들 앞에서 말할 때는 자신이 임신과 출산에 관한 권리를 지키는 데 앞장서 온 사람이라고 말을 바꾼다.

나는 마자르의 이런 분류에 동의할 수 없었다. 조지 오웰의 공식을 빌리자면, 정치인의 얼굴은 이데올로기란 가면에 맞춰 변하기 마련이다. 이 점이 분명히 나타나는 정치인이 바로 블라디미르 푸틴이다. 한때 푸틴은 정치적 신념, 이데올로기와는 거리가 먼 냉소주의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이 만들어낸 (일관성은 없지만) 괴상한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끔찍한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또한, 20세기 유럽에 등장했던 파시스트들이 일관된 이데올로기에 따라 움직였다는 주장은 사실 시간이 흐른 뒤에 꿰맞춰진 측면이 강하다. 당대의 언론과 학자들은 파시스트들의 신념이 주먹구구식이라고 표현했다. "파시즘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란 책을 쓴 예일대학교의 철학자 제이슨 스탠리는 파시스트를 정치적인 신념보다 실제 정치 행위를 토대로 정의, 분류하는 게 더 정확하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실제 정치 행위란 예를 들어 공포를 조장해 타자를 향한 증오를 부추기는 것, 우리가 저들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부각하는 행위 등이다. 이 모든 게 정확히 트럼프가 하는 일 아닌가?

나는 이 사실을 마자르에게 얘기하며 반론을 폈지만, 마자르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트럼프 일가가 대통령직을 이용해 챙기려는 어마어마한 이윤과 혜택을 언급했다. 파시스트라면 그러지 않으리란 거다.
 
"예를 들어 독일의 나치는 유대인에게서 압류한 재산을 자기 잇속을 챙기는 데 쓰지 않았어요. 모든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켰죠."

(물론 나치 당원 중에는 그 과정에서 개인적인 잇속을 챙긴 이가 많았다. 그러나 개인의 부를 증식하는 건 나치가 편 국가사회주의 운동의 주된 목적이 아니었다.)

반면 오르반은 엄청난 부자로 알려졌고, 푸틴도 현재 러시아 최고 부자가 됐다는 소문이 있다. 트럼프가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되려면 일론 머스크나 제프 베조스보다 더 많은 자본을 모아야 하는데, 이는 불가능해 보인다. 푸틴은 자신의 지지자 가운데 부자들을 갈취했고, 정적들의 재산은 더 노골적으로 빼앗아 자기 배를 불렸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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