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현대인들의 일상 속에서 자신을 돌보는 잠깐의 '틈'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마음을 돌보는 일상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합니다. 성인 4만 4천 명을 상담했던 장재열 상담가가 자신의 삶에서 소진을 겪었던 전문가를 만나 일상 속 멈춤과 쉼의 비결에 대해 묻습니다.
인터뷰어 : 장재열 (상담가 겸 작가, 월간 마음건강 편집장)
인터뷰이 : 김태술 (전 국가대표 농구선수, '빈틈의 위로' 저자)
여러분의 삶에서 가장 최고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지금일 수도, 아직 오지 않았을 수도, 어쩌면 지나가 버린 게 아닐지 씁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답변 대신 이렇게 되묻겠지요. "아니, 최고의 순간을 꼽는 기준이 뭔가요?" 여러분 생각은 어떠세요? 가장 큰 성취가 있었던 순간일까요? 아니면 가장 근심·걱정 없었던 시절일까요? 아직 정확하게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오늘의 초대 손님과 함께 이야기 나누어보세요. 대화 속에서 작은 힌트를 발견하게 될 겁니다.
세상의 시선에서 가장 최고의 순간으로 보였던 시기에 가장 어두운 마음의 터널을 지나야 했던 사람, 전 농구 국가대표이자 지금은 방송인으로, 그리고 작가로 삶의 새로운 여정을 떠나고 있는 김태술 님을 만나봤습니다.
장재열 (이하 장)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김태술 (이하 김) : 안녕하세요. 신인 작가로 데뷔한 김태술입니다. (웃음)
장 :저는 번아웃을 연구해 온 상담가다 보니 관련 서적을 많이 읽게 되거든요. 그런데 김태술이라는 사람이 그 농구선수 김태술이라는 걸 모르고 책을 접하게 되었는데... 글 잘 쓰시던데요? 아주 솔직하게 자신의 내면에 대해 말씀하시더라고요.
김 : 감사합니다. 사실 선수 시절에 글을 써본 적은 없는데, 은퇴 이후에 블로그를 꾸준히 해 왔는데 재미있더라고요. 모든 게 저한테는 새로운 경험이기도 하고요.
장 : 은퇴 후에도 새로운 경험을 하며 바쁘게 지내시나 봐요.
김 : 아뇨 저는 완벽하게 잘 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 : 완벽하게 잘 쉰다는 것, 어떤 의미죠?
김 : 선수 때는 아무래도 계속 1등을 해야 하고, 이겨야 하고, 상대를 누르지 않으면 내가 제압되었기 때문에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은퇴하고 나서 삶의 목표를 새롭게 설정해야 하잖아요. 그때 생각한 게 나는 한 길을 오래 파 온 건 해보았으니, 은퇴 후에 보편적으로 가는 코스로 직행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해보자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내가 안 해본 경험이 뭐가 있을까 쭉 생각하다 보니까 '무언가를 안 하는 것'도 그 다양한 경험 중에 하나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제가 21년에 은퇴를 했으니까, 이제 3년이 되었는데요. 21년부터 세상을 새롭게 경험해 나가고 있어요. 아무것도 안 하기를 포함해서 예능 출연도 해보고, 블로그 글도 써보고, 해설위원도 하면서 조금씩 '사람 김태술'을 알아가게 되고, 행복도가 높아져 가더라고요. 그래서 때로는 저는 제가 이제 3살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3살 아이는 모든 것이 궁금하고 신기하잖아요.
장 : 제가 상담을 하면서 운동선수나 연예인처럼 아주 어릴 때부터 오래 한 길만 걸어온 분들, 또는 은퇴한 중장년분들을 뵈면 무한정 시간이 주어졌을 때 "공포스럽다"라는 분들도 종종 계신단 말이죠. 태술 님은 그런 막막함이 없었나요? 어땠어요?
김 : 저는 오히려 선수 시절에 쉬는 시간이 주어지면 막막했어요. 왜냐하면 저를 포함해서 적지 않은 선수가 쉬는 방법을 모르거든요. 쉬는 시간이 주어지면 오전 운동 끝나고 나가서 한잔하고 다음 날은 푹 퍼져 있다가, 오후에는 다시 연습하러 나가고 그런 패턴이 반복되는 경우도 많아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내가 정말 쉴 수 있는 공간은 어디고, 내가 진짜 편안함을 느끼는 행위는 뭔지 알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인지 저는 어느 순간부터 은퇴 후에 이 일에서 파생되는 경험들이 아니라, 아예 완전히 다른 울타리에 가서 나를 한번 밀어 넣어봐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어요.
장 : 그래서 지금은 어떤 울타리에 자신을 밀어 넣었나요?
김 : 울타리 대신에, 물결에 흐름을 맡겼죠. 무언가를 이루려 하지 않고 1등이 되려 하지 않는 채로 있어 보자. 왜냐하면 인생의 이전 시기까지 계속 성취 지향적으로 살았기 때문에. 그래서 작위적으로 무얼 하려고 하지 않고 내 눈앞에 주어지면 그걸 최대한 즐기려고 해요. 글을 써보지 않겠냐는 제안받았을 때도 뜻밖이었지만 주어졌을 때 피하지 않고 즐겁게 하고, 오늘 같은 자리도 오면 즐겁게 그리고 솔직하게 다 이야기를 하자. 꼭 일뿐만 아니라 취미나 여가도 마찬가지고요.
장 : 무언가가 주어지지 않았을 때는요?
김 : 진짜 아무것도 안 해요. 그냥 누워서 시간이 흘러가라. 나는 아무것도 안 할 거야라고 스스로 되뇌는 거죠. 적극적인 쉼을 한다고 할까요? 물론 저도 처음엔 너무 안 됐어요. 불안감이 엄습하니까. 또 스스로가 한심해 보이기도 하고요.
장 : 그런데 이 인터뷰를 보시는 분 다수는 직장을 다니시는 경우가 많을 것이고 직장인의 관점에서는 스포츠 스타의 은퇴가 정년퇴직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단 말이죠. 그러면 독자님들 입장에서 예상되는 질문이 "많이 벌었으니까 가능한 거 아니야? 우리도 저럴 수 있을까? 난 목구멍이 포도청인데"라고 생각하실 수 있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김 : 그런데 저는 그런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고요. 사실 책을 쓰게 된 계기이기도 한데, 많은 분이 제가 최고의 기량이던 시기에 갑자기 기량이 뚝 떨어졌다고 생각하시지만, 그 이면에 굉장히 심한 슬럼프가 있었어요. 누군가는 추락이라고도 표현하죠. 목표지향적인 삶을 살다가 그걸 달성하고, 그런데도 내가 상상하는 그 완전한 '상'과는 다르게 인생이 펼쳐지는 걸 경험하고, 추락을 하고, 그리고 다시 삶을 바라보니까요. '아, 빨리 달리는 것, 1등 하는 게 행복해지는 지름길은 아니구나. 그렇다면 반대로 빨리 달리지 않아도, 1등 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도 있겠다'라는 관점의 변화가 컸어요. 그게 저의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지탱해 주고 있는 거고요.
돈은 사실 어느 정도가 있던 불안한 건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계속 줄어들고 있는 건 마찬가지니까요. 그런데 청소년기에는 개인적인 결핍의 경험들 때문에 물질이 내 삶의 안전망이 되어줄 것으로 생각했고, 그걸 위해 성공이 통과의례라고 생각했는데요. 그건 행복이 아니잖아요? 그 순간의 기쁨인데, 그것을 행복으로 뭉뚱그려 생각하고 달렸더라고요. 지속 가능한 기쁨은 다른 데에도 있더라는 거죠.
장 :이를테면요?
김 : 그것들을 찾아가기 위해서 다양한 경험을 시작했는데, 기타를 배웠었거든요. 굉장히 순수한 기쁨이잖아요. 그리고 카페에 가서 가만히 앉아서 사람들을 봐요. 저에게는 그것이 매우 큰 행복으로 다가오거든요. 오가는 사람들을 보는 거. 왜냐하면 그전에 바라보던 사람은 관중석에 있는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이 새로운 기쁨의 발견들이 저에게는 신생아가 하나씩 세상을 경험하는 과정처럼 느껴지거든요. 와. 이런 게 있구나. 이런 게 즐겁네.
장 :그렇다면 이제 만 세 살이 된 김태술이 본 나는 어떤 사람인 것 같아요?
김 : 자존감이 높아져 가는 사람인 것 같아요. 사실 선수 시절엔 "할 수 있어! 나는 잘해!"라고 스스로에게 되뇌고 자신감이 있었지만, 자존감이 높다는 느낌은 아니었어요. 왜냐하면 사람들의 평가 속에서 나의 기쁨과 슬픔이 결정되었거든요. 그렇지만 이제는 생각지 못한 것들을 하나하나 경험하면서, 어? 되네? 즐겁네? 할 수 있네?를 근거 있게 깨달아가다 보니 내면에서 '아, 나는 잘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근거 있는 자존감이 생겨나더라고요. 그러니까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서도 자기 결정권이 생겨난 느낌이 들죠. 조바심 내지 않고요.
제가 최근에 새로 시작한 또 하나의 취미가 골프인데, 제가 선수 출신이잖아요. 어느새 저도 모르게 잘해야 된다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쪼다가도 멈출 수 있게 됐어요. 스스로에게 말하는 거죠. "야, 너 한두 달 하고 그만둘 거야? 2년 3년 꾸준히 할 거 아니야? 그럼, 언젠가 잘하게 될 건데 왜 스트레스받아? 왜 강박을 가져?"라고요. 그러면 다시 즐기는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는 거예요.
장 : 이건 여담인데, 오늘 이야기 나누면서 참 얼굴이 편안하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기장에서 봐 오던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이랄까. 어라? 김태술 선수가 이렇게 생긴 분이셨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혹시 인생의 어떤 시기로 카톡을 딱 한 줄 보낼 수 있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어요?
김 : 인상의 변화는 그렇게 느끼실 수 있어요. 슬럼프를 겪던 때와 지금은 다르니까요. 그때는 그리고 그 터널이 끝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고요. 누구나 번아웃이 오고, 슬럼프가 왔을 때 인생을 핀 조명으로 그 순간에만 초점을 맞춰서 바라보면 너무 괴롭고 고통스러운데 결국은 머물러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그런데 그때는 몰랐죠. 그렇기 때문에 이겨내기 위해서 극도로 제 감정을 절제하고 무시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얼른 성공해서 가족들을 편안하게 해줘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고요. 그래서 슬럼프가 오고, 마음의 병이 와도 무시하고 아닌 척하고 알아주지 않으려 했거든요. 나약함을 무시해야 성공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그런 그 시절에 카톡을 보낼 수 있다면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럽다고 말하고, 울고 싶으면 울고 감정에 솔직해져도 돼>라고, 꼭 말해주고 싶네요.
장 : 그럼 마지막으로 타인에게도 한마디를 건네볼게요. 태술 님이 가장 마음에 쓰이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떤 유형의 사람들일까요? 그리고 어떤 말을 해 주고 싶으세요?
김 :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 분들이요. 저는 선수 시절에 매일매일 사람들의 평가 속에서 살았잖아요. 그 평가가 제 모든 감정을 좌지우지하던 시절도 있었고요.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에도 마찬가지인 분들이 계실 거로 생각해요. 사람들이 날 지켜보고 있다고 착각하는 거죠. 하지만 정말 대부분의 사람은 나에게 관심이 없거든요. 오히려 사람들이 날 지켜보는 시간보다 내가 날 지켜봐 줘야 하는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닐까 싶어요. 타인의 기준에 맞춘다고 해도 끝끝내 내가 행복해지는 게 아닌데, 그렇다면 시선의 방향을 이제는 안으로 돌려야 하는 게 아닐지 생각합니다.
아니면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을 쓸 거면 아주 극단까지 가는 거예요. 정말 완벽한 나, 누가 봐도 흠집 잡을 수 없는 나까지 가보는 거예요. "나 멋지게 살 거야. 그래 봐. 지켜봐. 내가 얼마나 멋진지"라고요. 근데 그 '멋지게 사는 것'의 핵심은 내가 나에게 집중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늘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멀쩡한 모습이 아니라 허겁지겁 달려와서 슬라이딩으로 무덤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하거든요.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시간에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생의 마지막까지 충실히 사는 거죠. 그리고 "정말 끝내줬다!"라고 말하면서 문 닫히기 직전에 단장할 새도 없이 들어가는 거예요. 무덤에 (웃음) 그렇게 모든 순간 경험을 누리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모두.
오프 더 레코드 : 독자 질문 코너
1. 한 분야에서 정점을 찍는 경험은 아무나 못 하는 거잖아요. 자기 분야에서 미친 듯이 달려서 성공하는 경험이 인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태술 선수님처럼 그 이후 슬럼프가 오고 소진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번쯤은 경험해 볼만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정점을 찍기 위해 저에게 왔던 수많은 경험과 감정은 삶을 살아가는 데 많은 선물을 준 것 같아서 한번 해 볼 만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가끔 후배들에게 성공으로 가는 길에는 늘 고통과 남들과 비교할 수 없는 노력, 시간 투자가 있어야 한다고 조언해 주곤 했거든요. 이 과정에서 기쁨, 슬픔, 분노, 희망, 깨달음 등 여러 가지 감정과 경험을 하게 되는데요. 이 감정과 경험을 인생의 또 다른 목표에 끼워 넣어 적용하기만 해도 어느 정도 성공을 이루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결국 남들보다 더 높은 곳을 향해 달려갔던 경험은 다른 목표도 이루게 만들어주는 힘이 되는 거죠. 저 역시 고통스러운 슬럼프가 힘든 시간을 주기도 했지만 결국 뭔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러한 경험도 어쩌면 당연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삶을 대하는 태도는 좋은 것만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부정적인 일이나 감정도 같이 받아들이려 하는 수용적인 태도로 변할 수 있었고요.
2. 능동적으로 쉰다고 말하고 진짜 쉬는 모습에서 자기 인생의 주인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감명 깊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못 살지 않나 싶어서 그냥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맞아요. 저도 그렇지 못했어요. 늘 불안하고 뭔가를 해야만 할 것 같고 하지 않으면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죠, 하지만 능동적으로 쉰다는 게, 하던 일을 그만두고 쉬는 것이 아니라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겼을 때 불안한 감정이 밀려와도 그 불안함 때문에 다시 벌떡 몸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 그 불안함까지 받아들이면서 "그럼에도 쉬는" 연습하다 보면 분명히 잘 쉬는 방법을 알아차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3. 인터뷰 보자마자 책 사고 다 읽었어요, 저도 모르게 계속 눈물이 났어요. 3살로 살아가는 새로운 인생에서 책을 쓴 경험은 어땠는지, 또 책을 내실 계획이 있으신지 없으신지, 만약 있다면 어떤 주제로 써보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저는 책을 쓰는 사람으로 계속 살고 싶어요. 사실 저는 자기 계발서를 위주로 독서를 해 왔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만약 다음 책을 쓴다면 저를 성공으로 가게끔 만들어 주었던 마음 1(페르소나)이 어떻게 저를 밀어붙였는지 그 방법에 대한 내용과, 그렇게 살면서도 힘들고 지칠 때 마음 2(내면 자아)가 어떻게 저를 보듬어주어 지치지 않고 지속 가능하게 했는지. 두 마음의 밸런스에 대한 자기 계발서를 한번 써 보고 싶어요, 그리고 늘 사람으로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계속하고 있는데, 언젠가 조금 더 뚜렷해진다면 그 이야기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4. 태술 님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 1~3위는 무엇인가요? 예전 농구선수 시절과 지금 달라졌는지도 궁금합니다.
현재는 제가 1순위입니다. 사실 예전에는 가족이 1순위다라는 얘기를 종종 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스스로가 행복하고 자존감이 높아져야 가족이든 일이든 잘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지금은 제가 1순위 2순위 3순위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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